한국의 정유회사인 ‘SK 에너지’의 유류 약 1만t이 불법 선박 간 환적 방식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SK 에너지 측은 북한행 가능성을 미리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유류 목적지가 ‘공해상’으로 표기되는 등 허술한 정황이 있어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취재: 이상훈 / 영상편집: 조명수)
최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공개한 2건의 선하증권 즉 선박 간 물품 거래 내역입니다. 지난해 3월과 4월 체결된 판매 계약인데, 판매 주체가 한국 정유회사인 SK 에너지입니다.
판매 유류는 한국에서 정제돼 SK 에너지 타이완 지사로 옮겨져 관리돼 온 가스 오일(Gas Oil)로 3월과 4월분 각각 4천989t과 4천553t, 운송은 타이완 업체 소유 선박 ‘선와드’호가 타이완 타이중 항구에서 한다고 돼 있습니다. 또 해당 화물의 목적지 항구는 2건의 선하증권 모두 ‘공해상(High Sea)’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전문가패널은 이런 방식으로 거래된 SK 에너지의 유류가 선와드 호에 실려 작년 3월 30일과 31일 사이 공해상에서 선박 간 불법 환적 방식을 통해 북한 깃발을 단 ‘신평2’호로 옮겨졌으며 다음 날인 31일과 4월 1일 사이 또다른 북한 유조선 ‘안산1’호로 환적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유류 2차분도 일주일 뒤 ‘선와드’호에서 북한 선박으로 옮겨졌고 이후 남포와 청진, 함흥 항에 유류를 하역하는 모습이 위성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국제사회가 대북 결의를 통해 북한의 유류 반입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는데, 한국 업체가 판매한 유류가 불법 환적을 거쳐 북한으로 유입된 겁니다.
SK 에너지 관계자는 28일 VOA에 “물건을 판매할 땐 FOB 즉 본선인도 조건에 따라 물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인하지만 대용량으로 판매되는 석유제품은 목적지를 중도에 바꾸면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대북제재 위반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선박 업계는 최초 유류 거래 당시 구매자 측이 목적지를 ‘공해상’으로 지정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SK 에너지 측이 제재 위반 가능성을 고려해 좀 더 신중히 처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동근 / 우창해운 대표
“통상적으로 하이씨(High Sea) 즉 공해상으로 표기하는 것은 특정 장소에 장기적으로 머무는 원양어선을 상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타이완에서 이뤄지는 건 짧은 거리이기 때문에 목적지를 하이씨(공해상)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거죠.”
이동근 대표는 또 SK 에너지가 판매한 유류가 실제 인근 해역의 선박들에 주유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연료인지도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선박에 주유할 수 없는 유류제품을 판매한 것이라면 ‘공해상’이라는 목적지에 더욱 의구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정권의 대북 제재 회피 구멍을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와 업체에 철저한 관리를 당부하고 있으며, 특히 개도국을 중심으로 미국의 민간 기관을 통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특히 지난 2019년 국무부, 해안경비대와 합동으로 발표한 ‘북한의 불법 선적 행위에 대한 주의보’에서 “각 화물 수령인과 거래 대상은 북한 유조선에 유류를 공급하지 않도록 하고 정유회사는 그 공급망에 속한 회사들의 실사를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유엔 회원국들에 제재 위반을 막기 위해 보다 철저한 감시와 실사 강화가 요구된다”며 관련국과 업계가 의도치 않은 제재 위반에 연루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