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이후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던 북한 영변 핵시설이 재가동에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밝혔습니다. 북 핵 협상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 압박 차원에서 또 다시 영변 카드를 쓰려는 움직임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강양우)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지난 27일 발간한 북핵 관련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서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내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지난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한 원자로 가동 정황들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5메가와트 원자로는 북한의 핵무기 제작과 관련된 핵심시설로 원자로 가동 후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데, IAEA는 2018년 12월부터 올해 7월 전까지는 5메가와트 원자로 가동 정황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IAEA는 이와 함께 지난 2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약 5개월 동안 5메가와트 원자로 근처에 있는 폐연료봉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연구소가 가동된 정황도 포착하고, 이 가동 기간은 북한이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데 걸린다고 과거에 밝혔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북한의 핵 활동은 계속되는 심각한 우려 요인이고, 5메가와트 원자로와 방사화학연구소 가동 등 새 정황들은 심각한 골칫거리라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는 VOA에, 북핵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진 가운데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위성락 / 전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
“도발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반적인 대화 재개 환경이 조금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거다, 미국도 그렇게 볼 것이고 한국의 역할 공간도 조금 줄어드는 게 아닌가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협상 타결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새삼 부각시켜 바이든 행정부를 협상으로 끌어들이려는 전술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조한범 /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번 영변에서의 핵 활동은 가시적인 핵 활동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협상을 견인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그러니까 판을 깨거나 협상 교착으로 가겠다는 의도 보다는 오히려 영변을 중심으로 한 협상, 이미 트럼프 때 결렬됐던 그 안을 복원시키려는 의도가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영변 핵 시설 재가동 움직임이 곧바로 미국과 한국의 대북 협상 태도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평가했습니다.
신범철 /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지금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과 관여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각에선 전략적 인내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잖아요. 그런 측면에선 바이든 정부가 보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지금 당장 대북정책의 방향을 바꿀 정도의 임팩트 있는 사건은 아니라고 봐요.”
북한의 향후 동향과 관련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박원곤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이 원하는 것을 이번에 성 김 대표가 와서도 좋은 말이긴 하지만 다 거부를 해버린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당연히 강대강으로 갈 것이고요. 그 방법으로 핵 능력 고도화를 보이는 영변, 여전히 열려 있는 미사일, 그다음에 대남공세, 그런 것들이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 그것은 항상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도발에 나설 경우 다음 달 9일 북한 정권 수립일이나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 등을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뉴스 조상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