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는 약 3만4천 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북한에서 탈출했는데요. VOA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자유를 찾아서’ 탈북 대학생 하신아 씨의 첫 번째 이야기,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탈북 대학생 하신아 씨가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처음 해외여행을 다녀온 얘기를 하며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데요. 여느 한국 대학생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신아 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덕천입니다. 도시에서도 30리 떨어진 탄광 마을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어릴 적 신아 씨는 내성적이면서도,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아이였습니다.
[녹취: 하신아 씨] “저는 어렸을 때 되게 꿈이 많은 친구였었죠. 거긴 이제 한국 무용이 가장 많이 발달하여 있어서 TV를 보면 언니들이 무용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가장 관심 있었던 게 무용하고 패션 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어릴 때 한 7살 때인가 8살 때인가 동생 돌생일 때 제가 무용을 한 번 춘 적이 있거든요. 아빠, 엄마는 이제 당연하게 좋아하시고 주변 분들도 너무 잘 춘다고 ‘앞으로 무용하는 사람이 돼라.’라고 해서 좀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좀 더 관심이 가게 됐던 것 같아요.”
무용과 패션을 좋아했던 신아 씨. 하지만 어려웠던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게 됐고요. 6살 차이 나는 여동생을 보살피고 농사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녹취: 하신아 씨] “저희 집은 되게 가난했었어요. 북한에 있는 출신 성분 때문에, 제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또 출신 성분이 안 좋으면 갈 수가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때는 공부를 제가 중학교 1학년만 다니고 중퇴를 했어요.”
그렇게 집안일을 돕던 하신아 씨가 18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하 씨에게 장사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고요. 어머니와 함께 양강도 해산에서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 중국 땅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뜻밖의 얘기를 꺼냅니다.
[녹취: 하신아 씨] “저는 그때가 아무래도 사춘기 아닌 사춘기가 왔었던 것 같아요. 그때 국경 지역 쪽에 돈을 벌러 갔었는데 거기서 엄마랑 지나오면서 중국 땅이 마주 보였었어요. 그러면서 엄마가 저한테 ‘너는 중국에 갈 생각 없어? 남들은 저기 가서 돈도 되게 벌어다 준다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게 원래 이제 장난처럼 저도 들어야 했는데 저도 이제 엄마가 편했는지 아니면 거기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보내주면 가겠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중국으로 넘어가 돈을 벌어오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금세 브로커를 구했고요. 그렇게 하신아 씨는 갑자기 고향을 떠나게 됐습니다.
[녹취: 하신아 씨] “그렇게 하다 보니까 갑자기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저보고 빨리 짐 싸라는 거예요. 빨리 중국 가는 노선이 있으니까 준비해서 빨리 가야 된다고 해서 저도 정신없이… 원래 사실 대한민국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저는 어릴 때부터 산골 지역에서 살다 보니까 대한민국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게 어릴 때 힘들게 산다는 것밖에 배운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냥 저는 당연히 중국으로 가는 줄 알고 노선을 따라서 넘었는데 그게 한국으로 오는 선이었던 거죠.”
사실 어머니는 한국으로 가는 브로커를 구했던 것이었지만, 신아 씨에게는 한국에 대한 어떤 것도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녹취: 하신아 씨] “아마 어머니는 한국에 대해서 아셨고 저한테는 설명을 제대로 안 해주셨었거든요. 저는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중국은 워낙 드라마를 통해서도 잘 산다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에 원래 중국 가서 돈 벌다가 다시 북한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태에서 이거 한국으로 가는 선이야, 라고 해서 그럼 ‘나 가서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15일 동안 중국에서 머문 신아 씨는 한국인 목사를 만나게 되며 2016년 한국에 입국했는데요. 처음에는 한국에 정착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하신아 씨] “왜냐하면 18년 동안 제가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한 번에 변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좀 많이 변하게 된 계기가 태국 와서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넘어온 케이스라서 자유보다는 반항심으로 넘어왔고 꿈을 좀 키우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첫째 딸을 탈북시킨 하신아 씨의 어머니. 하 신아 씨는 갑작스럽게 탈북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처음에는 한국 생활이 참 막막했다고 합니다. 탈북 대학생 하신아 씨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