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는 약 3만4천 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북한에서 탈출했는데요. VOA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자유를 찾아서’ 탈북 작가로 활동하는 전주영 씨의 아홉 번째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2015년 한국에 정착한 전주영 씨.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북한의 소꿉친구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녹취: 전주영 씨] “내가 여기서 너무 보고 싶고, 정말 꿈에서도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고 몇 년을 앉혀놓고 그냥 계속 대화만 하고 싶은 게 친구예요. 근데 그 친구들이 이런 세상과 이런 선택지가 너무 많은 공간이라 할까요? 이런 세상이라 할까요? 이런 것들을 그 친구들은 체험해 보지 못하고, 우물 안의 개구리? 개구리가 그러잖아요. 세상은 동그란 원 안에서의 물밖에 없구나, 그런 것처럼 정말 비행기 타고 유럽이라든가 동남아로 가게 되면 정말 끝도 새도 없이 정말 펼쳐지는 무한의 그 세상을 친구들은 볼 수 없고 어찌 보면 정말 불쌍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여기에서 만끽하고 느끼고 정말 맛있는 거 먹으면서 찍은 사진들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야, 이런 것도 있어 너 한번 해봐.’ 이런 것도 보여주고 싶고…”
북한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가까이 지낸 소중한 친구들이라고 하는데요.
[녹취: 전주영 씨] “한 동네에서 문 열면, 학교 갈까? 같이 가고 눈빛만 봐도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근데 정말 아빠, 엄마까지도 너무 친근한 그런 친구들이 한 몇 명 돼요. 걔네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얼마나 불쌍하게 살까를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고 제가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받고 뭔가 해소하고 싶은 그런 애를 찾고 싶으면, 그런 소꿉친구를 찾아가서 막 뭐라고 쏟아내야 하잖아요. 근데 그런 친구가 여기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하면 그건 아니고요. 일단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게, 가장 제한적인 슬픔이라고 봐요. 그런 친구에게 뭔가 막 쏟아내고 싶어요.”
함께 고민을 나누고 힘이 되어줬던 친구들, 전주영 씨는 친구들과의 추억 중에 가장 고마웠던 한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녹취: 전주영 씨] “추억이 너무 많은데 제가 잊히지 않았던 게 학교 갔다가 오는데, 제 생일이었는데 ‘야, 주영아.’ 해서 ‘왜?’ ‘너 우리 집 가서 밥 먹을래? 그냥 오늘 너랑 밥 먹고 싶어.’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깜짝 이벤트죠. 그때는 초등학교 한 1, 2학년 때 시절인데 저를 데리고 집에 간 거예요. 가니까 아빠, 엄마가 저를 막 웃으면서 맞이해 주고 ‘주영아, 빨리 들어와. 너 배고프지. 밥 먹어.’ 그랬는데, 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밥을 일단 먹었어요. 어릴 때니까, 근데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좀 신기한데? 얘네들도 이런 음식을 좋아하나? 이랬는데 밥 먹고 나중에 간식을 먹으면서 하는 말이 ‘오늘 너 생일이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충격받아서 정말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구나, 정말 이 친구들이 있으면 나는 산도 옮길 수 있겠다…”
그 후 친구들과의 인연은 군대를 다녀와서도 이어졌고요. 전주영 씨는 친구의 결혼식 때도 신랑 들러리로서, 곁에서 살뜰히 도와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해주고 싶은 것도 얘기했는데요.
[녹취: 전주영 씨] “심지어는 군대 갔다 와서까지도, 정말 즐긴 인연 같아요. 눈빛이 또 마주쳤어요. 그리고 또 그 친구가 결혼할 때 들러리까지 했어요. 에너지를 너무 쏟아서 근데 첫 케이스(사례)거든요. 저희 친구 중에서 첫 케이스(사례)인데 축의금도 제가 제일 많이 했고요. 제가 몇 끼를 굶고 쏟아부은 것 같아요. 가장 친구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게 칵테일, 칵테일을 만들어서 정말 주고 싶어요. 자격증은 없는데 자신 있게 만들 수 있죠. 그리고 목욕탕 들어가서 때 밀기, 왜냐하면요. 너의 묵은 때를 내가 벗겨줄게. 우리 그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리고 대화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전주영 씨는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냅니다.
[녹취: 전주영 씨] “친구야, 나는 여기서 정말 누리고 있어. 네가 먹고 싶고 네가 입고 싶고 네가 하고 싶은 거를 지금 다 누리고 있는데… 특히 당구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정말 당구 마니아인데 나보고 너무 많이 부탁했어요. 당구 좀 치자고, 그럴 때마다 한 다섯 번 정도 제가 데리고 갔는데, 여기서 당구도 많이 할 수 있고 당구뿐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그런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온다면 정말 소소한 것들을 같이 해보고 싶고, 많이 주고 싶고 그래요. 친구야 사랑한다. 이상입니다.”
북한에서의 추억을 간직한 채, 한국에서 제2의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전주영 작가. 이제는 물리치료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전했는데요. 탈북 작가 전주영 씨의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