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언급하지 않은 채 조기 종전을 촉구한 미국 주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한국 내에선 우크라이나가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흐름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건 향후 미북 협상에서 한국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한 두 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4일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3주년 유엔 안보리 공식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한 결의안에 한국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 결의안엔 러시아의 침공을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이라고 표현하면서 “분쟁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하고 러우 간 지속적인 평화를 촉구한다”는 내용만 담긴 채 채택됐습니다.
표결에 앞서 영국과 프랑스 등은 미국에 내용 수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이사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별도 결의안을 냈지만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습니다.
한국은 유럽 주도의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진행자)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고민이 많았다고 하던데 어떤 얘기인가요?
기자) 한국은 북한의 남침을 겪은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북러 군사협력 때문에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입장입니다.
이 때문에 비록 동맹국인 미국이 주도했지만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결의안 찬성에 고민이 필요했던 겁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한 발언 내용입니다.
[녹취: 조태열 장관] “제가 새벽 3시까지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의안의 유럽의 수정안이 총회에서부터 안보리까지 계속 나왔는데 그게 모든 우리가 주장했던 원칙들이 다 포함된 수정안에 저희들이 찬성을 했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미국 주도의 결의안에 찬성한 데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 촉구가 우리 입장과 상충되지 않으며 전쟁 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의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한미관계와 북한 문제 관련 한미 간 긴밀한 공조의 중요성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이사국 주도의 결의안에 찬성한 이유에 대해선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에 따랐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이런 정부의 설명에도 한국 내에선 정부의 이번 선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러우전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다루는 방식이 향후 미북 협상에서 한국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의 이번 선택이 전략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박사는 한국이 배제된 채 미한 연합훈련 축소, 미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이 협상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북 핵을 사실상 인정하는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북한과 미국 간에 북 핵 문제를 잠정 해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이런 식의 논리를 펼 수 있겠죠. 그 때가 되면 한국이 말이 꼬일 것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찬성한 게 나중에 전략적인 덫이 될 수 있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침략을 받았던 역사와 지금도 북한과 대치 중인 현실에 비춰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묻지 않는 건 한반도 안보에 부정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45년 이후 지켜졌던 영토 보존의 법칙이 아주 극적으로 훼손돼 버리는 그건 더욱이 북한 같은 경우 영토 완정을 외치고 있으니까 그것이 북한을 더 과감하게 만들 수 있다라는 것 그게 가장 우려되는 것이고.”
진행자) 한국 내 이런 불안은 자칫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겠군요.
기자) 그런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집권여당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조태열 장관을 향해 자체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아시아판 나토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이런 의제들이 아직은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지만 ‘오프 더 테이블’ 즉 논외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동맹인 미국과의 동의와 신뢰와 지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과의 연대보다는 국익 중심의 양자 거래를 선호한다며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돼 있는 한국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추이에 따라 자체 핵무장론을 포함한 자강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김 기자, 만일 러시아 침공을 묵인하는 식으로 종전이 이뤄질 경우 북러 군사 밀착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까요? 이에 대해선 어떤 견해들이 나오는지요?
기자) 조한범 박사는 일단 종전이 되면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북러 밀착이 약화되고 한반도 안보에 긍정적일 수 있다며 조기 종전에 방점을 찍은 미국 측 결의안에 한국이 찬성한 것은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러 밀착, 북한 군 파병 이게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주는데 조기 종전을 하게 되면 북러 군사 밀착에 따른 부담은 덜거든요. 그러니까 조기 종전은 트럼프 정권 지지 여부를 떠나서 한국에게 전략적으로 이익이 되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조 박사는 종전이 되면 러시아는 전후 복구와 산업 재건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의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한국의 건설 등 산업 역량도 필요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교수는 종전 협상이 미국의 지지 속에서 러시아에 유리하게 마무리될 경우 미러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신냉전 진영외교를 추구해 온 북한의 러시아와의 밀착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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