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는 약 3만4천 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북한에서 탈출했는데요. VOA가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자유를 찾아서’ 탈북 작가로 활동하는 전주영 씨의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전주영 씨는 한국에 와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은 북한에서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한국에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라는 미국 작가를 알게 되죠.
[녹취: 전주영 씨] “저는 그림을 한국에 와서 배웠는데요. 제가 그림을 알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일단 저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봤어요. 그 그림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이미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이미지예요. 정말 낙서라면 낙서고, 근데 그 의미를 봤을 때 정말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물론 형식적으로 봤을 때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그런 개념을 제시하지만 액션 페인팅 그리고 모든 행위 언어, 대화, 소통 이런 거 다 예술로 그 사람은 표현했어요. 근데 그 부분에 있어서 ‘아, 이런 것도 우리 예술에 포함했구나, 예술은 정말 사물을 똑같이 해석하는 그런 게 예술이 아니구나, 그래서 내가 한번 이걸 배워봐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홍익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림에 대해서 배워가고 또 알아가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전주영 씨는 북한에서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꿈꾸게 됩니다. 한국에서 미술 대학으로 유명한 홍익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 붓을 들었는데요.
[녹취: 전주영 씨] “저는 북한에서 운전직이라는 그런 새로운 직업을, 예술과 전혀 무관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또 그림에 도전하게 됐고 일단 홍익대학교라는 대학의 무게감과 어떠한 특별한 위치가 있어요. 정말 지금에 와서 보게 되면 제가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그 혜택을 누리면서 대학 공부를 했어요. 근데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을 보게 되면 그 홍익대학교라는 그 문턱을 넘으려고 심지어 9수까지 했던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만큼 정말 의지가 있고 정말 배우려는 그런 목적과 그런 것들이 장벽이 높은 그런 학교를 제가 영광스럽게 그 학교에 가서 배우게 됐어요. 그만큼 저는 정말 배운 것도 많고 제가 또 얻은 것도 많은 것 같아요.”
홍익대학교 16학번으로 입학한 전주영 씨. 그림에 관해서는 모든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림 실력도 서툴 수밖에 없었는데요.
[녹취: 전주영 씨] “저는 홍익대학교에서부터 미술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그냥 꾸준히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정말 막연했죠. 교수님들이 저보고 ‘너는 그림을 그리지 마.’ 이랬어요. 정말 폼은 엄청 많이 꽉 차 있는데 내면은 텅텅 비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수님들이 ‘너는 뭐야? 도대체…’ 교수님들 보기에는 정말 애들 장난 같아요. ‘너 하지 마, 그림.’ 그리고 뭔가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뭔가 누구에게 제시할 수 있는 그런 끈끈함과 단단함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교수님들은 ‘너는 하지 마, 넌 그림 하지 마.’ 계속 저만 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림을 배우며 교수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전주영 씨는 오히려 그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전주영 씨] “근데 정말 그 말이 저에게 원동력이 됐고 작업에 있어서 정말 강약을 줄 수 있는 그런 힘을 줬다고 생각해요. 교수님들은 저한테 거의 학원 선생님들처럼 저를 많이 가르쳐줬던 것 같아요. 빈 캔버스에 앉아 있으면 과연 무엇을 그릴까? 어떤 부분들을 표현할까? 그러면 교수님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영감을 받아서 완성품을 교수님께 보여드리면, 교수님은 또 ‘이게 뭐야? 이거 왜 그렸어, 버려. 이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상처도 많이 받고 그래서 제가 아마 성장했다고 봐요.”
그래서 현재 전주영 씨의 그림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데요.
[녹취: 전주영 씨] “앞서서 말씀드렸다시피 ‘잭슨 폴록’이라는 그런 작가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있어요. 현대 작가로 놓고 봤을 때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작가가 있는데 그 작가들이 정말 한결같이 우리 일반인들과 관객들에게 말하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부분들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보다 새롭고 어두운 공간 그리고 보지 못하는 내면, 외면 그런 것들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또 알려주고 일깨워 주고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그런 부분들을 홍익대학교에서 많이 배웠고 아마 그래서 제 작품들이 좀 모호한 경계에서 왔다 갔다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요.”
그렇게 전주영 씨는 자기 작품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 남과 북을 담은 모호한 경계를 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탈북 작가 전주영 씨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