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 제조 필수 장비인 진공로를 불법 수입한 것은 핵 증강 야욕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고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이 지적했습니다.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전 세계 상품 확인에 통용되는 ‘HS 코드’를 위조한 뒤 여러 나라를 거쳐 불법 핵 장비를 수입한 사실을 공개한 올브라이트 소장은 23일 VOA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재 이행 및 수출 통제가 느슨한 국가들을 노리고 이 같은 불법 행위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의 제재 회피 시도를 더 어렵게 만들도록 제재 이행국들의 개별 역량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올브라이트 소장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소장님께서는 최근 스페인에서 북한으로 핵무기 제조 장비가 불법 수출된 사례를 확인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HS 코드가 위조되었다고 지적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며 이를 어떻게 추적하게 되셨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이 사건은 북한이 다수의 환적지를 이용하고, 특히 세관 당국에서 품목을 식별하는 데 사용되는 HS 코드를 위조하는 등 복잡한 방법으로 선적 서류를 조작했다는 점에서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진공로, 특히 우라늄을 용융(우라늄이 녹아 액체 상태로 변하는 핵연료 제조 핵심 과정)할 수 있는 진공로의 수출 사례에 대해 항상 특별히 주목해 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사건의 공개가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과 같은 국가에서 통제와 감시를 개선하는 데 활용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기자) ‘진공로’는 고농축 우라늄이나 기타 핵물질 생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얼마나 중요한 장비인가요?
올브라이트 소장) 진공로는 핵무기 프로그램에서 핵심적인 장비입니다. 진공로는 우라늄 금속을 용융해 틀에 부어 핵무기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장비로, 진공로가 없이는 핵무기를 제작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공급국들은 진공로가 북한 등과 같은 국가로 유입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기자) 스페인, 멕시코, 남아프리카, 중국 등이 북한으로의 진공로 불법 수출 경유지로 악용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한 네트워크의 정교함과 관찰된 주요 패턴은 무엇입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북한은 분명히 수출 통제 시스템의 취약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과거에도 약 20년 전 리비아에 원심분리기 시설을 구축했던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이끈 불법 핵 기술 확산 네트워크에 일부 수출품을 제공하며 문제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스페인을 경유해 멕시코로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멕시코는 핵 공급국 그룹의 비교적 신규 회원국으로, 수출 통제 경험이 많지 않기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북한은 진공로 발송자와 수신자가 멕시코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물품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HS 코드를 ‘기계류’라는 일반 코드로 변경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로 인해 멕시코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수출된 물품은 적발되지 않고 통과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보가 제공되면 협력하여 선적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국으로도 수출하며, 북한의 실제 목표는 중국을 통해 진공로를 들여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적업체가 물품을 ‘금속 폐기물’로 분류했는데, 이 항목은 검사 빈도가 낮아 불법 선적을 은폐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중국에 도착하면 북한은 사실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수출 통제법도 집행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은 진공로가 중국에 도달한 순간부터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기자) 이 같은 북한으로의 불법 경로는 어떻게 발견하셨습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저희는 여러 물품의 선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정부와 기업들과 협력해왔습니다. 우리는 북한, 이란, 파키스탄과 같은 이른바 확산국(proliferant states)과 관련된 사안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이러한 협력 과정에서 발견됐으며, 교육 자료로 활용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이 사례는 북한과의 치열한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역량 강화를 요구하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기자) 소장님은 보고서에서 ‘HS 코드를 위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실행에 옮겼는데요. 이를 방지하려면 어떤 기술적, 제도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첫째, 세관 당국은 수입과 수출되는 모든 물품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입 및 수출 기록의 통합 관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진공로를 수입했다면, 그 물품이 최종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주요 실패 중 하나는 최종 사용자(end user)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HS 코드 작업을 분석 작업과 결합해 수출이 적법한지 확인하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이는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멕시코와 같은 국가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할 추가 인력을 배치하고, 민감한 물품의 수출을 식별하며 조사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불법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습니다.
진공로와 같은 물품은 멕시코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자주 가는 품목이 아닙니다. 따라서 북한과 같은 국가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크게 기여할 가능성이 높은 이러한 통제 품목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있습니다.
기자) 핵공급그룹 소속 국가들이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진공로’ 같은 장비를 북한에 수출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입니다. 이번 사건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저는 이번 사건에서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상당히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에서 제재가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매년 북한의 제재 위반을 경고해온 유엔 전문가패널의 경고 체계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례 연구를 발표하고 공개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림으로써 국제사회가 이에 맞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북한의 불법 선적 및 제재 회피 사례가 앞으로도 발생할 것으로 보십니까? 국제 집행 기관들은 이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시나요?
올브라이트 소장) 저는 북한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미사일 관련 수출이나 재래식 무기 판매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제재가 부과된 품목은 매우 광범위하며,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핵 관련 이중용도 품목의 밀수출은 빈번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발생하며, 이는 북한의 노후화된 핵무기 시설을 교체하려는 필요성 때문입니다.
북한이 계속 이러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핵 관련 품목에 대한 시도는 자주 이루어지지 않지만, 각국 정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더욱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례는 북한에게 매우 심각한 실패로 평가될 수 있으며, 서방 국가들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기자)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치적 혼란기를 맞았고, 미국은 정권 교체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한반도 주변 정세에서 북한의 핵 역량 강화 움직임이 계속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올브라이트 소장) 이번 수출 사례는 북한이 핵무기 증강에 전념하고 있으며, 장비 공급을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공로는 고장난 기존 장비를 대체하거나 용량 확장을 위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는 핵무기 제조를 위해 북한이 여전히 서방 국가의 물품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북한의 취약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재 이행이 매우 중요합니다. 북한의 공급망을 교란하고 병목현상을 유발하기 위해 제재를 철저히 집행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더 넓은 의미에서 핵 비확산 문제와 직결됩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를 방해하고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또한,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절대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합법적인 핵 보유국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됩니다.
지금까지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으로부터 북한의 핵물질 불법 수입 문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조상진 기자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길이와 명확성을 위해 편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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