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철책 넘어 지상락원>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탈북민 이지혜 작가, 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들으며 컸지만, 북한에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업으로 삼는 길을 요원했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탈북민 이지혜 작가’의 자세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아직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기는 하는데 크게 생각하면 저는 항상 문화 공감이라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남북 관련해서 그림을 계속 그리지 않을까...”
이지혜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이 작가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떠올리며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는데요.
[녹취: 이지혜 작가] “저는 사실 어릴 때 그림 끄적이는 걸 좋아했어요. 따라 그리는 걸… 그리고 저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이라고 하는 1994년 그때 태어났거든요. 제가 4~5살 때부터 엄마 손 잡고 시장에 나갔던 것 같아요. 엄마가 음식 장사를 했는데 나가면 어린이들이랑 어르신들이 제일 먼저 굶어서 돌아가시거든요. 그다음에 중년층 돌아가시는데 그때는 너무 시장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어린 마음에 그걸 보고 충격받았던 게 이건 사냐, 죽느냐 하는 여기서 조금만 맥없이 놓아버리면 죽겠구나, 이런 생존의 위협을 받아서 어릴 때부터 살려고 하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랬던 이 씨에게 미술 작가라는 직업이 다르게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뭐가 보였냐면 제가 학교 다니면서 10살 때, 11살 때 보니까 그림 그리시는 분들 이렇게 학교에 와서 그림도 그려주고 ‘우리 원수님 따라 한 길 가자,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이런 것들을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시는데 선생님들이 쌀밥에, 고기반찬에 그리고 돈도 해서 잘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고 나 그림 그려야 하겠구나, 저는 쌀밥을, 고기 배불리 먹는 게 사실 꿈이었거든요. 너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보다 보니까, 그거 보고 '나 그림 그려야 되겠구나' 하고 끄적이는데 근데 엄마가 '야, 그림이 밥 벌어먹여 주냐?' 그러면서 언니들 따라서 하나라도 장사 배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씨는 열 살 때부터 어머니와 언니들을 따라 안 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녹취: 이지혜 작가] “그냥 그땐 책에다가 연필로 그리는 것도 없고 그냥 가난하니까 흙바닥이었어요. 그래서 나무 끝 주워다가 강아지 지나가는 거, 뜨락에 있는 닭, 돼지 이런 것들을 따라 그렸는데 그때 형태가 어느 정도 괜찮게 나왔었던 것 같긴 해요. 근데 그다음부터는 그림을 아예 못 그리고 계속 장사했어요. 제가 오기 전까지 23살까지 장사해서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국수 장사, 파 장사, 그릇 장사, 물고기 장사, 옷 장사 또 돈 장사 여러 가지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다가…”
북한에서 자신이 바라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가족 생계를 위해 장사 일에 매진해 온 이지혜 씨. 그러던 중 탈북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북한에서 오래 들어온 라디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제가 라디오 듣고서 왔는데 거의 10년, 평안도는 아예 국경 지역하고 달리 한국 드라마도 못 들어오고 한국 노래도 못 들어오고 평양, 평안남도 거기만 완전 꽉 막혀서 어쩔 수 없는데 구원의 손길이 라디오 방송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저희가 라디오 방송도 한 6년 들어도 잘 안 믿었어요. 너무 북한 조선중앙TV가 거짓말이 많으니까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북한에서 두 번씩이나 재산 몰수당하고 아버지 잡혀가시고 이제는 여기서 살 수 없다고 해서 반은 포기한 상태로, 반은 희망을 품고 오게 됐는데 그러면서도 잘 안 믿었다가 나오면서 한국 드라마 보면서 한국에 대해서 더 환상을 가지고 믿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문화 공감이 진짜 중요하구나...”
그렇게 2018년 한국에 정착한 이지혜 씨.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어머니는 북송됐고요. 현재 이 작가는 아버지, 그리고 작은 동생과 함께 정착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정착 초기, 가족을 다시 데리고 와야겠다는 일념하에서 아르바이트를 온종일 했고요. 그러다 자신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공부해 사회복지사가 됐습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북한에 있을 때 저희가 제일 가난할 때 할머니가 결핵 걸려서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그때 결핵이라는 게 못 먹어서 걸리는 병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나는 여기 와서 열심히 돈 벌어서 그 어르신들… 그냥 사실 저는 어르신들 돌봐드릴 수 있는 일, 검색하다 보니까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자격증 취득하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대요. 그래서 사회복지사 공부하고 요양보호사 공부해서 식당 일하면서 사실 낮 주간 대학교도 있었거든요. 근데 제 상황에, 야간으로, 온라인으로 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저녁에 온라인으로 해서 공부해서 사회복지사 일을 했어요.”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탈북에도 도움을 줬던 탈북민 최성국 작가에게 고민 상담을 했죠.
[녹취: 이지혜 작가] “그 일을 하다 보니까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문화 공감으로 어떤 일을 해야겠다. 그냥 이렇게 해서 안 되겠다. 이런 느낌이 갑자기 확 닿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최 작가님, 그분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니까 ‘그러면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을 것 같아, 그거 너한테 주신 달란트(재능)라고 생각되면 그게 맞는 거야.’ 그러면서 상담을 거쳐서 일단 미술학원 검색했어요.”
그렇게 입시 미술을 시작한 이 씨는 지난 202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현재는 3학년으로 재학 중인데요. 당시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녹취: 이지혜 작가] “아빠가 처음에는 별로 반기지 않았어요. 차라리 다른 거나 하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하시다가 전시회 하는 거 보고 갑자기 그림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냥 대한민국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내가 이렇게 그릴 수 있는지조차 부모님도 몰랐었는데 여기 와서 내가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게 이 대한민국에 너무 감사하다고 그래서 열심히 그림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우리 온 가족 대한민국에 보답하자,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작가의 작품에는 그녀가 지나온 경험과 한국에 정착하며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습니다. 그중에 ‘불편한 자유’라는 작품을 먼저 소개했는데요.
[녹취: 이지혜 작가] “사실 자유가 좋다, 이렇게 하고 왔는데 마냥 놀고 일하다 보니까 어디 주말에 한강에 놀러 간대요. 다들, 그래서 저도 한번 가봤는데 다들 막 친구들, 연인들 이렇게 뭉쳐 다니는데 저 혼자서 앉아 있는 데 너무 마음이 공허하고 북한에서는 사실 혼자 있을 시간이 없거든요. 다 집단적으로 이쪽으로 와서 일해라, 저쪽으로 와서 이렇게 맨날 통제하거든요. 근데 그 통제가 너무 싫어서 왔는데 갑자기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너무 허전한 거예요. 그래서 자유가 불편해,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물론 자유가 너무 좋죠. 근데 그런 것들, 그리고 사투리 같은 경우는 너무 다르게 전달되니까 차라리 말 안 하고 계속 눈치 보게 되는 것들, 사람하고 너무 공감하고 싶고 사람하고 대화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 안 되는 어려움들 이렇게 하고...”
그래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 작가는 허전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녹취: 이지혜 작가] “저 부분은 대학교 친구들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같이 밥을 먹고 하는데 저는 사실 커피 이런 거 아직 익숙하지 않거든요. 북한에서 딱 삼시 세끼만 먹고 그 공간 시간에는 아무것도 안 먹고 자라다 보니까 여기 와서도 간식을 중간에 잘 안 찾아요. 친구들하고 밥 먹고 커피숍에 가고 그다음에 또 무슨 쿠키 같은 것도 사러 가더라고요. 근데 그리고 저녁에 와서는 저는 아침하고 저녁에 친구들하고 안 먹을 때 라면을 먹었거든요. 돈 아끼려고, 라면 먹으면서 너무 허망한 거예요. 아니 밖에서 커피 하나에 아메리카노 4천500원 이렇게 하는데 라면은 한 그릇에 1천 원이잖아요. 그래서 이거 내가 정말… 근데 또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나도 그런 적 있어’ 이러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나만 겪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청년들도 겪고 있는 일을 비유해서 저거 이렇게 보면 여기 바닥이고 여기는 허공이거든요. 그래서 하늘 구름으로 이렇게 표현했는데 한 발만 잘못짚으면 뭔가 허공으로 떨어질 위험 그런 것들...”
그래서 이 작가는 남북 출신 주민이 모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그려나가는 것이 자기 사명이라고 전했는데요.
[녹취: 이지혜 작가] “저는 대학교 졸업하고도 전업 작가로서 남북 공감 관련해서 남북한 관련 그림을 계속해서 그릴 것 같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다양하게 활동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 같아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조금씩 형식은 달라질지 몰라도 전체적인 메시지를 볼 때 남북 관련한 그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