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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세상보기] 자유롭게 노래하는 가수 현향 씨


[탈북민의 세상보기] 자유롭게 노래하는 가수 현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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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대남방송국에서 가수로 활동한 한 탈북민이 있습니다. 2014년에 탈북한 현향 씨인데요. 현재는 한국에서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며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자유롭게 부르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탈북 가수 현향 씨의 얘기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대남방송국에서 가수로 활동한 한 탈북민이 있습니다. 2014년에 탈북한 현향 씨인데요. 현재는 한국에서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며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자유롭게 부르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탈북 가수 현향 씨’의 얘기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나는 나만의 것' 노래 현장음]

탈북 가수 현향 씨가 뮤지컬 '엘리자벳'의 노래 가운데 '나는 나만의 것'을 부릅니다. 자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는데요. 북한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현향 씨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아 노래 실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녹취: 현향 씨]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머니가 성악가셨고요. 아버지는 운동선수 출신의 의사인데 아버지는 음악을 타고나신 분이셨어요. 소질이, 바탕을 갖고 계신 분이셨어요. 그래서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박자와 음정 이런 거를 제가 유치원 다니기 전에 엄마 따라다니면서 어려운 박자들을 해내서 ‘ ’ 이런 반응들도 있었던 걸로 기억나고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이 출신 성분이 안 좋아서 양강도라는 백두산이 있는 곳에 두 집 다 쫓겨가다시피 간 집이에요. 친 쪽은 출신 성분이 엄청 안 좋고요. 그래서 저는 고향이 그쪽이 됐고 거기에서 어머니가 음악을 하시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의 길을 가게 됐고 양강도(혜산)예술대학에 다녔습니다. 가수로 활동했었죠.”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가수의 길로 접어든 현향 씨. 북한에서는 대남방송국 전속 가수로 활동했고요. 북한에서 어머니를 잃은 뒤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녹취: 현향 씨] “그 땅은 그냥 저한테는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추억만 빼면 그냥 지옥 그 자체였어요. 예술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머리 하나, 옷차림 하나, 화장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다 보니까 어쨌든 눈에 띄기만 하면 다 시시콜콜 쫓아다니면서 단속하고 방해하고 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답답하고 싫고 힘들었고, 그 땅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그러다가 그게 계속 축적돼 있다가 터졌죠. 북한의 화폐 개혁 때문에 터졌습니다. 어머니가 재산을 다 잃었고, 어머니는 목숨까지 잃었고, 저는 엄마를 잃었죠. 그 계기가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죠.”

현향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9년 차가 되어가는데요. 한국에 정착해서는 다시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6년 명지대학교에 입학해 뮤지컬과 성악을 공부한 건데요.

[녹취: 현향 씨] “한국에 와서는 북한에서 폐쇄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거를 계속 느끼게 돼요. 순간마다. 그래서 특히 역사 같은 부분에서 틀린 교육도 많이 받았고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일단 다시 했고요. 와서 제가 하던 음악 공부를 계속했고 지금은 또 대학원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걸 하면서 강의하고 있어요. 강의라는 게 뭐 제가 특별히 잘하는 건 없으니까, 북한에 대해서 알리는 거죠. 그래서 군인들 상대로 그리고 또 초중고 대학생 상대로 통일 교육이라든가 안보 교육 같은 거 하고 있어요.”

현향 씨에게는 북한에 두고 온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헤어졌을 당시에는 여덟 살이었다고 하는데요.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현향 씨는 아들을 위해 먼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녹취: 현향 씨] “대학교는 사실 아들을 공부시키려고 처음에 와서는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느낀 게 물론 목숨보다 더 소중한 자식이지만, 일단 내가 먼저 왔으니까 나부터 자리를 잡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북한은 여성들이 자기 이름이 없거든요. 누구 엄마, 누구 아내 이렇게 불리는데 여기 와서 의도치 않게 혼자 오긴 왔지만, 혼자 왔으니까 또 나만의 삶을 찾아서 잘 건강하고 건전하게 안착을 잘해서 살아야 하겠구나 그래야 다음에 내 가족들의 삶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돼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음악 공부는 오자마자 바로 시작했고요.”

대학교에 다니며 음악 공부에 관한 어려움보다는 자유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에 더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녹취: 현향 씨] “음악은 세계적으로 공통이라 화성학이라든가 음악 이론 이런 거는 다 똑같아요. 근데 그게 그 안에서 표현하는 방식들이 북한하고 남한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고 기본 내용이 똑같기 때문에 좀 쉬웠고 제일 다른 것은 북한은 본인의 선택이 없어요. 과목 시간표를 정할 수 없는데 여기서는 본인이 과목을 선택해야 하고, 어느 시간에 어떤 과목을 듣는지도 본인이 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면서 정해주면 쉽거든요. 창의력은 없어지겠지만, 대신에 고민할 일은 없으니까요. 30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내가 알아서 과목을 선택해야 하고 교수님도 내가 다 선택해야 하고 하니까 좀 어려웠었어요. 근데 그게 참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는데요. 현향 씨는 배움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했고요. 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법학을 선택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현향 씨] “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족하다는 거를 계속 느끼니까요. 그래서 그냥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배우는 거는 참 좋고 학교라는 분위기를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방학 때도 학교 나가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그런 분위기 자체가 좋고, 누군가의 말과 글과 이런 걸 통해서 뭔가 깨닫고 배우고 이런 걸 좋아해요. 지금 수료했고요. 논문이 남았어요. 빨리 쓰려고 계획했는데 계획대로 안 되네요. 어쨌든 써야죠. 써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법과 관련한 공부와 함께 현재 현향 씨는 찾아가는 통일 안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요?

[녹취: 현향 씨] “그러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 아래에서 느낀 점이라든가 겪은 경험을 실제 있는 얘기를 해주는 강의라서 그렇게 많이 제안하는 건 거의 없어요. 총체적인 메시지는 큰 틀에서는 같죠. 같은데 그 메시지를 풀어내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겪은 경험들이 다르니까 방법상은 다를 거예요. 근데 총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아요. 북한 같은 사회는 사람 살 사회가 아니다. 그 땅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다 느낀 거라서 그걸 진심으로 전달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통일 안보 강의를 하며 뿌듯한 점과 함께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의 질문이 있었다고도 전했습니다.

[녹취: 현향 씨] “우리 사회가 다 오픈되어 있잖아요. 관심만 있으면 다 찾아볼 수 있는, 핸드폰 하나 가지고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몰라요. 그래서 이런 강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의 다니면서도 느끼고 있고 저같이 북한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북한에 대한, 어떤 너무 좋다든가 너무 나쁘다든가 이런 편향적인 인식이 중심을 잡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뿌듯할 때도 많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강의라고 하면 초등학생들한테 한번 갔었는데 어떤 어린이가 북한은 다 굶어 죽는다는데 뭐 먹고 살아요? 이렇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북한이 참 못 살고 불쌍하고 한심한 국가로 비치고 있구나, 똑같은 민족인데 북한은 아직도 한 아이의 눈에 저 사람들은 다 굶어 죽지 않고 어떻게 살지? 라는 이런 나라로 비치고 있으니까 참 안타깝다고 생각하게 됐었던 것 같아요.”

통일 안보 강사로 활동한 지 벌써 6년째라고 하는데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을 북한에서는 상상해 보지 못했지만, 이 강사 활동으로 현향 씨 또한 북한에 관해 더 새롭게 배워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녹취: 현향 씨] “공부하면서 강의를 병행하게 됐는데 강의하면서 스스로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냥 혼자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를 누구한테 설명하려니까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하다 보니까 그게 또 공부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살 때는 너무 가까우니까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조금 멀리 나와서 이렇게 다시 들여다보니까 더 잘 보이는 측면이 많아요. 그래서 내가 살던 땅을 다시 한번 공부하는 계기로도 참 강의가 좋아요.”

현향 씨는 앞으로 석사 논문이 통과되면 박사 과정까지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고요. 북한 인권을 위한 작은 활동도 꾸준히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끝으로 통일에 관해 얘기하는 현향 씨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녹취: 현향 씨] “통일이라는 게 사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거든요. 저는 처음에 통일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너무 놀랐었거든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삶이 편한데 지금 통일이 안 됐다고 해서 불편한 거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가면서, 그런 거창한 표현보다는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서 북한 주민들도 우리랑 똑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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