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최고의 엘리트 영재 교육을 받고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온 한 음악 교수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탈북민 황상혁 씨인데요. 한국에 정착해 다시 피아노 공부를 하며 이제는 연주가로서 관객을 만나고, 한국 시민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탈북민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연주 현장음]
최근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열린 치유콘서트에서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녹취: 연주 현장음]
황상혁 씨는 북한에서 9살 때부터 전문 음악 코스를 밟아왔는데요. 평양예술전문학교에 진학해 피아노를 배우고 이후엔 평양음악무용대학 전문부에 편입해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과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평양음악무용대학의 교원으로 학생을 가르쳤는데요. 황상혁 씨의 이야기로 들어봅니다.
[녹취: 황상혁 씨] “이북의 교수들은 연주 활동을 못 해요. 딱 교수만 해요. 그다음에 연주가들은 또 연주만 하고 교수를 못 한다고, 여기 한국하고 달라요. 학생들 가르치는 걸로 평양음악무용대학, 지금은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이라고 이름이 길어졌어요. 저는 뭐 20살 때 졸업해서 여기 한국에 40살에 왔으니까 거의 20년, 그러니까 원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합치면 한 6년 정도 했고 그다음에 7년은 또 제가 박사 공부하면서 지휘 공부하면서 지휘 또 중국에 파견돼서 중국 학생들을 또 7년 가르쳤어요. 그래서 어쨌든 합쳐서 20년이에요."
그는 2003년 중국에 파견돼 3년 동안 중국 학생들을 가르쳤고요. 이후 2011년 다시 중국에 파견됐습니다. 그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한국인을 만나게 됐죠.
[녹취: 황상혁 씨] “원래는 해외에 나갔을 때는 준칙이 있어요. 근데 우리 대표단에서는 한국 사람을 원래 만날 필요도 없고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제가 그 두 번에 걸쳐 중국 파견됐었거든요. 그러니까 조금 경험이 남보다 앞서서 원칙을 좀 거슬러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게 시발점이 돼서 결국은 우여곡절을 겪어서 여기 왔습니다."
한국 사람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간 선배들이 있었기에 황상혁 씨도 북한에 돌아가는 것이 맞는지, 탈북해야 할지 중국 파견이 끝나기 전 수많은 고민을 했고요. 그 과정에 한 브로커를 만나게 됩니다.
[녹취: 황상혁 씨] “고민 많았죠. 내가 북에 돌아가서 잘못했습니다. 뭐 이렇게 하면 그 한마디로 이게 자수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하면 용서, 좋게 생각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데 다시는 해외에 못 나가요. 이렇게 되면 한 번 해외에 나갔던 사람은 또 계속 나가고 싶어 하고 그러니까 조금 고민도 있고 그럴 때 그 한국 사람이 목사로 사칭한 브로커인데, 그래서 나를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아무것도 모르니까 3국으로, 내가 한국은 안 된다고 딱 잡아뗐거든. 3국으로 미국에서 다 받아주겠다고 해서, 3국이면 한국하고 처벌 수위가 다르거든요. 실제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자녀들도 부모들이 해외에서 다 없어졌을 때도 그대로 가족들은 무사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게, 결국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미국으로 데려다준다는 브로커의 말은 거짓말이었고요. 황상혁 씨는 2014년 10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막상 한국에 도착해보니 피아노계가 북한과는 많이 다르고, 특히 클래식과 실용음악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녹취: 황상혁 씨] “한국 도착하기 전에 한국 K-POP 아이돌 그룹도 봤고 난생 처음 봤거든요. 저는 무슨 인도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거든? 트로트도 이곳에서 처음 알았어요. 근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클래식 지휘도 했으니까 저런 걸 공부해서 나를 업그레이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서울예술대학 지원도 하고 서울대학교도 지원하고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따라 했어요. 근데 그 서울예술대는 수시, 정시가 있다고 그러더라고, 1차 통과되고 2차 넘어갔는데 어쨌든 실용 음악이라는 게 미국 재즈 음악을 알아야 하잖아… 또 서울대에서 입학 통지서가 왔더라고, 그건 클래식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북에서 클래식 했는데 그걸 안 하고 다시 공부하려고 그랬는데, 제 주변에 교회 분들이나 장로님이 나보고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고 서울대가 엄청 세다고 생각 바꾸라고 해서 다시 클래식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황상혁 씨는 2016년, 서울대 음악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북한도 고전 클래식을 연주하긴 하지만 서양 음악은 제대로 배울 수 없었기에 황상혁 씨에게는 또 새로운 도전이었는데요.
[녹취: 황상혁 씨] “서울대는 완전 클래식, 제가 북에서 클래식을 배웠다고 하지만, 깊이가 없고 상식적인 걸로 많이 하고 그다음에 북한 음악을 클래식으로 만든 곡이 50%가 그거고, 서양 음악이 50% 근데 서울대는 100%가 외국곡이더라고 그러니까 깊이가 있더라고요. 또 미국 음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클래식 적으로 하니까 그건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호기심이 있어서 그것도 좀 했어요. 나도 좀 더 이렇게 연마되고, 그렇지만 아직도 실용음악 여유가 되면 학원 같은 데 가서 조금 배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올해 드디어 황상혁 씨는 대학원을 졸업하는데요. 어학 문제로 그동안 졸업하지 못했다가 다음 달, 2월 긴 여정을 마무리 짓습니다.
[녹취: 황상혁 씨] “올해 졸업 예정인데 제가 16년도 들어가서 원래 18년도에 나와야 하는데 마지막 학기 들어갈 때 영어 점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난 영어 점수가 없거든? 영어는 전혀 안 배웠어요. 그래서 TEPS를 쳐야 하는데 너무 완전히 담벼락이야, 그래서 내가 한 1년 휴학하고 학원 계속 돌았어요. 그런데 그 1년 동안에 갑자기 그건 진짜 난감하더라고... 그래서 결국은 2024년 2월에 졸업하게 됐습니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큰 난관이었던 대학원 졸업과 함께 그는 현재 다양한 곳에서 연주 활동과 방송 출연으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선 대학원을 졸업하는 소감은 어떨까요?
[녹취: 황상혁 씨] “좀 더 가치가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들고 북은 음대가 하나밖에 없거든요. 여기는 한국에는 300개가 된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명실공히 북한의 제일 탑인 대학에서 졸업하고 대학교수까지 하다가, 한국에 와서도 서울대, 타이틀이 멋있잖아, 그래서 지금도 박사원도 늦었지만 도전해 볼까? 하고 또 3월에는 미국 하버드 오케스트라단이 3월 13일에 롯데콘서트홀에서 ‘트리플 콘체르토’ 그거를 거의 40~50분, 1, 2, 3악장을 나랑 협연하겠다고 제의가 들어와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황상혁 씨는 이웃 주민을 위한 나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부딪히는 일도 많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 가르쳐 온 경험과 노하우로 어르신들에게 더 쉽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황상혁 씨] “지금 제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피아노 강사도 하거든요. 그래서 어르신들 가르치고, 그게 또 복지라고 하잖아... 현재 또 국립통일교육원 객원교수 임명장을 받았어요. 나는 진짜 자신 있거든요. 왜냐하면 중국에서 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문 학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중국 한족, 조선족 3살짜리 말 못 하는 애들부터 아예 90살 할머니까지 할아버지까지 다 했거든, 그것도 7년 세월, 그것도 하루에 12시간, 13시간씩 여기는 상상 못 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 노하우가 여기서 한국 사람들한테는 내가 말투 때문에 조금 거리감을 두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열성 팬들 돼서 내가 뭐 가라 그래도 안 가요.”
그러면서 이제는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녹취: 황상혁 씨] “젊었을 때 조금 배우다 말다 했는데 이제 나이 많으니까, 치유도 되고, 배우려고 했는데 이런 선생 없다고 너무 좋다고... 그러니까 그분들도 제가 북에서 왔으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자꾸만 피아노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뭘 자꾸만 저를 도와주시려고 조언도 많이 주세요."
어느덧 정착 10년 차가 된 탈북 피아니스트 황상혁 씨. 새해의 바람 함께 들어봅니다.
[녹취: 황상혁 씨] “이제 실제 눈앞에 닥쳐온 지금 졸업,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다음에 박사원 추천도 잘 되고 그다음에 유명한 하버드 오케스트라하고 저하고 지금 그게 제일 잘돼서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일이 쫙 풀리면서 갈 수 있는, 다들 밝은 미래가 펼쳐질 거로 생각하시고 특히 대한민국이 정말 지구상에서 제일 살기 좋아요. 그래서 다들 오래오래 지금 행복하시고 가족의 그야말로 모든 행복이 꼴딱꼴딱 차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