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고립과 연결에 관한 극을 써온 한 탈북 여성이 있습니다. 2008년 한국에 정착한 김봄희 씨인데요. 동국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2019년엔 문화 예술을 통해 차이를 넘어 사람을 잇는 예술집단, '문화잇수다'를 설립했습니다. 최근에는 저출산 시대의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을 써 관객에게 극을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연극 '유모차를 끌던 그 사람' 현장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연극 현장음]
아이를 키우는 한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고단했던 하루를 보냈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위로하는데요. 극이 진행되며 여자는 점점 날카로워지고요. 우발적인 살인까지 하게 되는 여자의 고립된 상황을 보여줍니다. 먼저 연극 '유모차를 끌던 그 사람'에 관한 자세한 얘기, 김봄희 연출가에게 들어봅니다.
[녹취: 김봄희 연출가] "'유모차를 끌던 그 사람'은 좀 극단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주변에 있는 이야기이고요. 아이를 혼자서 양육하는 고립된 보호자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블랙코미디 형식을 빌려서 출산과 육아를 대하는 우리 사회에 이런 단면들을 조금씩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저는 첫째 아이가 17개월이 됐고, 둘째가 지금 배 속에 있는데 4개월이 됐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생각하면서 기획하게 됐습니다. 저의 이야기도 있고 주변에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대본을 보내줬을 때 아기 엄마들은 공감하고 또 다른 분들은 약간 피해의식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근데 그 반응들이 다 재밌었어요."
극에는 한 부부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러 상황에서 멀티 역할을 맡은 두 배우가 등장하는데요. 김봄희 연출가는 여자 주인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녹취: 김봄희 연출가] “주인공은 아기가 없이 싱글일 때는 워낙 온화하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이라는 존재가 생기니까 처음 겪어보는 이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막 욱하고 올라오는 것들을 참지 못하고, 그리고 아이의 일 앞에서는 이성을 잘 지키기 어려워하는 엄마 역할입니다. 저는 어떤 인물에 있어서도 연출가로서 그 감정에 치우쳐서 어떤 인물만 좀 더 돋보이게 하고, 중요시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회 구성원은 각자만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 사정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거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김봄희 연출가는 극의 마지막 부분, 유모차를 두고 엄마가 떠나는 장면을 가장 고심했다고 합니다.
[녹취: 김봄희 연출가]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엄마가 결국은 아이를 포기하고 나가는 장면인데, 그게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내가 괜찮은 보호자인가? 제가 사실은 아이 낳기 전에 인생을 막살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아이를 낳으니까 어디 가서 더 조심하게 되고, 아이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니까 자기 양심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니까 고민하는 것도 많아지는데, 어떤 때는 나 너무 우리 아이 앞에서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없는 게 애가 더 낫지 않나? 이런 생각할 때도 가끔 이제 있죠. 너무 고민이 될 때도… 그래서 그 장면이 저는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김봄희 씨는 엄마로서 또 임신부로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을까요?
[녹취: 김봄희 연출가] “저는 다른 것보다 그 사회에서, 엄마들이 자식 일에 있어서 이성을 잃을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럴 때 제가 엄마로서 바라는 건 '아, 저 사람이 자식 일에 불안을 느껴서 어쩔 줄 몰라 하는구나.' 하고 한 템포, 두 템포 기다려 주면 좋은데 왜 저래? 이렇게 되면 더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자꾸 고립돼서 그런 부분들이 어려웠습니다. 좀 많이 고립됐던 것 같아요. 초반에,저는 주변에 '나 지금 고립 중이니까 나 도와줘야 한다고 나 도와달라고.' 그래서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정말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주변에서 다 도와주셨거든요. 아이 봐주신 분들,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아서 안 도와주셨으면 한 걸음도 밖에 못 나갔을 거예요."
그러면서 이 극을 통해 저출산 시대의 문제를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랐습니다.
[녹취: 김봄희 연출가] “저는 북한이탈주민인데요. 저는 탈북하는 것보다 어려웠던 게 육아였고 근데 탈북한 것보다 보람 있었던 것도 아이를 만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많이 생각하면서 그러면 아이가 잘 자라려면 우선 보호자들부터 상태가 좋아야 하는데, 요즘에 보면 힘든 일 겪는 분들도 많으시고 어려운 일을 겪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왜 그럴까? 하고 보니까 그분들은 그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고, 또 그분들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유가 있는 거라서 그걸 조금 더 우리가 좀 더 세심하게 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멀티 역을 맡은 배우 이건희 씨도 여자 주인공 위주가 아닌, 한 부부의 이야기로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녹취: 이건희 배우] “이 작품 같은 경우 엄마 역할을 중심으로 서사가 흘러가는데 사실 이 작품이 엄마에 집중적으로 쏠리는 것이 아닌, 부부가 같이 힘든 사회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겨내려고 가다가 결국에는 어쨌든, 블랙코미디이기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까지 일어나게 되었는데, 노력해도 힘든 사회가 어느 정도는 현실이라는 거 중점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 역할이 어쨌든 같이 살자고 계속해서 행동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들 때문에 다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명의 인물이 서사가 같이 보여주면 이 작품의 의미가 더 두꺼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탈북민 김봄희 연출가와 함께 작품을 하면서 임신부에 대한 시각도 변했지만, 더불어 북한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점도 많다고 하는데요.
[녹취: 이건희 배우] “북한에서 오셨으니까 그 과정도 궁금했고 넘어와서 ‘얼마나 여기에서 삶이 치열했을까?’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씩 해 주셨어요. 몰랐던 사실들도 알게 되었고 제가 사실 배운 게 있거든요. 유모차 같은 경우는 일단 임산부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다르게 생각이 들고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시각적으로 좀 트이게 되고 북한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고 예전에는 그냥 따로, 국가 선언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대화만 잘 되고 합의점만 잘 맞고 사람들은 사실 잘못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또한 이건희 배우는 김봄희 연출가가 이전에 했던 작품, 남남북녀 이야기를 다룬 연극 <벤 다이어그램>을 인상 깊게 봤다며, 앞으로 통일 관련한 연극에도 기회가 있다면 참여해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건희 배우] “일단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가 연출가라면 이 작품을 연출해 보고 싶다. 그냥 이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극 자체가 강요하지 않았고 그냥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에 씨앗 하나를 심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나중에 그런 작품들을 또 쓰신다면 배우로서도 좋지만 연출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객은 이 극을 어떻게 봤을까요?
[녹취: 김세영 씨] “요즘은 출산하지 않고 사는 시대이다 보니까 저도 미래를 생각하기엔 출산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없어요. 근데 간혹 이런 장르의 극을 접하다 보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표현된, 보장되지 않은 사회이다 보니까 더 개선해야 하는 점도 많고 본인이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다는 걸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많이 보이는 극은 상업적 극이다 보니까 이런 소재나 장르를 가지고 하는 작품들이 몇 없어요. 정말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했고 많이 세상에 나오면 더 많은 대중이 이런 문제를 알지 않을까...."
[녹취: 유지원 씨]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몰입감이 있었고 엄마가 점점 갈수록 변화하는 그 감정들, 모습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남편까지 해하게 되는 그런 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이런 블랙코미디처럼 이 사회를 풍자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재밌게 봤습니다."
[녹취: 전재희 씨] “아이를 지키려는 아내와 그리고 가정을 지키려는 남편 간의 갈등이 되게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초반에는, 덜 힘들었을 때는 보듬으려고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갈등이 좀 더 지속되면서 약간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있고 우리가 앞으로 이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좀 더 생각하고 방향성을 어떻게 제시하면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끝으로 김봄희 연출가의 활동 목표와 바람까지 들어봅니다.
[녹취: 김봄희 연출가] “우선은 좋은 엄마이자 멋진 엄마로 존재하고 싶고요. 그만큼 또 계속해서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같이 해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줄 아는 예술가로 잘하고 싶어요. 제가 또 한 몇십 년 하다 보면 좀 괜찮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게 제 목표고, '문화잇수다'는 문화가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서 또 어떻게 공존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아이들, 어르신들 또 다양한 분야의 분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면에서 저희가 한번 고민해 보고 작품을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