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북한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단체가 있습니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고 황장엽 선생이 설립한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인데요. 최근 북한 인권 행사장에 참여해 한국 시민을 대상으로 자기 단체를 홍보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 활동 소식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영상 현장음]
전 북한노동당 비서였던 고 황장엽 선생이 ‘북한의 현 실상과 미래 전망’에 관해 얘기하는 영상입니다. 2006년 '한국자유총연맹'이 마련한 한 자유포럼이었는데요. 최근 북한 인권 행사장에서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이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이 단체는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북한 인권 개선 활동과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의 안정적인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탈북민 허광일 위원장에게 단체의 자세한 소개부터 들어봅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이 단체는 1997년에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신 황장엽 선생님께서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해방을 위해서 만드신 탈북민 결사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북한민주화위원회’라는 단체입니다. 저희는 일단 세 가지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북한 주민의 인권 해방과 인권 보장을 위한 사업, 두 번째 대한민국에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한국 사회의 성공적 정착, 마지막으로 우리가,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봉사활동, 세 가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중점적으로라면 단체명에 맞게 철저하게 북한의 인권과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 거기에 요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체 활동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각 본부에서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탈북민 지도자 양성과 함께 여러 탈북민 단체와 힘을 합쳐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저희는 서울에 있고 11개 본부가 각 지방에 상주하고 있으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단체가 이렇습니다. 사단법인 단체는 정회원 100명 이상이 넘어가면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정회원 100명을 걸어놓고 전국적으로 우리가 한 2천600명의 준회원을 등록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순수 탈북민 단체가 아니라 황장엽 선생님께서 북한의 민주화를 실현하자면 탈북민이 중심에 서되 한국의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한국의 애국자들과 함께 조직한 단체이기 때문에, 이사 구성을 보면 40%가 한국 지인들이시고 그다음에 회원들도 한 15% 정도가 한국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허광일 위원장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잘 살아야 한다면서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자신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저희는 정말 눈만 뜨면 두고 온 고향, 북한으로 가는 게 우리 최종 목표이기 때문에 북한 독재 정권에 신음하는 우리 동포들을 해방하는 이 문제는 우리 생명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우리 목적을 실현한다는 의지로 아울러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북한으로 가자면 한국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북한으로 가야만이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 처자들 앞에서 떳떳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단체 내 탈북민들과 회원들이 한국 사회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광일 위원장이 고향을 떠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요. 언제부터 단체 활동을 했을까요?
[녹취: 허광일 위원장] “저는 95년도, 2년 먼저 왔고요. 그렇게 하고 제가 (황장엽)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98년도, 양재동에 있는 교육문화원에서 그게 98년도로 기억됩니다. 그때 거기서 만나고 그게 인연이 돼서…. 이전 조직이 원래는 뭐였냐면 ‘북한민주화동맹’이었습니다. 2000년도 1월에 조직됐는데 ‘북한민주화동맹’ 조직 때부터 우리 탈북 동지하고 함께 선생님을 보필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단체 활동의 시작부터 함께한 창립 멤버인데요. 허광일 위원장은 수많은 활동 가운데서도 2003년 미국 워싱턴 D.C.에 방문했을 때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합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저희가 2003년 10월 18일에 선생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1차 미국 방문을 수행했습니다. (황장엽) 선생님까지 포함해서 대표단으로 가서 미국 정계, 사회 계 정말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면서 선생님께서 북한의 민주화와 조국 통일을 실현해서 탈북자들의 역할, 국제사회의 의무와 지원 이런 걸 요구하실 때마다 국제 사회가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화답할 때 정말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 목적이 정말 우리가 반드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결심을 확고히 가지게 됐습니다.”
허광일 씨는 2016년 위원장으로 취임해 ‘북한민주화위원회’를 이끌어 왔는데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한국과 국제 사회에 북한 실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인권이라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면서 천부적 권리가 아닙니까? 특히 북한 동포들의 인권은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한 상황에서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깨우고 또 북한에서 자유의 열망, 인권 해방의 열망을 가지고 항상 남쪽을 바라보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외부에서 북한 자유의 정보를 유입해서 반드시 북한 땅에도 암흑의 땅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그래서 남북이 함께하는 동포가 되고 우리 혈육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단체의 한 회원 탈북민 엄태희 씨도 남북의 자유 통일을 위해 오랜 시간 활동했다고 하는데요.
[녹취: 엄태희 씨] “단체 활동은 황장엽 선생님 계시고서부터 쭉 같이 대한민국 땅에 도착하고부터 이 일을 했죠. 기본 노른자위 같은 일들은 뒤에서 묵직하게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했으니까… 지금 새터민들이 여기와서 정착하는데 쉽고, 우리가 거기(북한) 땅에서 왔으면 그 누구를 대변하지 않고 이 일에 다 앞장서야 합니다. 뿌듯한 건 한국 국방이 든든하고 세계에 한국이라는 이름이 올려질 때 그때는 너무 가슴이 부풀어서 희열을 느끼고, 빨리 대한민국의 국방과 모든 경제 분야 문화, 외교 분야가 모두 튼튼해야 북한을 빨리… 그래서 우리가 통일해서 세대가 더 가기 전에, 우리 세대에 빨리 끝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기 때문에 항상 가슴이 부풀죠.”
그러면서 아직은 젊은 세대가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적어 그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고요. 그만큼 자신들의 활동을 더 폭넓게 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엄태희 씨] “앞으로 우리 미래의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 주춧돌이 돼야죠. 윗돌이 든든해야 앞으로 나가는 방향도 뚜렷하고 한반도가 앞으로 통일돼서 잘살자는 게 우리 국민들의 목적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젊은 세대들도 눈을 떠야 하고 (탈북) 선배들이 먼저 온 지는 오래지만, 다 10년, 20년, 30년 됐지만 지금 이제 기초를 해 나가는데도 하나하나 디딤돌이 올라가야 앞으로 강성대국으로 나가고 통일 한반도에서 살 수 있는, 그 얼마나 좋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런 형태로 행사를 많이 진행하고 앞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개방이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소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회원인 탈북 여성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분은 한국에 정착한 지 13년 차이지만, 행사 참여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북녘에 남아있는 가족이 걱정돼 활동을 안 한 이유도 있지만, 지금까지 자녀를 키우고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녹취: 탈북 여성] “한국에 와서 정착해야 하잖아요. 자녀도 데려오고 동생도 데려오고 나도 정착하고 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근데 주변에 모임 가고 이럴 시간이 없었어요. 근데 딸도 대학 졸업시키고 아들도 자립시키고 지금 혼자 뭔가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 됐거든요. 그래서 둘러보니까 이렇게 북한인권센터도 있고 모임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못 하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저도 13년 동안 살다 보니까 자유 대한민국도 거저 이뤄진 게 아니잖아요. 예전 역사를 보니까 정말 민주주의를 위해서 수많은 대학생의 희생도 있고 큰 노력해서 이루어진 건데 북한은 그럴 수조차 없잖아요. 특히 인권에 대해서는,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이제는 같이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왔습니다."
끝으로 허광일 위원장은 앞으로도 북한 인권 운동가로서 남북한 평화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자기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광일 위원장] “이제는 지나간 옛날입니다만 이제는 그 세월을 다시 붙잡을 수는 없는 거고 저는 남아 있는 제 여생을 내 가족뿐만 아니라 북한 2천 400만 동포들을 해방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데 저희 여력을 다 바치려고 합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