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엘리트 공연단원으로 활동하다 가족의 탈북으로 인해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민이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에서 세 아이의 엄마로, 유튜버로, 당당한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소소한 일상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탈북민 한서희 씨를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영상 현장음]
2007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한서희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피앙한서희TV’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탈북 계기에 관한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서희 씨는 북한에서 평양 인민보안성 협주단에서 성악가로 활동했고요. 협주단 안에서도 최정예 단원 10여 명 안에 꼽힐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앞에서 노래하던 어은금병창조, 그러니까 비밀 엘리트 공연단 출신이라고 한서희 씨는 말하는데요. 이렇게 명예와 실력을 다 갖추고 살아가던 한서희 씨 가족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녹취: 한서희 씨] “그때는 북한에서 2000년도 초부터 중 후반까지 남한 드라마가 북한에서 굉장히 유행할 때였거든요. 저희 오빠도 그때 드라마를 봤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집안의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해서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셨거든요. 북한은 출신 성분을 빼놓고는 본인들의 삶을 잘 살기는 어려운 곳이다 보니까 부모님은 반대하셨죠. 그래서 둘이 정말 죽고 못 살 것 같아서 우리가 이 북한 땅에서는 우리의 사랑을 꽃피울 수 없으니 출신 성분이 없는 자유로운 곳에 가서 사는 건 어떠냐, 남한 드라마도 많이 봤겠다. 그 드라마 속에서는 굉장히 자유롭게 살고 있고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출신 성분 이런 것도 없더라고요. 그 당시에 한국행이 몰래몰래 많이 이루어질 때니까 그럼 우리도 한국 가보자, 해서 둘이 한국으로 떠난 거죠.”
그렇게 한서희 씨의 오빠는 고향을 떠났는데요. 탈북하기 전 옷장 속에 편지 한 장을 남겨놨다고 해요. 부모님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남겼고요. 한국에 정착해서 돈을 많이 벌면 다시 부모님을 모시러 오겠다는 얘기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은 아들이 탈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녹취: 한서희 씨] “우리 가족은 아빠도 행정 간부로 계셨고 오빠도 당시에 전문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없어진 거를 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신고 들어가고 우리 가족이 아예 봉쇄망에 속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북한 체제를 누구보다도 아빠가 더 잘 아셨기 때문에 그런 빠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도 평양에서 인민보안성 협주단에서 성악배우로 활동하면서 있다가 갔더니 오빠가 그렇게 탈북을 해버린 상황이고 저도 울면서 부모님과 함께 탈북 행에 올랐죠.”
그렇게 먼저 떠난 오빠를 따라 모든 가족이 한국에 입국했고요. 한서희 씨는 급작스러운 탈북에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그야말로 막막했다고 합니다.
[녹취: 한서희 씨]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거는 여기 아는 사람도 없고 직업도 그 당시에는 저희가 알아서 구해야 하는 상황이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누워서 ‘여기서 어떻게 먹고 살지?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이런 정말 까마득함만 들었었죠. 정말 그런 정보조차도 없었고 ‘여기서는 예체능을 하면 안 된다, 무조건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노동을 해야 한다.’ 이런 거를 많이 강력하게 심어줘서 저는 예체능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아예 공부조차 저는 시도도 못 했었죠. 그래서 그냥 알바하고 핸드폰 대리점 가서 알바하고 컴퓨터 자격증 따서 사무직에서 경리로 일하고 비서로 일하고 이러면서 저와는 거리가 먼 쪽에서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갔었죠.”
그렇게 자기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정착 생활을 하다가 2012년 한서희 씨는 탈북민이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하게 됩니다.
[녹취: 한서희 씨] “방송은 섭외 전화가 왔는데 사실 저도 탈북민으로 살면서 오해 아닌 오해도 많이 받고 탈북민이라 하면 선입견이 되게 많았었거든요. 그래서 그 인식을 개선하고자 물론 북한에서 어렵게 산 것도 있지만 또 배울 수 있고 우리가 열심히 살고 대한민국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걸 좀 보여주자는 생각에 이제 그전에는 방송 제의가 되게 많이 왔었지만, 친척들의 신변 보호 때문에 안 한다고 했었다가 이렇게 숨어서만 살 문제가 아니구나, 목소리를 내서 우리가 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게 또 대한민국의 세금도 잘 낼 수 있고 또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을 하게 됐었죠.”
그렇게 한서희 씨는 방송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고 또 안보 강사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3명의 아이를 출산했는데요.
[녹취: 한서희 씨] “이제 일을 할 만하면 아이를 출산하고 하고 해서 어쨌든 엄마의 역할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코로나 시기이기도 하고 북한에 대해서 북한 인권이라든가 또 탈북민들의 정착이라든가 이런 거에 대해서 좀 뭔가 얘기해 주고 싶다, 이 채널을 통해서 얘기해 주고 싶다, 자유의 소중함. 지금 삶의 소중함을 가지고 힘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에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었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많은 탈북민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만큼 한서희 씨도 어떤 콘텐츠를 다룰지 많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녹취: 한서희 씨] “이제 새로운 거는 사람들이 새로운 탈북민이 나오는 거를 선호하는데 그거는 이제 제가 전국을 또 다녀야 하면서 인터뷰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인터뷰하면서 제가 다닐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아직 아이가 어려서 욕심을 안 부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만 저는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 또 대한민국에서 정착하면서 겪었던 실수들 또 우리가 느끼면서 너무 신기하고 이런 상황들이 믿어지지 않고 정말 북한과 한국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그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고 있죠.”
그렇게 현재 한서희 씨는 일주일에 3번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편집과 기획 모든 것을 다하기 때문에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고 하는데요. 유튜브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둘째 딸이 큰 힘이 된다고 하네요.
[녹취: 한서희 씨] “특히 저희 둘째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는데 조언을 많이 해주고 예를 들면 나쁜 댓글 같은 거는 좀 안 보고 싶고 또 보면 기분 나쁘니까 그냥 삭제해 버리거든요. 악플을 그냥 놔둘 이유는 없잖아요. 제 채널이니까 그래서 삭제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둘째가 ‘엄마, 요즘은 이렇게 나쁜 댓글 삭제하는 게 유행 아니야.’ ‘왜?’ 하니까 이 채널을 보면 이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고 품성을 알 수 있대요. 그래서 아니 이거랑 뭔 상관이야 하니까 그 나쁜 댓글마저도 포용하는 인품을 사람들은 더 좋아한대요. 나쁜 댓글조차도 그냥 봐주고 놔둬야 사람들이 이 사람은 이런 것도 다 이해하는 사람이구나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디어도 내주고 사실 둘째 딸 덕에 제가 유튜브를 만들게 됐어요.”
그러면서 한서희 씨는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녹취: 한서희 씨]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좀 한이라고 하면 그래도 북한에서 성악을 전공했었는데 여기 와서 성악을 해보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 둘째가 저는 시키려고 해서 시킨 게 아닌데, 본인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서울시 합창단에서도 활동하고 있고 콩쿠르 나가서 상도 막 받아오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본인이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저도 뒷바라지를 하면서 애가 나중에 성악을 하게 된다면 나도 같이 이 아이랑 어느 순간에 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근근이 성악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한서희 씨는 다시 성악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연습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요.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는 한서희 씨입니다.
[녹취: 이탈리아 가곡 성악 현장음]
끝으로 한서희 씨는 자신을 응원해 주는 구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한서희 씨] “제가 그렇게 막 반짝이거나 이런 아이디어가 아니라도 늘 재미있게 시청해 주시고 응원의 댓글 달아주시는 덕분에 이 힘을 입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늘 저를 응원해 주시는 만큼 복 받으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