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많은 탈북민이 농업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농업에 재도전하는 건데요.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한국에서 행복한 귀농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 최민정 씨를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판매 현장음]
서울의 한 통일문화 체험장에서 '지리산청냇골'을 운영하는 탈북민 최민정 대표가 한국 시민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녹취: 판매 현장음]
탈북민 최민정 씨는 지난 2006년에 한국에 입국했고요. 현재는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표고버섯 농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례는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지하수를 농수로 이용할 수 있고요. 그래서 버섯 농사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합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최민정 씨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아 표고버섯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요. 먼저 회사 소개 최민정 대표에게 들어봅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여기는 '지리산청냇골' 농업 법인 회사인데요. 사실 우리 북한이탈주민이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잖아요. 그래서 주 법인이 설립된 목적은 사회적 기업으로 진출하려고 해서 가는 기간이에요. 준비 과정인데 이 부스가 지역 농민과 새터민들이 공존하는 일터를 제공하는 그것을, 기초를 배울 때 먼저 와서 본인이 할 수 있으면 제가 최대로 내가 아는 것만큼 내가 걸어 온 길을 힘든 길을 안 걷게 하기 위해서 법인을 만들었고 우리 생산물은 표고로 시작해서 오이도 하고 있어요. 스마트팜 오이도 하고, 이거는 지역인과 같이 공생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민이 하는 배나 단감이나 같이해서 파는 그런 부스예요. 우리가 아침 새벽 4시부터 농업을 하거든요. 저녁 6시까지 하니까 바깥에 사람들이 어떻게 상품을 개발하고 어떻게 판로하는지 봐야만이 우리가 다음번에 아이디어가 나오니까 그래서 참여하게 됐어요.”
최민정 씨는 초창기 정착 생활을 떠올리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농업 일을 한 건 아닌데요. 취업을 위해 포크레인 기사 자격증과 운전면허 1급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고요. 일거리가 많지 않았던 운전 일을 그만두고 다시 양말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그러다 최민정 씨는 과로로 쓰러지게 되는데요. 그때 난치병을 알게 됐고요. 그러면서 귀농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지금 제가 농업 한 지 7년 정도 돼요. 만 7년, 근데 원래 북한에서부터 농민 출신이고 중국에서도 농사를 지었고 한국에 와서 다시 농민으로 돌아왔습니다. 농업을 하게 된 이유는 지역에 와서 제가 원래 아파서 경기도에 살면서 모야모야병에 걸려서 지역에 내려갔거든요. 내려가서 몸이 쾌유가 된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또 살 만하니까 생계가 걸리잖아요. 그러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농업인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농업을 시작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어려운 길이 많았죠.”
최민정 씨는 남편의 고향인 전남 구례에 발을 딛었습니다. 남편 또한 농업에는 자신 있다고 말하는 아내를 믿고 귀농한 건데요. 방금도 들으셨듯이 그 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사실 낯선 곳에 가서 땅을 잡는다는 게, 사실 시골 분들이 '김정일이 와서 표고 하우스 짓는대' 이런 분들도 있었어요. 북한이탈주민이 와서 표고 하우스를 짓는다니까 왜 김정일이 여기까지 왔대 이런... 그걸 듣고 나서 제일 처음에 황당했는데 저 사람들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겠다, 놀라서 충격을 받았는데 살아가면서 그 사람들만의 표현이고 제일 처음에 어려웠던 길을, 이 과정을 거치다 보니까 서로가 좋아서 지금은 지역 주민들과 밤에도 '바빠요. 내일 상품 보내야 해요.' 하면 밤중에 와서 세 시간 네시간씩 동네 분들이 와서 해주고 이야기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면서 '아, 내가 이때까지 헛살지 않았구나. 돈은 없어도 내가 사람의 마음을 가졌구나.'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최민정 씨는 탈북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역 축제에 발 벗고 나서며 지역 주민들과 가까워졌고요. 그런 최민정 씨의 모습을 보며 주민들도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같이 온 분도 옆에 사시는 어머니 분인데, 같이 하고 농사지을 때 내다보면서 '내가 도와줄게.' 하면서 와서 도와주고 근데 살만한 곳인 것 같아요. 농촌이 발 딛기는 힘들어도 정작 우리 마음을 몰라서 그렇지, 표현은 다 다르잖아요.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과정을 거치니까 그분들도 똑같은 우리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최민정 씨는 지역 주민의 마음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버섯 재배에도 열을 올렸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한철 농사를 망쳤기 때문에 버섯 배양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하나하나 다시 확인했고요. 포기하지 않고 연구한 결과 표고버섯 배양에 성공했습니다. 꾸준한 수익을 내며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럼 '지리산청냇골'에는 어떤 분이 함께하고 있을까요?
[녹취: 최민정 대표] “남편과 제가 하는데 옛날에 북한이탈주민 채용했어요. 근데 사실 북한이탈주민 채용해도 왔다가 일하다가 힘들어서 나갔다, 들어갔다 지금은 혼자서 하고 있지만 그분이 언제든지 오면 받아줄 마음도 있고 누구든지 하고 싶다고 하면 제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 생각이에요.”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만큼 탈북민에게는 열린 곳이라고 전했고요. 최민정 씨는 자기 노하우도 아낌없이 나누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생산품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상품은 어떤 걸까요?
[녹취: 최민정 대표] “저는 표고 칩이요. 표고 된장국에도 넣을 수 있고 표고 볶음밥을 할 때도 넣을 수 있고 표고밥을 할 때도 넣을 수 있고 다양하게 써요. 우리가 밀키트 제품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표고 칩이 제일 좋아요. 그게 너무 부합한 거예요. 야외에 나가서도 한 줌 넣어서 볶아 먹을 수 있고 된장국에 넣을 수도 있고 다방면에... 표고 슬라이스는 썰면 큰 게 보여서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근데 칩은 너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끔 했어요.”
그러면서 최민정 씨는 품질이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는다며 자부심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저희만의 장점은 이게 품질에 대해서 모양은 안 보고 식감을 중요시해요. 저는 식감을 중요시하고 품질, 식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 번 구매한 분들은 꼭 다시 구매해요. 합당한 가격이다, 너무 맛있다 하고 다시 구매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면이 있어서 자랑스럽고, 제가 또 원래 오이를 스마트팜, 작년도에 시설을 지어서, 스마트팜은 청년 농부들이 제일 하고 싶어하는 지금 신에너지 사업이잖아요. 근데 하면서 사실 우리 북한이탈주민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하면 꼭 나한테 와서 물어봤으면 이런 마음이 들어요. 내가 그 과정을 건너가면서 너무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나 같은 길을 다시 걷지 말았으면 그런 생각... 네.”
최민정 씨는 농사 일을 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뿌듯했던 순간 있죠. 표고하면서도 사실 사람이라는 게 살면서 돈 여유는 없잖아요. 억만장자 벌어도 돈은 여유가 없는데 조금이라도 남이랑 나눠서 먹을 수 있다는 게 그때 제일 뿌듯해요. 그때 단체나 이런 데 '오늘 여유분 있는데 나눠 드실래요?' 이야기하면 그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해서 와서 가져갈 때 제일 뿌듯해요. 그래서 그날 밤은 '아, 내가 뭐가 된 것처럼 큰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 위로받으려고 하는 건데 뿌듯해요.”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얻는다는 최민정 씨. 앞으로의 바람은 어떤 건지 물어봤는데요. 물론 사업을 더 크게 확장하는 것도 있겠지만 귀농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얻어간 만큼 지금 이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 또 그 안에서 서로 도우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민정 대표] “이게 과제가 많죠. 많은데 저는 크게 안 보고 내가 이거 하면서 첫째로 내 마음이 치유됐기 때문에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돈을 떠나서...”
끝으로 최민정 씨는 자신이 귀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역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고요. 자신이 받았던 것처럼 앞으로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