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한 집 건너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커피 전문점이 많은데요. 수많은 커피전문점 가운데 맛 하나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탈북민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탈북민의 세상 보기’, 오늘은 13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탈북민 조명희 씨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서울에서 동예원 기자입니다.
[녹취: 조명희 씨] “안녕, 인재 씨. 오늘 바빴어? 재료 같은 건 다 준비돼 있지?”
[녹취: 이인재 씨] “네. 재료 다 있고요. 과일이나 컵 같은 거 시켜야 할 것 같아요.”
[녹취: 조명희 씨] “알겠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카페, 시화전에서 탈북민 조명희 사장과 직원 이인재 씨가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조명희 씨는 하나원 24기로 지난 2002년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인데요. 이곳 일산에서 카페를 운영한 지 벌써 13년째라고 합니다. 이제는 누구보다 커피를 잘 아는 커피 전문가가 되었는데요. 사실 조명희 씨는 북한에서 커피의 ‘커’자도 몰랐다고 하고요. 처음 창업을 생각했을 때는 카페가 아닌 찻집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조명희 씨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녹취: 조명희 씨] “그때는 커피를 북한에서 와서 커피를 잘 안 먹을 때여서 왜 저렇게 쓴 커피를 마실까? 그땐 찻집을 하고 싶잖아요. 찻집을 하고 싶은데 그때 뭘 할까 생각하다가 뭐 옛날에나 찻집이 있었지. 커피전문점이 유행하면서 '아, 커피를 배워서 운영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찻집보다는 커피전문점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 조명희 씨는 바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전문용어와 영어로 가득한 수업을 들으며 첫 번째 도전은 실패하게 되고요. 그 이후 조명희 씨는 재도전을 하게 되죠.
[녹취: 조명희 씨] “일단 한국에 와서 제일 힘든 게 영어를 못 배운 거잖아요. 모든 게 영어로 되어 있고 모든 설명, 아무래도 커피가 산지나 이런 것들이 다 영어로 돼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학원을 찾아가서 창업 반에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북한에서 왔고 영어를 안 배웠다. 그래서 선생님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 밑에다 선생님이 교과서에 과목에다가 한글로 써서 그걸로 설명을 해줬고 그렇게 처음에 외웠죠. 로스팅도 하고 했는데 영어가 잘 안 들어오니까 수업이 제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 이후에 제가 6년 후에 다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면서 수업을 다시 듣게 됐는데 그때는 설명이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지난 2010년 조명희 씨는 자신만의 첫 가게를 열게 됩니다. 시와 그림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은 카페, 시화전을 열었고요. 시화전에는 구수하고 달콤한 커피 향이 가득 퍼졌죠. 조명희 씨는 자신이 만든 커피는 쓰지 않고 구수한 게 매력이라고 말했고요. 그래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도 아메리카노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손님들도 커피 맛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더욱 뿌듯하다고 말했는데요.
[녹취: 조명희 씨] “무조건 이게 맛있다고 해서 열 사람이면 열사람 입맛 다 맞을 수는 없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내 입에 맛있어야 그게 맛집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커피도 개인 취향이라서 먹었을 때 질리지 않고 내가 편안하게 와서 쉴 공간, 저도 밖에 앉아있다가 손님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소리를 들을 때 너무 기분 좋은 게 이 집 커피가 너무 맛있어. 서울로 갔는데 회사 사람들도 꼭 커피를 사 오란다 하고 커피를 가져가는 사람, 아니면 다른 데 가니까 너무 커피가 맛이 없어. 하고 회사원들이 매일 오는데 주말이나 저녁에도 일부러 친구 데리고 와서 커피를 마신다든가 이런 말을 들을 때 저는 너무 뿌듯하고 좋죠.”
그리고 조명희 씨는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료 제조도 직접하고 있습니다. 수제 과일청으로 맛은 물론 건강하게 마실 수 있는 과일 주스인데요. 이 또한 커피만큼이나 많은 손님이 찾는다고 해요.
[녹취: 조명희 씨] “저희는 모든 청이나 이런 것들을 제가 손수 다하고 겨울에는 대추씨부터 따서 대추차 나가는데 그거 먹으러 오시는 분들도 많고 최근에는 케일 주스라고 해서 케일하고 파인애플하고 키위하고 섞어서 나가는데 그것도 단골이 생겨서 한 달에 그것도 많이 나가는 편이고 음료 하나하나를 원재료 맛 살리려고 그래서 저번에 한번은 어떤 친구들이 에이드 먹으러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보다 우리 집 맛있어. 맛이 없으면 내가 돈 안 받을게. 내가 그랬거든요. 저희는 레몬 다 착즙해서 에이드를 만드는데 너무 맛있다고 눈이 반짝 떠가지고 감사하다고 하고 가니까 그런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좋죠.”
같은 지역주민, 동네 주민으로서 조명희 씨는 손님을 아주 살갑게 대했고요. 단골이 오면 자연스럽게 안부부터 묻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명희 씨는 처음부터 손님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서 이점 또한 가게 운영하며 바뀐 점이라고 말했는데요. 손님들과의 관계, 서비스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조명희 씨] “동네에 이 백석동에 제가 13년째 있다 보니까 아시는 분도 많고 거의 단골이고… 말 한마디에 천 냥 금 산다고 근데 가끔은 저도 이제 저도 억양이 있다 보니까 초창기에는 그냥 ‘저 여기 세미나실인데 단체 받아야 하는데요.’ 그러면서 두 명이 오면 못 들어오게 하면 화내고 안되냐고 그런 말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소리를 많이 듣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하려고 하고 있죠.”
시화전에서 4년째 근무하는 이인재 씨는 이렇게 손님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조명희 사장을 보며 배울 점이 많은 사장님이라고 말했고요. 사실 조명희 씨가 북한에서 온 것을 밝히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요. 전혀 다른 점도 느끼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인재 씨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녹취: 이인재 씨] “저희 사장님은 일단 13년 동안 카페를 해오신 것만큼 단골이 많으세요. 단골 관리를 되게 잘하시는 것 같고 손님 한 명 한 명마다 계속 오래 올 수 있게끔 말도 많이 걸어주시고 좋게 좋게 해주시니까 단골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배울 점이 매우 많죠. 이것저것 일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고 아 나도 손님한테 이렇게 대해야 하는구나 이런 것도 느끼고 있고...”
그리고 조명희 씨가 인터뷰하며 강조한 점도 있었는데요. 바로 우리 모두 다 같이 잘살자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탈북한 만큼 서로 도와가며 힘이 되어주자는 건데요. 그래서 조명희 씨는 자신의 재능기부를 통해 창업을 희망하는 탈북민을 돕고 있었고요. 지금까지 카페 창업을 희망하는 탈북민 4명에게 그 노하우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녹취: 조명희 씨] “저희가 이제 커피 관심 있다든가 그러면 와서 배우고 싶어 하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는 도움을 주고 그러고 있거든요. 저는 여기 와서 사는 새터민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분은 와서 저한테 물어보는데 하고 싶대요. 그래서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요. 얼마나 돈을 갖고 있냐고 2천만 원도 아닌데 대출받아서 할거래요.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와서 하면 되는 줄 알고 전문으로 내가 그 분야에서 나는 몇 달이고 배우고 시작하라고 하거든요. 그래야 하거든요.”
창업이라는 것이, 또 가게 운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더 가족 같은 마음으로 조언을 건네기도 하고요. 조명희 씨는 컨설팅해준 탈북민들이 자신만의 가게를 꾸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더욱 뿌듯한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조명희 씨에게 교육받은 한 탈북민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워낙 가까운 사이라며,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합니다.
[녹취: 탈북민] “언니가 제가 좋아하는 점이 아끼고 열심히 노력해서 살고 무슨 메뉴를 하나 만들면 진심으로 이렇게 언니가 하는 게 다 마음에 들고 커피숍 운영하는 것도 사람들도 많잖아요. 엄청 많아요. 그래서 언니가 손님을 대할 때 하나의 커피나 주스를 진짜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만드는구나, 그리고 열심히 사는구나 이 점에서 너무 좋아서 많이 찾아뵙고 다녀요. 지금도 잘되고 있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요. 그래서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끝으로 조명희 씨는 남북이 통일된다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면서 하루빨리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랐는데요. 그 바람 담아봤습니다.
[녹취: 조명희 씨] “내가 만약 간다 그러면 그래도 지금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도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북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지금은 중국도 교류가 된 지 너무 오래됐고 저는 이제 고향이나 친척들이 사는 시내에다가 하면 그런데다 내 가족을 불러들여서 제가 할 수 있는 커피나 다른 창업 쪽 일을 먼저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와서 적응을 했으니까 여기에 대한 문화, 투자에 대한 그런 게 그쪽 사람들보다 밝을 거잖아요. 그런 쪽 일을 해서 남들보다 빨리 치고 일어나서 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서울에서 VOA 동예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