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 대통령 선거가 3월 9일 실시됩니다. 앞으로 5년 동안 국가의 운영을 책임질 새로운 지도자를 뽑기 위해 현재 정책 토론과 선거 운동이 한창인데, 한국 대선을 앞두고 VOA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을 돌아보고, 동맹국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미국 조야의 기대와 제안을 들어보는 기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를 전해 드립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영상편집: 이상훈)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새해 첫 도발의 신호탄을 쏜 지난달 5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규탄 대신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임기 초부터 확고히 제시한 대북 포용, 관여 정책을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진 유화적 대북 접근은 비핵화 촉진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한 채 오히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기술 진전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남북관계 또한 이전보다 악화됐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에반스 리비어 /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
“한국과 북한은 다른 선율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같은 게임을 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에 북한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입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남겠다고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핵무기뿐 아니라 핵무기 운반 능력까지 보유하고자 했습니다. 그게 북한입니다. 그들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2018년 문 대통령 특사단의 평양 방문 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현 한국 외교장관은 북한이 비핵화할 의지가 있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메시지는 백악관에도 전달돼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주요 계기가 됐지만 워싱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조선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핵 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김 위원장이 ‘핵 포기’를 약속한 것처럼 미국에 전달한 것이 최대압박 기조를 이어가던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 급전환의 ‘원죄’가 됐다는 진단과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
“한국의 진보 정권과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좌파로 불리는 사람들은 북한을 끌어안으면 그들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북한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이를 증명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무관심이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김정은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을 미국과 한국에 불어넣었다고 생각했다고 봅니다. 그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3%에 불과한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내주면서 70%의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김정은의 요구를 받을 경우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을 알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북한은 이때부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문 대통령을 탓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베넷 선임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국 정부 당국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로 지칭하면서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훈계성 발언을 했고, 이후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태생적인 바보’, ‘특등 머저리’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습니다.
이어 2020년 6월 북한이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사실상 문 대통령의 대북 관여 노력은 최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브루스 클링너 /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문 대통령은) 유엔 대북제재 위반 행위를 옹호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와 한국 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 뒤에는 북한에 더 확대된 혜택 목록을 제공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미북 대화가 장기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종전선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다시 미북 대화의 가교 역할을 시도했지만, 종전선언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이마저도 동력이 거의 꺼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켄 고스 / 미국 해군분석센터 적성국 분석국장
“종전선언은 북한에게 체제 결집 목적으로 외부 위협을 만들어 낼 때 사용하는 수사와 선전을 약화시킵니다. 반대로 미국에는 한반도 미군 주둔 이유를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워싱턴에서는 문 대통령의 관여와 포용 일변도 정책이 북한 인권 실태를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져 한국 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엔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등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로버트 매닝 /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김정은을 최대한 좋게 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권 문제를 접어두고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했다는 타당한 주장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남북 간 화해에 성공했다면 강한 변론을 제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한국의 진보 정권은 언제나 강력한 인권 배경을 가진 인사들이 이끌어왔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 이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인권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근본적인 약속을 망각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잔혹한 인권 침해 가해자인 북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하지 않고 다양한 결의안에도 서명하지 않은 건 정말 비극이라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