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다양한 스포츠 소식 전해드리는 ‘주간 스포츠 세상’, 오종수입니다.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불린 준 리, 이준구 사범이 지난달 30일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포츠 전문 매체들을 포함한 미국 주요 언론이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요. 이준구 사범의 삶, 그리고 미국과 세계 태권도 발전에 끼친 영향,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녹취: 태권도 현장음]
고 이준구 사범은 미국 내 태권도 보급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지금은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이나 대도시 지역뿐 아니라, 작은 시골마을까지, 미국 어느 곳을 가 봐도 태권도장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는데요. 이렇게 미국 전역에서 태권도의 인기가 높아지는 시작을,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이 사범이 열었습니다. 그래서 얻은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라는 별명답게, 유명 정치인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이 사범을 스승으로 모셨는데요. 지난 2007년 유엔에서 이 사범이 강연한 내용 들어보시겠습니다.
[녹취: 고 이준구 사범 유엔 강연] “I have been teaching members of U.S. congress for 42 years, and I’m still teaching….”
미 연방 하원의원들을 42년 동안 지도했고, 여전히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었는데요. 의회 태권도 클럽을 구성한 상·하원 의원 350여 명이 이 사범에게서 배웠습니다. 1975년에는 의원들끼리 민주-공화 정당 대항 태권도 대결을 진행했는데요. 이 사범의 활동을 눈여겨 본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리 사범을 체육 특별 고문으로 두기도 했습니다. 또한 스포츠 각 종목에서 유명한 선수들도 각자 필요한 손재간과 발재간을 이 사범으로부터 전수 받았습니다. 미국 권투의 전설적 인물인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쿵후를 통해 동양 무도를 서양에 알린 유명 영화배우 브루스 리(이소룡)가 대표적인데요.
[녹취: 고 이준구 사범 생전 인터뷰] "제가 그 사람(브루스 리)한테 수기를 많이 배웠고, 그 사람은 나한테 족기를 배웠고…"
브루스 리에게 발동작을 가르쳐주고, 대신 손동작을 배웠다는 이 사범 생전 육성 증언인데요. 특히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경기 철학으로 유명했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에게는, 침을 놓거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주먹 공격, 이른바 ‘아큐펀치(acu-punch)’를 가르쳤습니다. ‘벌처럼 쏘는’ 알리의 주먹은 이 사범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거죠. 이 사범은 알리에게 '힘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주지시켰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알리는 인기가 한창이던 지난 1976년, 스승인 이 사범의 부탁을 받고 3박 4일 동안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태권도 경기장 관중 환호]
고 이준구 사범은 이처럼 스포츠와 문화계에서 두루 주목받는 저명인사였을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이민자’의 대표 사례로 꼽혔습니다. 2000년 미국 정부가 선정한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명’가운데 뽑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는데요. 지난 2003년 워싱턴 D.C. 시장이 이 사범을 위해 ‘준 리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범의 성공적 미국 이민 생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지죠?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지난 1957년, 한국인 청년 이준구는 텍사스대학교 토목공학과로 유학을 왔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근처에 체육관을 열어 이웃을 가르쳤는데요. ‘준 리 사범'으로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워싱턴으로 이주한 뒤부터입니다. 1962년 이 지역에 ‘준 리 태권도장’을 차리면서 사람이 몰렸는데요. 198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 일대에만 도장을 11개나 운영했습니다. 여기서 동시에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 어른· 아이 통틀어 1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이 사범의 성공 사례 이후, 태권도 사범으로 한국에서 이민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전역에 도장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스포츠이자 국기인 태권도가, 호신술과 신체단련 수단으로 미국인들 사이에 확산된 건데요. 한민족 고유 무술인 태권도이지만, 한국식과 북한식은 조금씩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사소한 용어부터 다른데요. 두 선수 간의 격투를 한국식 태권도에서는 ‘겨루기’라고 부르는 반면, 북한식으로는 ‘맞서기’라고 합니다.
경기 방식과 규칙도 다릅니다. 한국식 ‘겨루기’를 할 때는 머리와 몸통을 보호하는 각종 장구를 차고 진행하지만, 북한식 ‘맞서기’는 보호장비 없이 글러브(장갑)를 끼고 경기합니다. 특히 이준구 사범은 한국식 태권도에서 도입한 보호장구들을 훨씬 이전부터 고안해 제자들에게 사용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한국식 태권도는 겨루기를 할 때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전광판을 두는데요. 북한 태권도는 앞선 선수가 시간 끄는 것을 막기 위해 전광판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심판들만 봅니다.
태권도를 관장하는 세계기구도 2개로 나뉘어있습니다. 한국식 태권도는 ‘세계태권도연맹(WTF)’, 북한식은 ‘국제태권도연맹(ITF)’이 각각 맡고 있는데요. 한국식 태권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아시아 각국에 두루 퍼진 반면, 북한식 태권도는 폴란드를 비롯한 옛 공산권 나라들에서 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판문점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변화하면서 태권도 양대 기구의 교류도 본격화되고 있는데요. 지난 2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서울과 속초 등지에서 공연하고, 곧이어 한국 시범단이 평양에서 공연했습니다.
양측은 함께 해외 홍보 활동에도 나서기로 했는데요. 이달 25일부터 6월 5일까지 프놈펜에서 진행되는 캄보디아 전국체전에서 한국과 북한 태권도 대표단이 함께 나서 시범보일 예정입니다.
‘주간 스포츠 세상’, 알쏭달쏭한 스포츠 용어를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는, 스포츠 용어 사전입니다. 오늘은 태권도와 권투를 비롯한 격투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KO’란 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KO’는 ‘때려눕히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Knockout’에서 유래됐는데요. 상대방을 공격해 바닥에 쓰러뜨린 뒤, 심판이 특정 숫자를 셀 때까지 그 선수가 못 일어나면 ‘KO승’을 선언합니다. 태권도에서는 보통 여덟을 세고요, 권투에서는 열을 셉니다.
‘주간 스포츠 세상’, 최근 세상을 떠난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 고 이준구 사범 이야기 전해드렸고요. ‘KO’가 무슨 뜻인지도 알아봤습니다. 다음 주에 더 재미있는 이야기 가지고 오겠습니다. 음악 들으시겠습니다. 이준구 사범이 이민한 1950년대, 미국에서는 로큰롤 음악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크게 유행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오종수였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