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5년 만에 재개했던 서방 관광객의 방북을 돌연 중단시켰습니다. 외부 정보 유입과 열악한 내부 실상의 외부 노출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관광 재개 여부가 주목됩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서방 여행객들의 라선 경제특구 관광을 갑자기 중단시켰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영국인 소유의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스’는 최근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라선 관광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는 전례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질랜드인이 베이징에 설립한 여행사인 ‘영파이오니어투어’도 페이스북에 “파트너로부터 라선 투어가 현재 중단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4월과 5월에 투어를 계획하는 분들은 더 많은 정보가 나올 때까지 항공편을 예약하지 말기를 권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둔 북한 전문 여행사 ‘KTG 투어’는 페이스북에 “북한 측 파트너로부터 라선이 모든 사람에게 폐쇄됐다는 소식을 받았다”는 공지를 짧게 올렸습니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전면 봉쇄했다가 2023년 9월 처음으로 외국인 입국을 허용했으나 단체관광객 입국은 러시아에만 제한적으로 승인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말부터 라선 경제특구에 한해 서방 단체관광객을 받아들였다가 3주 만에 이를 중단시킨 겁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이런 갑작스러운 관광 중단 조치의 배경에 대해선 어떤 얘기가 나오나요?
기자) 해당 여행사들의 공지 내용을 보면 북한 당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재개 시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북한이 서방 여행객들로 인해 열악한 내부 실상이 노출되는 데 대해 우려한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라선을 다녀온 서방 여행객들은 언론 인터뷰와 개인 SNS를 통해 관광을 통해 알게 된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부정적 내용을 여행 후기로 공개했습니다.
한 독일인 여행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SNS 채널에 경작을 위해 소를 몰고 다니거나 길 대신 꽁꽁 언 호수를 가로질러 다니는 북한 주민과 낡은 집들, 그리고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는 애니메이션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어린이들의 공연 모습 등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한 영국 유튜버는 언론 인터뷰에서 관광객에 대한 북한 측의 검열과 통제 수준에 놀라움을 표시했고,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 기자 출신으로 세 번째 북한 관광길에 오른 조 스미스는 최근 북한을 여행한 후 “호텔 방 창문 전체에 금이 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산, 삼지연 같은 관광지구를 준비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라선 같은 지방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호텔 유리창이 다 깨져 있었고 지저분했고 상당히 고단한 삶이 녹아났다 이런 부분이 지금 가감없이 외부세계에 노출이 됐거든요. 이게 김정은으로선 상당히 불편한 사항이었던 것 같고 준비되지 않은 조기 관광 재개 이 후유증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북한은 또 인민군 러시아 파병 같은 민감한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북한은 아직 러시아 파병을 대내외에 공식화한 적이 없는데, 서방 관광객 확대는 이같은 소식을 내부에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 최근 여행 후기를 보면 일부 관광객들이 북한 군 파병을 북한 측 관광가이드에 질의하는 등 관련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김 기자, 중국 여행사들도 최근 자국 관광객들을 모집해 라선 관광을 계획했다가 막판에 무산된 일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난달 베이징 소재 여행사인 ‘즈싱허이’가 중국인 대상으로 모집한 라선 3박 4일 관광프로그램이 출발 당일 돌연 무산됐습니다. 당시 중국 내 몇몇 여행사들이 라선 관광상품을 내놓으면서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이 재개되는 듯 했지만 모두 취소됐습니다. 이는 중국 당국이 허용하지 않은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북중 간 정치외교적 갈등이 아직 관광을 재개할 만큼 풀리지 않았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시진핑 주석도 자국 국민들의 북한 방문을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고 관광 활성화를 통해서 북한 경제, 북한 민생을 지원한다는 그런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큰 틀에서 북중 간 당 대 당 관계든 정부 대 정부 관계가 아직 원만하게 진행이 안되고 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북한으로선 주된 외화벌이 원천인 중국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없게 되면서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서방 사람들의 관광까지 일단 차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한의 이런 관광 중단 조치가 얼마나 지속될까요? 외화난에 허덕이는 북한에겐 관광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챙기는 역점사업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외국인 관광은 올해 북한의 핵심 경제사업 중 하나입니다. 노동당 창건 80주년이 되는 해로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경제 성과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북한은 다음 달 6일 열리는 제31차 평양 국제마라톤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고, 오는 6월엔 10년 가까이 준비해 온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개장하는 등 주요 관광 일정이 예정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관광 중단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라선의 시설을 보수하는 등 재단장하고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관광객들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단속 방안을 마련한 뒤 조만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김영희 박사는 원산 갈마해안지구나 금강산 같은 관광특구는 라선경제특구보다 관광객들을 통제하기가 다소 수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희 박사]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는 그쪽의 주민지구와 약간 분리돼 있어요. 그래서 그 안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관광객들이) 주민들에게 그리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김 박사는 북한 관광산업의 성패는 중국 관광객 유치에 달려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중 봉쇄 강화와 미북 협상 가능성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으로선 그동안 냉랭하게 대했던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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