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세계 각지 분쟁의 배후라고 주장하면서 핵 무력 강화 방침을 재확인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강조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를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군절 기념연설을 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8일 인민군 창건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해 연설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핵 역량을 포함한 모든 억제력을 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새로운 계획사업들에 대해 언급하며 핵 무력을 더욱 고도화해 나갈 확고부동한 방침을 재천명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핵 역량 강화의 새 계획’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재래식 무기 현대화나 북러 연합훈련 등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핵 전략 수단들과 실전 수준에서 벌어지는 미국 주도의 쌍무와 다자적인 핵전쟁 모의연습들, 미국의 지역 군사블록 각본에 따라 구축된 미일한 3자 군사동맹 체제와 그를 기축으로 하는 아시아판 나토의 형성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새로운 격돌 구도를 만드는 근본 요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지역 정세의 불필요한 긴장 격화를 바라지 않지만, 새 전쟁 발발을 막고 조선반도 지역의 평화 안전을 담보하려는 지향으로부터 지역의 군사적 균형 보장을 위한 지속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와 함께 “세계의 크고 작은 분쟁 배후에 어김없이 어른거리는 미국의 검은 그림자는 한계 없는 방위력 건설을 지향하는 당과 정부의 노선이 가장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김 위원장의 연설은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거듭 확인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연설에 대해선 어떤 분석이 나오나요?
기자) 이번 연설은 대남 비난 없이 상당 분량이 미국 비판에 할애됐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새로운 핵 강화 계획을 언급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결코 핵을 포기하거나 비핵화를 하진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확고히 함으로써 앞으로 미북 간 대화가 성사돼도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 또는 비핵화 의제에는 응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고 그것이 일종의 밀당, 몸값 올리기 위한 협상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도 있죠.”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올해를 훈련의 해”로 규정하며, 현대전의 요구에 맞는 전쟁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문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미사일 도발 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또한 미국과 한국을 압박하고 주민 단속을 위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필요성에서 나온 발언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는 이례적인 ‘훈련의 해’ 규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드러난 북한 군의 취약한 실태에 대한 김 위원장의 대응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김정은 입장에서 현대전이라는 건 러시아에서 북한이 쓰라리게 피해를 당한 경험을 되살려서 북한의 전투태세를 현대전 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고 그게 금년에 가장 중요한 국방 과제로 등장했을 수 있죠.”
진행자) 김 기자,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원칙을 취임 후 처음 공식화한 뒤 나온 거라서 더 주목이 됐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김 위원장의 연설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과 미한일 3각 공조 유지 방침 등을 밝혔습니다.
지난달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이 관여한 공식 외교문서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북한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김 위원장과의 정상외교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 비핵화를 협상 조건으로 전면에 내세웠다기 보다는 집권 1기 시절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합의했던 북한 비핵화 약속을 2기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협상은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홍 박사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 핵 무력 고도화라는 기본원칙으로 맞대응하면서 자신이 노리는 협상 의제들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전략자산 상시 전개, 양자 다자의 연합훈련 이것은 한미 연합훈련이나 한미일 연합훈련을 얘기하는 거죠. 한미일 안보협력체 그 다음에 아시아판 나토 얘기를 하고 있죠. 그래서 이런 내용들은 향후 핵 군비통제가 됐건 아니면 북한과 미국의 위협 감소와 관련됐건 여기에 대한 내용들이 조정되거나 고려돼야 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인 거죠.”
진행자)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이런 메시지 교환은 여전히 양측 모두 협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걸로 봐야 한다는 건가요?
기자) 그런 분석들이 많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도 미국을 비난했지만 내용은 원론적 수준에 가깝고 트럼프 행정부를 직접 겨냥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정책,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 등이 구체화하지 않은 단계에서 섣부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는 겁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이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 놓고 메시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박사는 특히 핵 무력 무한 확장과 자력갱생을 내세워 내부를 결속시켜 온 김 위원장은 조건만 맞는다면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양욱 박사] “그동안 미국에 신경 안 쓰고 자력갱생으로 간다 얘기를 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 나중에라도 미국과 얘기를 하려면 또 그 서사가 나와야 될 것 아니에요. 미국을 저렇게 전반적으로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국과의 협상과 이런 국면으로의 전환을 어느 정도 암시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진행자) 김 기자,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언급도 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미국과 서방에 돌리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러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의 정신에 부합되게 주권과 안전, 영토 완정을 수호하려는 러시아를 변함없이 지지성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홍민 박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향후 러시아에 대한 지원 확대, 추가 파병을 염두에 둔 발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구병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해당 발언에 대해 추가 파병 의도를 내포했는지 예단하긴 적절치 않다면서도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적인 군사 협력, 러시아에 대한 파병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 대변인은 또 북한이 러시아에 노동자를 대거 파견하는 동향이 지속해서 나타나는 것과 관련해선 “러시아 극동 지역에는 젊은 인력에 대한 수요가 항상 있다”며 “북한이 제3국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은 명백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으로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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