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북한에 공급한 정제유량을 1년째 유엔에 보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보고를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북한 남포 유류 항구엔 이달에만 6척의 유조선이 드나들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각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감독, 감시하는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북한에 반입된 정제유량을 기입하는 표가 마련돼 있습니다.
북한에 허용된 연간 정제유 상한선, 50만 배럴의 초과 여부를 지켜보기 위한 것인데, 북한에 정제유를 공급하는 두 나라, 즉 러시아와 중국이 관련 규정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현재는 작동을 멈춘 상태입니다.
러시아∙중국 대북 정제유 공급량 ‘미보고’
앞서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해 채택한 결의 2397호를 통해 북한의 연간 정제유 수입 한도를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각국에는 매월 북한에 공급한 정제유량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보고한 건 지난해 1월이 마지막입니다.
30일을 기준으로 1년 치에 가까운 보고가 밀린 것인데, 이는 최근 북한과 협력을 강화한 러시아가 사실상 보고를 중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러시아가 보고를 2~3개월씩 늦게 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1년 가까이 보고를 미룬 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8월까지의 정제유 제공분을 유엔에 보고한 상태입니다. 규정 대로라면 9월~12월 기록을 보고했어야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유엔에 제출한 대북 정제유 공급량이 사실상 윤활유 등 비연료 제품의 합산치라는 점입니다.
앞서 VOA는 중국 해관총서 자료와 중국의 정제유 공급량을 비교, 분석해 중국이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 일반적인 연료용 유류 제품 대신 비연료성 제품인 윤활유와 윤활유용 기유 등을 ‘정제유’로 보고한 사실을 파악했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와 중국이 보고 이행 의무를 다 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정식으로 반입된 정제유량은 수년째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2024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작년 1월 정제유 공급분과 중국의 8개월 치 공급량의 총합계는 16만8천679.201 배럴. 이는 전체 북한에 허용된 50만 배럴의 약 33.74%에 해당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극히 일부만을 보고하면서 정제유 상한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가 나온 것입니다.
북한에 반입되는 정제유량을 매월 집계해 북한에 대한 초과 반입을 막으려 했던 안보리의 취지는 무색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유엔 전문가패널의 활동을 중단시킨 러시아가 유엔의 공식 ‘유류 감시’ 체계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아닌지도 주목됩니다.
정제유 관련 활동 계속돼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정제유가 반입되는 정황은 꾸준히 포착되고 있습니다.
일일 단위 위성사진 서비스 ‘플래닛 랩스(Planet Labs)’에 따르면 북한의 최대 유류 항구인 남포에는 올해 1월에만 최소 6척의 대형 유조선이 입항했습니다.
앞서 유엔 안보리 등은 북한 남포에 정박하는 유조선 1척이 실을 수 있는 유류 양을 선박에 따라 1만에서 3만 배럴로 추정한 바 있는데, 이달 남포에서 포착된 6척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북한에는 최소 6만에서 18만 배럴의 정제유가 반입됐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이는 북한의 연간 정제유 상한선의 12~36%에 해당할 만큼 적지 않은 양입니다.
또 VOA는 위성자료와 선박 추적 웹사이트 등을 통해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 유조선이 러시아와 중국 근해에 머무는 장면을 여러 차례 포착한 바 있습니다.
북한 유조선이 러시아와 중국에서 유류를 획득하는 정황으로 해석됐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 정제유 반입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공식 보고와 실제 공급량 괴리 인정
미국 정부도 북한에 불법으로 반입되는 정제유 문제를 지적했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대북 정제유 공급량 보고를 멈춘 것으로 보느냐’는 VOA의 질의에 “결의 2397호는 상한선 초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공급한 정제 석유 제품을 30일 이내에 1718 대북제재위원회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관련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 “Regardless of how you regard the question of whether the cap has been breached, resolution 2397 requires all Member States to notify the 1718 Committee of refined petroleum products supplied to the DPRK within 30 days. So far this year, Russia has failed to comply with its obligations under relevant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이어 “러시아의 대북제재 불이행과 관련해 미국은 유엔 안보리 회원국과 협력해 이 문제를 반복해서 제기해 왔다”며 “우리는 러시아는 물론 중국에도 방해 행위를 중단하고, 북한의 행동을 단합되고 분명하게 규탄하는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에 다시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VOA는 유엔주재 러시아 대표부에 대북 정제유 공급량 미보고와 관련한 내용을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 대령 출신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최근 VOA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안보리 특히 대북제재 1718 위원회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만큼 더 이상의 제재는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미국 등 ‘같은 생각을 가진’ 나라가 독자 제재 등의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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