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루트로 의심받고 있는 라진항에서 최근 대량의 컨테이너가 쌓였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석탄 부두에는 5개월 전보다 4배 더 많은 석탄이 적재됐는데, 선박을 확보하지 못해 반출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라진항의 ‘북한 전용’ 부두에 대량의 컨테이너가 쌓인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민간 위성 서비스 ‘플래닛 랩스’가 촬영한 사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컨테이너가 급속히 쌓이기 시작해 3일에는 부두 한 면을 가득 메운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들은 길이 6m, 폭 2.4m의 표준 규격을 기준으로 약 8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여러 층으로 적재된 경우 그 수는 2~3배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컨테이너 적치는 라진항에서 최근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까지 텅 비어 있던 부두에 24일경 약 110m 길이의 컨테이너가 쌓인 것이 포착됐고, 27일에는 모든 컨테이너가 사라진 채 부두 끝에 다시 소량 적재된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이는 25일과 26일 사이에 선박이 입항해 컨테이너를 적재한 후 출항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중국 전용 부두에서도 ‘컨테이너’ 적치 지속
컨테이너가 계속 쌓이고 있는 곳은 북한 전용 부두뿐만이 아닙니다.
북한 전용 부두 외에도, 과거 중국 전용으로 사용되던 북쪽 부두에 약 130m 길이로 컨테이너가 적치된 모습이 위성 사진을 통해 포착됐습니다. 이 부두는 선박의 입출항 없이도 컨테이너가 지속적으로 쌓이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주로 북한 전용 부두에서만 컨테이너 적재가 확인됐으나, 최근 들어 중국 전용 부두에서도 꾸준히 컨테이너가 쌓이는 장면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라진항에서 이러한 컨테이너 적재량의 변화는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신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백악관은 북한과 러시아가 라진항을 중심으로 무기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는 위성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 사진에는 라진항에 300여 개의 해상 운송 컨테이너가 적재된 모습이 담겼으며, 이 컨테이너가 러시아로 운송된 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했다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켑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는 지난달,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이후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약 1만 6천 500개 컨테이너 분량의 탄약과 군수품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신원식 당시 한국 국방부 장관도 지난해 7~8월 이후 북한이 1만 2천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러시아에 보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만약 북한과 러시아가 실제로 라진항을 통해 무기를 거래했다면,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합니다.
유엔은 여러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북한의 무기 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양국은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김남혁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서기관은 최근 유엔 총회 회의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김남혁 서기관] “We have never had arms dealings with the Russian Federation and we have no plan to do so in the future either. We strongly denounce the hostile forces for the rumor of arms dealings as a plot breeding story against the DPRK, as well as a part of hostile attempt to tarnish the image of the DPRK in the international arena by invoking the illegal sanctions resolution against the DPRK.”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 역시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며, 무기 거래에 대한 물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석탄도 계속 쌓여…5월 면적의 4배
한편, 라진항 내 러시아 전용 ‘석탄 부두’에서는 석탄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러시아가 제3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부두는 현재 검은 석탄으로 뒤덮여 있으며, 석탄이 쌓인 부두와 공터의 면적은 약 8만 제곱미터에 달합니다. 이는 지난 5월에 비해 약 4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2017년 북한산 석탄 수출 금지를 명시한 결의안을 채택했으나, 북한과 러시아가 합작으로 운영하는 라진-하산 일대에서 선적되는 러시아산 석탄에 대해서는 제재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기업은 과거 라진항을 통해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 석탄을 수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라진항에 석탄이 계속 유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제3국으로 향하는 석탄 수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달간 라진항에서 선박이 식별된 사례는 드물었으며, VOA가 4월부터 집계한 결과 현재까지 총 4척의 화물선만이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석탄은 계속 유입되는데 수출량이 거의 없다 보니 이 일대에 석탄이 줄지 않고 계속 쌓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라진항에서 석탄 운송 선박 수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회사들의 상황과도 일치합니다.
선박 수배 실패로 석탄 적체 현상
VOA는 지난 6월 러시아 회사의 의뢰를 받은 선박 브로커가 북한 라진항에서 중국 다롄항으로 1만5천t(최초 1만t)의 석탄을 운송할 선박을 찾는다는 공고문을 입수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공고문은 전 세계 선박 회사와 용선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입찰 요청으로, 조건이 맞는 선박이 운송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이 브로커는 이후 공고문을 4번 더 배포했습니다. 또 공고문에는 러시아산 석탄 운송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니라는 점도 담겼습니다.
이는 선박 수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나타내며, 북한에서 석탄을 운송하는 것이 선박 업계에 부담이 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에서 운송하는 것은 유엔 결의 위반이 아니지만, 북한 항구에 기항하는 것이 일부 국가에서 독자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선박 업계에 퍼져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은 북한에 기항한 선박의 자국 항구 입항을 일정 기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주들이 북한발 화물을 운송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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