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지난 10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 집권 자민당이 주도하는 연립여당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 수를 확보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개헌안을 국회에서 빨리 발의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일본의 `평화헌법’이 개정되면 동북아시아 정세도 크게 바뀔 전망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살 이틀 뒤인 지난 10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선거 결과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세력은 개헌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63석)과 공명당(13석), 야당인 일본유신회(12석)와 국민민주당 (5석)은 총 93석을 획득했습니다.
3년 전 참의원 선거에서 이미 확보한 의석(84석)을 더하면 177석으로,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참의원 정족수(166석)를 여유있게 넘긴 것입니다.
자민당 총재를 겸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0일 밤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납치 문제와 개헌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기시다 총리] “일본어…”
일본 헌법은 흔히 ‘평화헌법’으로 불립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 2월 제정된 헌법 제9조에서 ‘전쟁 포기’(1항)와 ‘군대 불보유’(2항)를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아베 전 총리는 2012년부터 7년 8개월간 재임하면서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자며 개헌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개헌을 하면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며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반발한데다 일본 국내 여론도 부정적이어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거기에 더해 중국의 위협과 올해 18차례나 계속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은 개헌 찬성 분위기를 높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참의원 압승으로 ‘국민 여론’에 더해 ‘개헌 발의 의석’까지 확보한 기시다 총리로서는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만났다고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 기자는 말했습니다.
[녹취: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 ”자민당도 아베상 사건 때문에 개헌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 때문에 개헌 분위기가 고조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기시다 총리가 헌법 9조1항 즉 ‘전쟁 포기’ 조항을 바꾸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2항을 개정해 헌법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개헌이 이뤄지면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국가로 바뀌어 주변국을 침략할 수 있다는 우려는 맞지 않는다고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일본 ‘주간 동양경제’ 후쿠다 게이스케 칼럼니스트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후쿠다 게이스케] ”자위대가 헌법에 명기되더라도 힘도 없고 의지도 없고, 중국이나 한국에서 그 정도로 비판할 정도의 힘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일본이 개헌을 할 경우 이 것이 한국과 중국 등에 적잖은 외교안보적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선 평화헌법이 개정되면 일본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명칭이 ‘일본 군’이 되든 ‘국방군’이 되든 헌법적 지위를 부여받으면 군사력 강화의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격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는 현재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지만 헌법이 개정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헌법 개정과는 별도로 자민당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로 늘릴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군사비는 11조엔 규모로 늘어나 세계 3위의 군비 지출 국가가 됩니다.
게다가 자민당은 새로운 국가 안전보장 전략도 추진해 중국과 북한 등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적 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확보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개헌과 이어지는 군사력 강화가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미 해군분석센터 켄 고스 국장은 동북아 정세는 그동안 현상유지(Status Quo)에 머물러 왔는데 이제는 바뀔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켄 고스 국장] “It’s gonna break status quo, we don’t know…”
이런 상황은 한국에 외교안보적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국은 미-한-일 안보 협력이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일본의 급격한 군사력 강화에 경계를 늦출 수도 없습니다.
또 핵 문제를 풀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동북아에서 중국-북한-러시아 대 미국-한국-일본 대결구도가 강화되면 한국은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중국의 협력을 얻기가 힘들어집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개헌을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도쿄에서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일본의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시아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 대한 군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개헌과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개헌 절차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개헌은 의회 헌법심사회 논의-개헌안 의회 제출-중의원, 참의원 각각 3분2 이상 찬성-국민투표 등 4단계를 거칩니다.
의회 헌법심사회는 지난해 10월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이미 개헌 문제를 16차례 논의했습니다.
또 이번 참의원 선거로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세력은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정족수를 확보했습니다.
따라서 남은 것은 의회에서 각 정당이 개헌안 내용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입니다.
일본사회는 아직 개헌에 대해 찬반 양론이 팽팽한 상황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기자는 내년 이맘 때쯤이면 개헌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마키노 요시히로 기자] “이르면 내년에 개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빨리하면 내년에 개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후쿠다 게이스케 칼럼니스트는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계산이 복잡한데다 일반인들도 개헌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않아 1년 안에 개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후쿠다 게이스케] “외국에서 보는 것보다 개헌에 대한 일본 정치가 훨씬 복잡합니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내년까지 개헌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은 지난 76년간 미국의 안보우산과 평화헌법에 의지해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습니다.
일본 국민들이 개헌을 선택해 새로운 길로 나아갈지, 아니면 기존 노선을 고수할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