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인권 결의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유엔총회 제3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유엔이 개별 국가의 인권 상황을 국제법정에 회부하도록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연철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유엔총회에서 인권을 담당하는 제3위원회가 18일 전체회의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녹취: 보르게스 대사]
제3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소피아 보르게스 유엔주재 동티모르 대사는 북한인권 결의안이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55표로 통과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유럽연합과 공동으로 결의안을 작성한 일본은 표결에 앞선 제안 설명에서, 국제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개선을 촉구했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인권 결의안에 찬성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일본 대표]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지지함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북한 대표로 참석한 최명남 외무성 부국장은 결의안을 전적으로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명남 부국장]
이번 결의안은 북한을 겨냥한 정치군사적 대결의 산물이며, 진정한 인권 보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최 부국장은 북한에 대한 결의안의 배후에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있다며,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예측불가능한 중대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올해 북한인권 결의안에는 미국과 한국 등 모두 62개 나라가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했습니다.
결의안은 특히 지난 2월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최종 보고서를 토대로 예년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을 담아 국제적 관심을 모았습니다.
결의안은 북한에서 지난 수 십 년 간 최고 수준에서 수립된 정책에 따라 반인도 범죄가 자행됐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는 COI 보고서 내용을 인정했습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가 북한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고 효과적인 맞춤형 제재를 실시하는 등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유엔이 인권 문제와 관련해 개별 국가의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북한은 ICC 회부 조항의 삭제를 강력히 요구하며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외교전을 폈지만 결의안 통과를 막지 못했습니다.
한편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에 앞서 실시된 표결에서 ICC 회부 조항이 빠진 쿠바의 수정안은 찬성 40표, 반대 77표, 기권50표로 부결됐습니다.
쿠바는 ICC 회부가 개발도상국들을 압박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벨라루스, 베네수엘라 등 일부 국가들이 쿠바의 이같은 주장에 동조했지만 대다수 나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대표는 COI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현대사회에서는 유례없는 인권 침해가 자행됐음이 확인됐다며,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 대표는 북한의 끔찍한 인권 상황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미국 대표]
국제사회는 북한에 인권 침해를 중단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질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제3위원회를 통과한 북한인권 결의안은 다음달 유엔총회에 상정된 뒤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공식 채택됩니다.
총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은 유엔 안보리로 전달되고, 안보리가 결의안 내용대로 북한인권 문제를 ICC에 회부하면,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이 결의안에 반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보리 논의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