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되풀이 되는 북한의 권력 2인자들의 비운의 역사가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김정은 체제를 다지는데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해선 엇갈린 전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서 권력 2인자들은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데 희생양이 돼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하는 비운을 겪곤 했습니다.
김정은 체체 수립의 설계자로 일컬어진 장성택 부위원장 또한 한국 정보당국이 실각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2인자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 김진무 박사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핵심 후견인이었던 장 부위원장이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김정은 체제의 걸림돌이 됐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국방연구원 박사] “2008년 김정일이 쓰러지고 난 뒤 북한 국정운영 즉,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그 영향력이 지난 5년 동안 지나치게 커졌다고 보는 거죠, 장성택이 권력을 더 많이 가지게 되면 사람들이 쏠리게 되고 김정은으로선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죠.”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는 장성택 세력에 대한 숙청 작업은 이들의 범법 행위에 대한 단죄라기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쳐서 최고 권력에 대한 도전 의지를 싹부터 잘라내려는 통치술로 분석했습니다.
장 부위원장이 정권을 위협하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유일지도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본보기로 삼았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실제 현실화할 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도 나왔습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박사는 장 부위원장이 정말 실각했다면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갓 2년 밖에 안됐다는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의 모험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진욱 통일연구원 박사] “김정은이 35살이나 40살쯤 됐으면 그렇게 놀랍지 않은데 그런데 2년 만에 김정은 권력이 그만큼 공고화됐느냐에 대해 저는 회의적인데 그런 상태에서 장성택을 쳤다면 정치적 불안정 또는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박사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장 부위원장이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될 지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부위원장처럼 과거 북한 권력 2인자들 또한 1인 지배체제에 도전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거나 수령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 주석 시절 대표적인 2인자는 노동당 조직비서를 지낸 박금철과 김영주였습니다.
박금철은 2인자 자리인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자신이 속한 갑산파 세력을 노동당 혁명전통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스스로 우상화 행보를 보였다가 1967년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계기로 추종세력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김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는 김 주석이 자신의 기반인 항일 빨치산 세력만으로 권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당 조직 비서에 올라 2인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주석의 후계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정된 뒤 일가족과 함께 오지인 자강도 강계로 유배됐고 측근 간부들도 모두 좌천되는 운명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북한에서 권력 2인자들은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데 희생양이 돼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하는 비운을 겪곤 했습니다.
김정은 체체 수립의 설계자로 일컬어진 장성택 부위원장 또한 한국 정보당국이 실각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2인자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방연구원 김진무 박사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핵심 후견인이었던 장 부위원장이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김정은 체제의 걸림돌이 됐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국방연구원 박사] “2008년 김정일이 쓰러지고 난 뒤 북한 국정운영 즉,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그 영향력이 지난 5년 동안 지나치게 커졌다고 보는 거죠, 장성택이 권력을 더 많이 가지게 되면 사람들이 쏠리게 되고 김정은으로선 유일지도체제를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죠.”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문가는 장성택 세력에 대한 숙청 작업은 이들의 범법 행위에 대한 단죄라기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쳐서 최고 권력에 대한 도전 의지를 싹부터 잘라내려는 통치술로 분석했습니다.
장 부위원장이 정권을 위협하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유일지도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본보기로 삼았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도가 실제 현실화할 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도 나왔습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박사는 장 부위원장이 정말 실각했다면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갓 2년 밖에 안됐다는 점에서 김 제1위원장의 모험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진욱 통일연구원 박사] “김정은이 35살이나 40살쯤 됐으면 그렇게 놀랍지 않은데 그런데 2년 만에 김정은 권력이 그만큼 공고화됐느냐에 대해 저는 회의적인데 그런 상태에서 장성택을 쳤다면 정치적 불안정 또는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박사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장 부위원장이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될 지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부위원장처럼 과거 북한 권력 2인자들 또한 1인 지배체제에 도전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거나 수령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희생양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 주석 시절 대표적인 2인자는 노동당 조직비서를 지낸 박금철과 김영주였습니다.
박금철은 2인자 자리인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자신이 속한 갑산파 세력을 노동당 혁명전통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스스로 우상화 행보를 보였다가 1967년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계기로 추종세력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김 주석의 동생인 김영주는 김 주석이 자신의 기반인 항일 빨치산 세력만으로 권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당 조직 비서에 올라 2인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주석의 후계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정된 뒤 일가족과 함께 오지인 자강도 강계로 유배됐고 측근 간부들도 모두 좌천되는 운명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