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한국에 중국 견제를 위한 더 많은 역할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관세 인상, 대중 수출 규제 압박이 거세질 뿐 아니라 중국 억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학 동아시아학 교수는 1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보좌진들이 강력한 반중 정책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어떤 정책이 나올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국과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어온 한국과 일본, 유럽 동맹에 대한 압박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교수] “we don't know exactly what kind of policy might emerge from the Trump administration but it certainly it's likely to include pressure on countries like Korea and Japan and European allies who are important players in the high technology sector and who have long and deep ties in China.”
스나이더 교수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은 한국에 중국과의 경제적∙기술적 관계를 제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그러나 이 같은 대중 압박∙견제 동참 요구는 비단 경제∙기술 분야뿐 아니라 국방 등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를 포함해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 합류할 것으로 보이는 인사들은 미국의 군사∙안보 자원을 중국에 집중해야 하며, 주한미군의 존재는 중국 억제와 견제라는 보다 넓은 목표를 위해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설명입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은 북한 견제 목적으로만 한국에 병력을 주둔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면서 “이는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했던 ‘유연한 대응 역량’ 정책과도 유사하지만, 한국은 항상 주한미군은 북한 억제 목적으로만 존재해야 한다면서 저항해 왔다”고 부연했습니다.
럼즈펠드 전 장관은 재임 시절 유사시 주한미군을 해외에 배치할 수 있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해 한국 정부와 이견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녹취: 스나이더 교수] “But I think more broadly there is this belief and I've seen it expressed by some of the people who are supposedly joining the administration in the Pentagon and elsewhere that the United States should focus its resources on China, its military and security resources on China and in some sense repurpose of the presence of American forces in South Korea for this broader goal of confronting and containing China.”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가능성”
실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는 미국의 군사 역량이 제한적인 만큼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하며 동맹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가능한 한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며 주한미군도 중국에 대응하도록 재편돼야 한다고 VOA에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23년 12월 VOA의 ‘워싱턴 톡’에 출연해서도 “주한미군이 중국에 대응하기에 더 적합한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면서 “주한미군은 중국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콜비 지명자] “They should be designed more for dealing with the Chinese. And in the future, the forces that the Chinese are clearly developing, that they have not stopped developing since the meeting with President Biden in the slightest. (중략) So U.S. forces on the peninsula will need to be focused on being able to deal with PLA.”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가능성”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할 가능성도 큽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는 물론 선거 유세 기간에도 미군 철수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4월 미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아주 부유한 나라”인데 왜 미군을 두고 방어해야 하느냐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지난해 10월 15일 ‘시카고 경제클럽’에서 ‘블룸버그’ 통신 존 미클스웨이트 편집국장과 진행한 대담에서 “그들(한국)은 ‘머니 머신(현금 자동 지급기)’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을 북한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전 대통령] “They have a money machine. We protect them from North Korea and other people. North Korea is very nuclear. I got along with them very well, Kim Jong-un. But they don’t pay us anything.”
그러면서 자신이 재임하고 있다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요구사항 관측은 일러, 압박과 요구는 있을 것”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이날 VOA의 관련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지 않았고, 대통령 당선인이나 그의 주요 지명자가 한국과 관련해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트럼프 1기와 최근 몇 년, 그리고 대선 유세 기간에 트럼프 당선인은 미한 동맹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 미국 주요 동맹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 동맹들은 미국이 그들을 방어하는 데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따라서 새 행정부가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할 때까지는 미한 동맹과 파트너십의 여러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과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좋다”면서 “여기엔 방위비 분담, 미군 주둔 규모,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임무, 관세 문제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So until we hear specific policy pronouncements from the new administration, it's probably best to anticipate that there will probably be pressures and demands of the ROK across many aspects of the alliance-partnership, including in the areas of burdensharing, the size of the U.S. military presence, the roles and missions that U.S. and ROK forces will carry out, and, of course, tariffs.”
“관세와 대중국 수출 규제 압박 거세질 것”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막대한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반도체와 같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미국으로의 마약류 반입과 불법 이민 문제를 들어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었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상무부 차관을 지낸 윌리엄 라인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제경제석좌는 지난달 VOA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임기 때 미국이 양자 간 무역에서 적자를 크게 보는 국가를 표적으로 삼았다”면서 “한국도 여전히 그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계속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라인쉬 석좌] “In his first term Trump targeted countries with which the US has large bilateral trade deficits. ROK remains in that category, so I imagine the country will continue to be a target, although the significant Korean investment in manufacturing in the US may reduce Trump’s concern.”
트로이 스탠거론 윌슨센터 한국 센터장은 지난달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대외 파트너들이 미국을 대하는 방식과 무역 적자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한국 양국이 이런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양국 경제 관계에서 긴장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스탠거론 센터장] “I would think we would have to expect that there will be tens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on economic relations as the two countries try to work through these issues.”
스탠거론 센터장은 다만 한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25% 관세보다는 모든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10~20%를 부과하는 ‘보편적 관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태미 오버비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도 앞서 VOA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보는 국가들은 미국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믿는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밝혀왔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모종의 대책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에 대중국 첨단 기술 수출에 대한 미국의 강화된 규제 준수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대중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 같은 수출 통제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미국, 한국이 더 많은 일 해주길 바라∙∙∙모든 것이 협상 대상”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 석좌는 지난달 27일 VOA의 ‘워싱턴 톡’에 출연해 “미국은 한국이 더 많은 일을 해주길 바란다”며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협상 대상이며, 미국은 한국이 첨단기술정책에서 미국을 더 많이 돕기를 바라고, 무역 불균형을 줄이며, 중국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이 더 많은 지원을 하기를 바란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크로닌 석좌] “But it's rather everything is on the table. We need you to help more on high technology policy. We need you to reduce the trade imbalance that's actually gone more in South Korea's favor. We need you to do more not just on North Korea, but we need you to do more in helping us on China.”
“트럼프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은 관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VOA의 관련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경험상 우리는 미군 주둔 국가의 지원 문제가 트럼프에게 매우 중요하며 그는 한국이 무역과 투자 정책에서 미국을 다소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오핸런 선임연구원] “I doubt that Trump thinks that way. More likely, he will be impulsive. But we know from experience that the host-nation support issue matters to him a lot, as does his sense that somehow South Korea takes advantage of the United States in trade and investment policy.”
트럼프 당선인이 특정한 계획이나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충동적이고 직감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향후 그가 한국에 어떤 것을 요구할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그는 한국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