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중간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핵 역량 검증의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악용 가능성과 시간 부족 등도 주요 도전 과제로 꼽았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최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연이어 ‘비핵화 중간 조치’ 입장을 밝힌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부차관보] “Reading between the lines of what those two officials said and knowing what I know about some of the debates in the administration, there is obviously a level of concern and frustration inside the Biden administration that the goal of denuclearization may be impossible to achieve. And that something needs to be done because the North Korean arsenal continues to grow and the threat from North Korea continues to grow. So there is obviously this concern that denuclearization as a policy is not working. So there is obviously this concern that denuclearization as a policy is not working. There's also the belief that denuclearization as a policy should continue but that the reality is that we need to figure out ways or the administration needs to figure out ways to deal with a rising North Korean threat."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행정부 내부에 북한 비핵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좌절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무기고가 계속 늘어나고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 정부가 유지해온 대북정책으로서의 ‘비핵화’가 효과가 없다는 우려가 행정부 내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소위 ‘위협 감소’나 이른바 ‘군축 회담’과 같은 온건한 목표로 전환돼야 한다”는 ‘중간 조치’ 메시지가 잇따라 나온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부차관보] “And so when I listened to the remarks that the two of them made this week, what I heard from both of them is that US policy needs to shift to more modest goals such as so called threat reduction or so called arms control talks. That's what I heard and I think that that's what their remarks suggest.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에게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이냐’고 질문한다면 모두가 ‘아니다’라고 답하겠지만, 그 같은 반응은 두 고위 관리의 발언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무부 출신의 토머스 신킨 ‘알스트리트 연구소(R Street Institue)’ 정책 담당 국장도 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잇단 ‘중간 조치’ 언급은 분명한 ‘정책 변화’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시 맞붙게 될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여를 늘리고 성과를 내기 위한 시도에 나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녹취: 신킨 국장] “The election. On the surface, I think it's because former President Trump has started to talk about what he believes to be his success in negotiating with North Korea. I think is leading people in the Biden administration to start considering that they may want to show a little progress on the North Korean issue as opposed to none. But we've seen on the North Korean issue during the Biden administration has been continual worsening of the strategic relationship where the North Koreans appear to be acquiring assistance with their missiles from the Russians in return for giving the Russians a lot of ammunition to use against Ukraine. So I think it may also be partly just desperation, a way of trying to get into the game with North Korea.”
신킨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 우리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 사용할 많은 탄약을 제공한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지원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북러간 전략적 관계 강화를 지켜봐왔다”며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미라 랩 후퍼 백악관 선임국장은 지난 4일 서울에서 한국의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기존 정책 목표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중간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랩 후퍼 선임보좌관은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며 “그러나 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역내와 세계가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면 중간 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정 박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겸 대북고위관리도 다음 날인 5일 워싱턴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해 “비핵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비핵화 중간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매튜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랩 후퍼 선임보좌관의 관련 발언의 의미에 대한 질의에 “그것이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계속 거부해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언급한 ‘중간 조치’가 비핵화 과정에 기여하고 생산적인 관여 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먼저 시점의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녹취: 와일더 전 선임보좌관] “I would say is a different criticism which is this is very late in the administration to be offering a new idea. If I were the North Koreans, I think I would be waiting to see the results of the election before I show an interest in any kind of negotiation. Because they could well be thinking that a Trump administration might be a better administration to negotiate with. So I think that while it's interesting that the Biden team has decided to finally come up with some different idea. I think that it has very little chance of success because it is so late in the administration."
임기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하기에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중간 조치’ 제안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는 11월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추이를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과거 북한 고위급 외교 당국자들과 오랫동안 관여했던 에반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북한의 악용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녹취: 리비어 전 부차관보] “Exactly 12 years ago this month, I and a number of US experts and former officials met with the North Korean foreign minister in New York. We talked about the importance of denuclearization and he was very blunt in his response. He said North Korea is not going to denuclearize until the United States removes its threat. That's the word that he used. And he defined the threat as the existence of the US-South Korea Alliance, the presence of US troops in South Korea and the US nuclear umbrella. And then he said something fascinating and revealing. He said if you remove the threat, we will eventually feel more secure and maybe in 10 or 20 years we'll be able to consider denuclearization. And then there was the punch line, and he said in the meantime and I'm quoting here from my notes from that conversation. In the meantime, he said we can sit down together and engage in arms control talks as one nuclear power with another.”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12년 전 북한 외무상과의 뉴욕 회담에서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에 나설 의지가 없다며 오히려 미국의 선의를 악용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표단이 비핵화의 중요성을 언급하자 북한 외무상은 “미국이 위협을 제거할 때까지 북한은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결국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북 협상의 주제를 비핵화에서 군비통제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미국 정부가 ‘단계적 조치’ 등의 접근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북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으며 “그 때가 되면 화두는 더 이상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무기를 보유해야 하는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테렌스 로리그 미국 해군전쟁대학 교수는 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간 조치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 역량이나 핵 물질 생산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검증의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리그 교수] “North Korea is not going to do that for free. They would expect some sort of compensation. And I think when you look at the domestic politics in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there is very little interest at this point to be willing to offer much of a concession to North Korea.
로리그 교수는 과거 모든 비핵화 약속을 어기고 핵 역량을 진전시켜온 북한의 약속을 미국과 한국 측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며 북한도 사찰을 허용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면서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과 북한이 ‘중간 조치’, 또는 ‘핵 동결’에 합의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더라도 북한 내 비밀 시설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핵 역량 진전을 검증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한국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군축 협상 또는 중간 단계를 고려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거부 정서가 존재한다면서, 한국에도 ‘배신감 또는 좌절감’을 줄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녹취: 로리그 교수] “Certainly how it is read in the South Korean public. But I think it's just going to take some time to explain and make very clear what this interim steps means. There will need to be continued effort to reassure the South Korean public an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is does not mean that the United States is not there to defend South Korea, that the alliance is strong and hopefully this is all being done together that those things are not a signal of any sort of change in the strength of the alliance.”
로리그 교수는 이번 ‘중간 조치’ 발언은 한국 정부와도 분명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국민들에게 그 의미와 내용을 설명하려는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이 군축론, 또는 중간 단계론을 꺼내는 순간 한국에 미국이 북핵을 용인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바이든 정부의 이번 언급이 한국 내에서 다소 잠잠해진 핵무장 여론을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토머스 신킨 국장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전략적 이점이 없으며, 국제 무대에서 도덕적 우위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서,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데니스 와일더 전 선임보좌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의 안정을 지켜온 것은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이며,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확장억제 공약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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