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북송사업의 관할권을 일본에 부여한 도쿄 고등재판소의 최근 판결이 조총련과 북한 정부 모두를 압박할 것이라고 전직 조총련 간부들이 진단했습니다. 가족이 북한에 살고 있어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는 많은 조총련 회원들도 내심 판결을 반길 것이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직 조총련 간부 등 관계자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일본 내 친북 단체인 조총련 간부로 23년간 활동했던 홍경의 씨는 도쿄 고등재판소(법원)가 지난달 30일 북송사업에 대해 내린 판결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녹취: 홍경의 씨] “놀랐죠.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에 재판 관할권이 있다는 그 판결은 아주 획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법원 판결은 국제 인권이라는 보편적 관점에서 북송 재일동포 문제를 보기 시작했구나.”
일본 법원이 “재판 관할권이 일본에 없고 공소시효도 만료됐다는 기존의 수구적 자세에서 벗어나 강제실종은 국제법상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제 보편적 인권 측면에서 북송사업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일본 도쿄 고등재판소는 10월 30일 가와사키 에이코 씨 등 북송사업 피해자 4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4억엔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판결을 깨고 “북한의 불법 행위로 발생한 침해 전체의 관할권은 일본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북한 정부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해 재일 한인들에게 북송을 권유한 행위와 이들이 북한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별개가 아닌 연장선상의 인권 침해로 전체 관할권이 일본 재판소에 있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과거 조총련 긴키지방본부 회장과 조총련 인권협회장을 지낸 홍 씨는 이번 판결로 북송사업을 전면에서 선동했던 조총련의 입장이 “매우 난처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홍경의 씨] “앞으로 북한 당국에 대한 일정한 법적 압력이 되지 않겠나. 물론 반발하거나 모른척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그런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니까 조총련도 좀 곤란하겠죠.”
과거 조총련 산하 조선대학교 교원(교수) 출신으로 조총련을 해부한 책 ‘조선총련’을 출간했던 박두진 코리아국제연구소장도 “이번 판결로 조총련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송사업은 주범인 북한 정권이 기획하고, 조선노동당의 일본 내 거점인 조총련이 추진한 것”이기 때문에 “조총련이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
[녹취: 박두진 소장] “상당히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는 일본재판소가 이것을 재판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에서 재판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재판이 진행되면 조총련이 여러 가지 이에 대해 싸워나가야 하거든요. 자료를 내라 하면 자료를 내지 않을 수도 없고.”
박 소장은 누나와 부인의 가족 모두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북송사업 피해 가족입니다.
박 소장은 과거 조선대 교원 시절이었던 1972년 “김일성 주석의 환갑을 맞아 조총련이 펼친 ‘충성의 선물 캠페인’ 선동으로 제자 200명을 북송한 아픔도 있다”며 북송사업은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두진 소장] “이 사람들을 속이고 아주 지상낙원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다. 북한은 지상낙원이다. 북한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의식주가 보장이 되고 공부를 하고 싶은 대로 공부하고 자기 희망대로 취직할 수 있다는 식으로 완전히 거짓말을 퍼트리고 운동(캠페인)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마비시킨 것은 조총련이 중심이죠.”
박 소장은 “당시 많은 재일 한인들은 조총련의 선전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일본 매체가 이에 동조하고 사회단체들과 여러 정당이 지지했고 북한에 다녀온 일본 사람들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포들이 선전을 신뢰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재일 한인 3세로 조총련 산하 은행 지점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등학교까지 조총련 산하 조선학교에 다닌 박향수 씨는 일본고등재판소의 판결은 “북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강력한 법적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향수 씨] “많은 사람을 속여서 보냈잖아요. 자기네 가족도 보냈지만, 그래서 남은 일본의 가족들이 얼마나 긴 세월 동안 고통을 겪었어요? 말도 못 하고. 정신적 경제적 고통,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를 안 했잖아요. 한 번은 꼭 청산을 해야 해요. 저는 조총련이 한 번은 북송사업에 대해서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일 동포들한테”
박 씨는 조선학교 시절 “북송사업은 조총련의 엄청난 업적이자 실적으로 배웠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정착한 외삼촌 가족을 보기 위해 어머니와 북한을 두 번 방문하면서 그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북한에 남아있는 북송사업 피해자들에게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해결하기 위해 밖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향수 씨] “북송사업이 일본에서 이렇게 크게 거론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고 관계자 가족은 그나마 우리가 잊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게 북한에 있는 친척과 가족에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일?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면 잊히죠. 그렇게 허무하게 간 분들에게 최소한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조선학교를 졸업한 뒤 조총련 산하 조선청년동맹(조청) 전임이자 도도부현 부위원장을 지낸 박권일 씨는 “아버지의 큰형과 작은형 가족이 모두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정착해 피해자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박 씨는 특히 지난 1988년에 평양으로 가 1년 동안 사상 교육을 받기도 했었다며 당시 “북한에서 만난 큰아버지와 사촌 누나가 북한 체제를 조용히 비판했을 때 오히려 그들을 나무랐던 게 지금도 부끄럽다”고 회고했습니다.
[박권일 씨] “큰아버지들이 선전이든 어쨌든 자기 의사로 가셨고. 왜 가셔서 이리저리 말하는가? 우리 수령님, 장군님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여기서 일 열심히 하시고 장군님 배려에 보답하고, 혁신자로 살아 주셔야지 그렇게 생각했었죠.”
박 씨는 그러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이후 여러 혼란이 생기면서 2001년 조총련을 탈퇴했고 조선학교에 다니던 자녀들도 일본 학교로 전학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시청하면서 “과거 큰아버지들이 토로했던 것들에 대한 여러 의문이 풀리면서 북한 정권과 조총련에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박 씨는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발판 삼아 조총련을 해체하고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권일 씨] “북한에 뭘 해도 통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조총련을 고소해야겠지요. 실질적으로 일본에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을 기회로 조총련을 해체시킬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압박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와사키 선생이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박 씨는 조총련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며 “일본 내 동포(한인) 단체 역할로 한정하면 한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가르치는 등 긍정적 역할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김씨 정권과 공동운명체 역할을 하고 북송사업 등 인권 침해에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전 조총련 관계자들은 그러나 북송사업에 대한 이번 도쿄고등재판소의 판결이 앞으로 북한과 조총련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조총련 탈퇴 후 일본의 인권단체인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홍경의 씨는 “북한 당국이 이번 판결을 주시하면서 국제사회를 의식해 북송사업 피해자들에 대한 탄압을 좀 더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홍경의 씨] “앞으로 북한 당국에 압력이 될 만한, 뭐냐하면 북한에 사는 재일교포들에 대해서 북한 당국이 인권 침해를 좀 억제할 만한, 이런 하나의 판결이지도 않겠나. 제 주관입니다만.”
홍 씨는 북한에 사는 재일 한인들 중 무고하게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이 문제가 더 국제화되면 북한 정부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박향수 씨와 박두진 소장은 북한 당국이 도쿄 고등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개의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향수 씨는 오히려 북한 정권이 조총련을 강하게 질타해 탈퇴자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향수 씨] “북한이 이걸로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조총련에게 이런 것을 막지 못했다며 더 혼낼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조총련) 탈퇴가 이뤄질 것 같고. 조총련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줄어들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조총련은 가와사키 에이코 선생님 같은 사람을 너무너무 미워하잖아요. 제거하고 싶을 수도 있고.”
박두진 소장은 조총련계 가족도 사실상 북한에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는 피해자들이라며 이번 판결을 오히려 반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두진 소장] “인질로 잡혀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말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판결을) 속으로는 다 좋아한다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글을 써서 세상에 이 문제를 이 내용을 밝혀도 우리 교포들 속에서 나한테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전화는 한 통 없습니다. 다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싫어한다면 나한테 막 비판을 할 거 아닙니까?”
박 소장은 북송사업은 지금까지도 “많은 가족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진행 중인 범죄”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박두진 소장] “이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인권 침해 문제입니다. 북한 정권은 그 인질을 이용해서 여기 가족들의 돈을 얼마나 많이 가져갔는줄 모릅니다. 지금도 일부 북송 가족을 수용소에 넣어 놓고 (일본의) 가족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테러범이 인질을 인용해서 돈을 가져가는 그런 행위를 많이 해왔습니다.”
박 소장 등 전 조총련 관계자들은 재판이 북송사업을 공론화해 조총련 청산까지 갔으면 좋겠다면서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재판이 속개되면 조총련은 책임을 일본 정부로 돌리고 일본은 북송사업 방조 등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법원이 어디까지 이를 다룰지도 중요한 관심사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나 조총련은 아직 이번 판결에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일 한인 북송사업은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협정에 따라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됐습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최종보고서에서 이 북송사업을 납치와 강제실종 범죄로 분류하면서 25년 동안 북한의 지상낙원 선전을 믿고 북한으로 이주한 재일 한인과 가족은 9만 3천 340명으로, 여기에는 1천 831명에 달하는 일본인 아내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본 적십자사의 지원 속에 이 사업이 이뤄졌으며 피해자들은 북한 정부의 지상낙원이란 선전에 속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민간단체인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에키 히로아키 대표는 앞서 VOA에, 일본 주류사회에서는 “북송 피해자들이 자진해서 북한으로 갔고, 일본 내 친북 단체인 조총련 간부들이 일본 공산당과 연대해 사회주의 혁명 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귀국자들에게 동정심이 적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 정부 역시 이는 당사자의 자유 의지로 이뤄진 귀국 사업이라고 주장하며 COI 등 유엔 기구들의 정보 요청에 대해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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