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은 정전기념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이라고 주장하며 전쟁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미국과 한국에 사는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이 비판했습니다. 열병식과 관련해선 젊은 병사들이 심각한 인권 침해에 시달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정찰국 산하 특수부대에서 16년간 군 복무를 하다 탈북해 15년 전 난민 지위를 받아 미국에 입국한 에이브러햄 씨는 북한이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이라고 주장하는 정전협정일 기념식을 볼 때마다 “오기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합니다.
에이브러햄 씨는 한국전쟁에 인민군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다쳐 영예군인(상이군인)으로 제대한 아버지를 통해 북한 공산군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탈북 후 이런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속이 뒤틀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에이브러햄 씨] “나는 억이(기가) 막히죠. 황해남도 청단 있잖아요. 거기가 다 한국 땅이었데요. 옛날에. 연안 이쪽 다. 거기 6월 25일 전에 10일인가에 다 집결해서 글쎄 걍 (25일) 새벽에 밀고 나가서 국군 아이들 자다가 들고 뛰고 잠옷 바람에. 그리고 그냥 밀고 나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버지한테서 다 들었죠.”
에이브러햄 씨는 북한의 똑똑한 사람들은 북한이 기습 공격을 받고도 사흘 만에 오히려 서울을 함락했다는 김씨 정권의 선전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에이브러햄 씨] “다 알아요. 똑똑한 사람들은요. 어떻게 전쟁을 일으킨 쪽에서 전쟁을 한국에서 시작했으면 우리가 왜 3일 만에 서울을 해방하느냐 그건 말도 안 된다는 것 알아요.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다 알아요.”
한국전쟁이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유엔의 공식 기록뿐 아니라 냉전 종식 후 기밀 해제된 옛 소련 정부의 여러 문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1990년대 러시아에서 잠시 유학했던 허강일 전 중국 류경식당 지배인은 당시 러시아 교과서를 통해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그런데 러시아 교과서에는 분명히 남침으로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김일성이가 스탈린한테 편지를 써서 자기가 공격하겠으니까 허락해달라는 편지도 보냈다는 그걸 역사책에서 보게 됐어요. 솔직히 소련은 우리 편인데 왜 미국 편이지? 그래서 소련이 무너져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러시아가 냉전이 끝난 뒤 언제부터 교과서에 한국전쟁의 실상을 담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교과서 출판사인 쁘라스비쉐니 출판사는 2005년 간행한 ‘외국 국가들의 최신 역사’ 책에서 한국 전쟁이 “세밀한 준비 후에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가 38선을 넘어 남쪽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94년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한 수백 쪽의 외교문서와 후르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자서전 등은 김일성 주석이 스탈린에게 무려 48번이나 남침 승인을 요청한 사실을 포함해 남침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군대 복무를 했던 여러 탈북민은 26일 VOA에 북한은 국가와 민족이 아닌 김씨 정권 우상화를 위해 70년 넘게 전쟁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북한 4군단에서 10년을 복무했던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는 “북한 정권이 특히 군인들에게 수령에 대한 충성과 미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세뇌할 목적으로 전승절(정전기념일)을 적극 강조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소연 대표] “제가 군인 생활할 때 625전쟁에서 우리가 당한 피해의 교훈을 잊지 말자. 위대한 수령 위대한 영도자가 있어서 나라가 있고 인민이 있다고 가르치는 곳이 북한입니다. 그럼 그 위대한 영도자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 침략자가 왔을 때 나라를 지켜줬고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세뇌시키고 주민들을 김씨 일가 밑에 노예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한 특수부대인 11 폭풍군단에서 13년을 복무한 뒤 탈북한 이웅길 씨는 “북한은 전쟁과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축소하고 유엔군과 중립국은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은 채 승리의 초점을 오직 김일성에게만 맞춘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이웅길 씨] “평양 지하철에는 전승역이 있죠. 모든 것을 전승에 맞춰서 우리가 이겼다고 얘기했고. 그리고 중국이나 소련 이런 거 다 빼고 우리 김일성 수령님의 힘으로 이겼기 때문에 특히 군인들한테는 다 승리 기념일이라고. 지금 보면 가소로운 정도가 아니라 다 웃긴 거죠. 본인들이 승리했다고만 얘기하고 주민들에게 주입시키니까. 북한 주민들이 나중에 알게 되면 너무 충격을 받을 거고.”
한국 내 탈북민들은 이런 사실을 남북한에 모두 알려야 한다며 대북 정보 유입 활동과 유튜브 등을 통해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대형 풍선을 통해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하는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두 가지 핵심 즉 김일성이 일제와 미제의 침략에서 인민을 해방시키고 지켰다는 선전이 모두 허구란 사실을 주민들이 알아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이민복 단장] “전쟁은 미국이 아니라 김일성이 일으킨 것이고 미국이 철전지 원수라고 하는데 나라를 해방시킨 것은 미국 아니에요? 원자탄으로 일본을 타도했지 김일성이 무슨 타도를 했어요? 이렇게 흑백이 전도된 거짓말을 하고 은인을 완전히 철천지원수로 만들고 자기가 은인이라고 사기를 치니. 그것을 은폐하려고 자꾸 사기를 치는 게 아닌가요?”
이에 대해선 북한의 엘리트 출신 탈북민들도 같은 지적을 합니다.
외국어 엘리트 교육 기관인 평양외국어학원, 중국 유학파 출신으로 북한 4군단과 인민무력부 직속 15호 격술연구소에서 3년 넘게 군 복무를 했던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연구원입니다.
[녹취: 이현승 씨] “김일성 역사에 대해 우리가 중점으로 배우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했고 미 제국주의를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기본입니다. 만약 역사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이, 자 일제 강점기 때도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켰으니까 궁극적으로 해방이 된 것이고 전쟁의 시발점이 김일성이었다는 것. 전쟁으로 인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고 실제로 미군이 북한의 과대 선전처럼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게 북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사실 정권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임팩트로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북한군 출신 탈북민들은 전승절 열병식에 동원되는 북한 군인들의 건강과 인권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현승 연구원과 이소연 대표입니다.
[녹취: 이현승 연구원] “일반 부대에선 3개월 훈련하고 또 평양에 올라와서 김일성 광장이나 주변에서 또 3개월 훈련합니다. 아시겠지만 열병식 난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대열을 맞추고 발을 구를 때 높이 차고 하니까 거의 모든 군인이 다 위하수가 걸릴 정도로 내장이 물러 않을 정도로 훈련을 하기 때문에 보통 그런 고통을 많이 겪습니다.”
[녹취: 이소연 대표] “저희가 전승절 열병식에 동원될때는 새벽 6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다리 드는 훈련을 하면서 그 다리 하나 90도로 들 때 그 땡볕에 나와서 몸이 정말 망가지고 위가 처지고 대장이 처지고 하면서 다리 드는 훈련을 하면서도 장군님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오니까 그것이 얼마나 상당한 인권 침해였는지.”
미국의 에이브러햄 씨는 오래전 자신이 군 복무를 할 때나 지금이나 열병식 모습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면서 “삼복더위의 슬픈 열병식”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에이브러햄 씨] “슬프지요. 행진이란 게 있잖아요. 그 ‘정보행진’이란 게 다래기 캐고 온 근육이 있잖아요. 신경통이 오고 아이들이 콘크리트 바닥을 쾅쾅 뛰면서 다닌다는 게 이 삼복더위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탈북민들은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통해 정보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진실 왜곡과 직결돼 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보내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