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법원이 대배심에 기소된 북한 ‘조선무역은행’ 관계자 등 30여 명을 ‘도망자’, 즉 사실상 기소중지자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등 제 3국에 머물고 있어 미국 법원 출석이 사실상 불가능한 대북 제재 위반 혐의자는 최소 46명으로 나타났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워싱턴 DC 연방법원이 고철만 등 지난해 연방 대배심에 기소된 북한 조선무역은행 관계자 등의 사건을 재조정하기로 했습니다.
법원 기록시스템에 따르면 루돌프 콘트레라스 판사는 지난 10일 명령문에서 피고들이 ‘도망자’ 신분인 만큼 이번 사건을 ‘일정과 사건 관리위원회(Calendar and Case Management Committee)’로 다시 배치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사 사건을 담당할 판사를 배정하는 역할을 하는 ‘일정과 사건 관리위원회’는 피고의 소재 파악이 불분명한 경우 사건을 다시 돌려받아 피고가 체포되거나 다시 소환될 때까지 해당 사건을 관리합니다.
따라서 이번 명령을 계기로 고철만 등 피의자들은 공식적으로 ‘도망자’ 신분 즉, 기소중지자가 됐습니다.
앞서 미 법무부는 지난해 2월 조선무역은행 은행장으로 활동하던 고철만과 김성의, 부은행장인 한웅과 리정남 등 조선무역은행 혹은 은행의 위장회사 등에 근무하던 북한인 28명과 중국인 5명을 기소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250개 위장회사를 통해 최소 25억 달러를 거래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금융망을 이용해 미국의 ‘긴급경제권한법(IEEPA)’과 ‘대북제재법’, ‘대량살상무기 확산제재법’, ‘국제돈세탁’, ‘은행법’ 등을 위반한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당시 약 30명의 북한 국적자가 대거 기소되면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동시에 상징적 조치라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습니다.
피의자들 대부분이 북한과 중국 등 미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 머물고 있어 실제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건을 맡았던 담당판사까지 빠지게 되면서 법원을 통한 이번 사건의 진전은 더욱 더디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미국 법원이 대북 제재 위반 등을 이유로 북한인 혹은 제 3국적자를 기소했지만 진전 없이 장기 계류 중인 사건은 최소 7건, 용의자는 46명입니다.
이 중 ‘조선무역은행’을 제외한 북한 국적자는 북한 해커로 알려진 박진혁과 김일, 전창혁 등 3명으로, 이들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공식 수배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지만 아직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그밖에 북한 국적자 리정철과 리유경은 말레이시아인 간치림과 함께 대북 제재 위반과 금융 사기, 자금세탁 공모 등 혐의로 지난해 9월 미국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면서 물품을 구매해 북한으로 수송했고, 이 과정에서 미 달러로 결제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습니다.
또 북한의 해킹그룹 ‘라자루스’가 절취한 암호화폐 돈세탁에 연루된 중국인 톈인인(Tian Yinyin)과 리쟈동(Li Jiadong), 중국 ‘단둥훙샹실업발전’ 마샤오훙 대표와 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싱가포르인인 탄위벵과 궈기셍 등도 미국 법원에 기소돼, 공식적으로는 미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는 피의자들입니다.
다만 수사당국이 현재 수사 중이거나 아직 법원이 공개를 허가하지 않은 사건까지 합치면 실제 미 정부가 추적 중인 용의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의자들이 미국 법원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극히 드물지만, 관련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재 북한 국적자인 문철명은 올해 3월 말레이시아에서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돼 돈세탁 등 혐의에 대해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5월13일 화상 연결 방식으로 열린 인정신문에 모습을 드러낸 문철명은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으며, 다음달 두 번째 법원 출석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지난 2015년 캄보디아에 거주하던 북한인 김성일이 미국에서 군사용 야간투시경을 구입해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던 혐의로 체포돼 미 법정에 선 바 있습니다.
당시 김성일은 위장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 국토안보부 소속 요원에게 접근해 야간투시경을 구매하려 했고, 이후 물건을 받기 위해 하와이로 향했다가 체포돼 3년4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