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지난 8월 중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약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아프간 카불 국제공항에는 기나긴 탈출행렬이 이어졌습니다. 12만여 명의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이 장악한 모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가운데 수만 명은 이미 미국에 도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텍사스에 정착한 아프간 난민 가족”
[현장음: 휴스턴 월마트]
미 남부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대형 상점. 어린 자녀 둘을 쇼핑 카트에 태우고 옷을 고르고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 가족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동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이곳 휴스턴에서 기독교 민간 단체인 국제 YMCA의 후원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압둘 아만 세디키 씨는 지난 2012년부터 아프간을 떠나올 때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 특수부대를 위해 일했는데요. 낮에는 폭발물 제거에 투입되고 밤에는 야간 작전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프간이 탈레반 정권에 넘어가면서 조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녹취: 압둘 아만 세디키]
세디키 씨는 통역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는데요. 아프간에 있을 당시엔 전 세계가 자신들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프간인들의 생각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들 아프간 국민들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미군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세디키 씨 가족은 미국의 특별이민비자(SIV)를 취득할 자격이 있었는데요. 카불 국제공항으로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도 끈기를 갖고 또 행운도 따라준 덕에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21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도착했고,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방 하나짜리 자그마한 아파트를 새 보금자리로 얻게 됐습니다.
[녹취: 압둘 아만 세디키]
아프간에서 평생을 보낸 세디키 씨는 별의별 경험을 다 했다고 했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주위에서 사람들이 공격을 받아 죽어 나가는 모습늘 늘 보아왔다며, 안정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따라서 자신은 안전한 삶을 원했고 미국에서 그런 삶을 살게 되어 행복하다며, 그저 조용하고 평안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세디키 씨를 위해 통역을 하는 사람은 사냐 와펙 씨인데요. 국제 YMCA 소속으로 세디키 씨 가족의 미국 정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와펙 씨는 최근 몇 주간 휴스턴으로 온 아프간 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녹취: 사냐 와펙]
아프간 난민들은 목숨만 건질 요량으로 급하게 아프간을 떠났기 때문에 다들 빈손으로 미국에 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국제 YMCA는 이들이 직업을 찾는 것부터, 식료품 보조나 의료보험 같은 정부 지원을 받는 것도 도와주고 필요한 서류 작업도 도와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날 세디키 씨 가족과 함께 쇼핑에 나선 다른 한 가족이 있었는데요. 바로 트램 호 씨 가족으로 이날 물건 구매 비용은 모두 호 씨가 지불했습니다. 호 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10대의 나이에 미국에 정착한 난민이었다고 하는데요. 수십 년 전 자신이 미국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기 위해 함께 쇼핑에 나섰다며,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도 특별히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녹취: 트램 호]
호 씨는 사이공이 몰락했을 당시, 자신도 세디키 씨와 같은 처지였다 보니 각별한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요. 세디키 씨 가족이 이렇게 안전하게 미국에 오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라며, 자신도 1981년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고 또 그 당시 미국인들이 두 팔 벌려 자신들을 품어줬기 때문에 이제 자신도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디키 씨는 36살의 나이에 빈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여전히 다른 가족들은 아프간에 남아 있다며 다들 하루빨리 아프간을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어린 자녀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미국에서 할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데요.
[녹취: 압둘 아만 세디키]
세디키 씨는 어린아이들이 미국에서 좋은 삶을 시작할 수 있고 또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그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팬데믹 실업자 직업교육 프로그램”
미국 경제가 코로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실직자들을 돕기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 통과된 1조9천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경기부양책을 통해 직업 교육을 실시고 있는 건데요. 알하지 담파 씨도 이런 혜택을 받은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여러 식당 보조로 일하다가 마침내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쉐라톤 호텔의 요리사로 취직했던 담파 씨. 하지만 취직한 지 1년 만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녹취: 알하지 담파]
펜데믹으로 2달 만에 해고된 담파 씨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는데요. LA 카운티에서 진행하고 있는 노인 식사 배급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 내 노인들과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해주고 있는데요. 담파 씨는 ‘유나이트히어 로컬11(Unite Here Local 11)’이 제공한 직업 교육이 없었더라면, 이런 기회를 갖기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호텔 식객업 노동조합인 ‘유나이트히어 로컬11’은 접객업 직업 훈련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에이딘 포먼]
직업학교 교장인 에이딘 포먼 씨는 5천만 달러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를 통해 1천 100명의 훈련생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고, 지난해 4월 이후 LA 카운티와 함께 1만여 명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 지원금은 연방 정부의 코로나 경기부양기금과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인데요. 직업 훈련생들의 수강료와 교통비, 자녀 보육비가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포먼 씨는 그리고 현재 진행하는 노인 식사 제공 프로그램이 끝나면 훈련생들이 다른 직종으로 옮기거나 접객업 분야에서 계속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미 대륙 반대쪽, 동부에 있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도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직업 재훈련이 있는데요. 코로나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노동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컴퓨터 관련 기술직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채드 나잇츠]
정보∙공학기술학부의 채드 나잇츠 부학장은 각종 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약 2천200만 달러를 학생들을 위해 투자하게 됐다고 설명했는데요. 특히 1천만 달러는 기술공학과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 분석 관련 교육을 위해 배정받았다며, 팬데믹으로 원격근무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학은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인 ‘마이크론(Micron)’과 산학협력을 맺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요.
[녹취: 채드 나잇츠]
산학협력을 통해 연구실을 갖추게 됐고 실전 현장에서의 모의 훈련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충분히 훈련이 된 학생들은 마이크론에 견습생으로 가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나이츠 부학장은 노던버지니아 대학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정부와 주의 지원금은 필수적이라며, 이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결국엔 버지니아주의 노동시장에 투입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