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한 연합훈련 반발 담화를 낸 지 한 달 만에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 순항미사일로 저강도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국방과학원은 9월 11일과 12일 새로 개발한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13일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발사된 미사일들은 북한 영토와 영해 상공에 설정된 타원과 8자형 비행궤도를 따라 7천580초를 비행, 1천500㎞ 계선의 표적을 명중했다”고 밝혔습니다.
발사는 5개 발사관을 갖춘 지상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7천580초는 126분으로 두 시간 넘게 순항미사일이 비행한 셈입니다.
미사일의 구체적인 발사 지점과 비행궤적, 탄착 지점 등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미-한 정보당국 간 긴밀 공조 하에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사실을 전하면서 “지난 1월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과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중점목표 달성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전략무기”라고 밝혔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시험발사를 통해 새로 개발한 터빈송풍식 발동기의 추진력 등 기술적 지표들과 미사일의 비행조종성, 복합유도결합방식에 의한 말기 유도 명중정확성이 설계상 요구들을 모두 만족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번 미사일 시험발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관 없이 정치국 상무위원인 박정천 당 비서와 김정식 당 군수공업부 부부장, 전일호 국방과학원 당 비서의 참관 하에 시행됐습니다.
박 비서는 “당 중앙위원회의 위임에 따라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성공적인 개발을 이루어낸 국방과학자들과 군수노동계급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했다”고 말해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것임을 밝혔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단거리 순항미사일은 선을 보였지만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지난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중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의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근거로 이번 미사일의 크기와 동체 등이 한국의 현무-3C보다 약간 커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2012년 한국 국방부가 공개한 현무-3C는 길이 6m, 직경 53∼60㎝, 제트엔진 장착으로 마하 1의 속도로 비행합니다.
순항미사일은 저고도로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이 낮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요격이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시험발사는 북한이 지난달 10일과 11일 김여정 당 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한 연합훈련 반발 담화를 연이어 내고 ‘국가방위력’과 ‘선제타격 능력’ 강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공언한 지 한 달 만에 이뤄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한 달 간 경제와 민생 관련 공개 행보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 9일 정권수립 기념일에도 이렇다 할 무력시위나 대외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사실 한 달이 넘도록 조용했고 이번 9.9절 행사도 전략무기나 신무기가 보이지 않아서 아마 숨고르기를 좀 하는 게 아니냐고 봤는데 역시 이제 미국과 한국에 대해서 자기들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우리의 핵미사일 역량은 계속 강화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자기들 의지를 관철시키고 또 압박하려는 그런 의도가 분명히 담겨져 있어요.”
북한이 밝힌 미사일의 비행 거리와 궤도 그리고 순항미사일이 탄도미사일보다 더 정밀한 타격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반도는 물론 일본 인근에 있는 이동식 표적까지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또 이번 미사일을 ‘전략무기’라고 표현해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를 탑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는 분석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신종우 사무국장] “1천500㎞를 날리면서 지금 일단은 일본 전역과 주일미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오늘 과시했지 않습니까, 이게 ‘전략’이라는 표현을 붙임으로써 여기에다가 핵을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이 은연중에 비쳐지는 거죠.”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범주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대화의 판 자체를 깨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북한은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22일과 3월 21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같은 달 25일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올 들어 북한이 간헐적으로 무력시위를 했지만 유엔에서 문제삼을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저강도에 그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큰 흐름을 보면 미국과의 협상 의지는 있지만 그러나 미국이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내밀지 않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쪽으론 미국을 압박하면서 한쪽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 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선 임계점을 넘고 있진 않다 이렇게 봐야죠.”
하지만 북한이 대미 압박 차원에서 도발의 강도를 한층 높여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북한 매체가 이번 시험발사가 ‘국방과학 발전과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이라고 밝혀 자위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무기 실험들이 공개적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는 관측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8차 당 대회 때 김정은이 직접 굉장히 많은 무기체계 개발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 일환이고 이게 하나의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정리를 했다면 이것은 북한이 제도화한 거고요. 그리고 북한이 만든 이런 5개년 계획은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이행 후 나중에 총평을 계속하게 되고 분기별로 계속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지속성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죠.”
조한범 박사는 북한은 대화 재개 조건을 놓고 미국의 반응 여부에 따라 차츰 압박 수위를 높이려 할 것이라며 8차 당 대회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전술핵무기 개발 지시에 따른 관련 미사일 발사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불참과 관련해선 신종우 사무국장은 통상적으로 초기 단계의 미사일 시험발사엔 김 위원장이 참관하지 않았다며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