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고 ‘멜팅팟(Melting pot)’, 즉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립니다.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들이 미국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의 대도시 필라델피아에 정착한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은 종교까지 초월하며 멜팅팟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교회와 모스크를 공유한 인도네시아 이민자들”
[현장음:필라델피아 찬양 교회]
필라델피아 도심의 한 교회 앞에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인도네시아에서 소수종교인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이제는 반대로, 미국에서 소수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무슬림 인도네시아인들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녹취: 알도 시아한]
필라델피아 찬양교회(Philadelphia Praise Center)의 알도 시아한 목사는 소수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본국인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지난 2007년, 필라델피아 찬양교회는 교회 예배당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개방했는데요. 당시 필라델피아엔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이슬람 사원, 즉 모스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인다 누리타사리]
무슬림인 인다 누리타사리 씨는 무슬림들이 성월로 여기는 라마단 금식 기간이 됐는데, 기도할 장소가 없어 매우 당황했었다고 하네요.
찬양 교회는 자신들이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에서 무슬림들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하지만, 기독교식 예배와 이슬람교식 예배 형식에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녹취: 알도 시아한]
시아한 목사는 라마단 기간, 예배당의 의자를 다 치워야 했고, 그러면 무슬림들이 계단에다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들어와 기도를 드렸다고 했는데요. 또 해가 진 이후에는 무슬림들이 지하에서 금식을 깨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했습니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은 대략 7천 명 정도 되는데요.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지난 1998년, 많은 기독교인이 학살된 ‘인도네시아 인종 폭동’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녹취: 린디 바크어스]
찬양교회의 미국인 성도인 린디 바크어스 씨는 과거 자신이 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이 지역에서 인도네시아인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었지만, 2007년 후반에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땐 수천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에게 교회를 개방한 건 선의를 베푸는 행동이었지만,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의 상징인 대형 십자가상과 성모 마리아상을 보면서 기도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던 겁니다.
[녹취: 무슬림 성도]
결국 무슬림들이 라마단 기간에 기도할 때, 교회 내부의 십자가를 천으로 가리고 했다는데요. 그러자 일부 교회 성도들은 십자가를 가리는 데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고 하네요.
[녹취: 알도 시아한]
시아한 목사는 일부 인도네시아인과 미국인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결정에 동조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도 했습니다.
1년 후인 2008년, 필라델피아에 인도네시아 이민자들을 위한 모스크가 문을 열었는데요. 하지만 인도네시아 교회가 보여준 연대에 감사하기 위해 라마단 기간, 해가 지고 나서 즐기는 식사에 기독교인들을 초대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린디 바크어스]
바크어스 씨는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이 라마단 금식을 끝내는 축제 기간을 축하해주고,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성일인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준다고 했는데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미국에선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미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연례 ‘국제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소수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로 늘 지목되곤 하는데요. 하지만 이곳 필라델피아에서는 기독교와 무슬림이 이렇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백신 접종센터가 된 볼티모어 풋볼 경기장”
미국에선 현재 코로나 백신 접종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소한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이 약 1억 5천만 명에 달하는데요. 대형 스포츠 경기장들도 백신 접종센터로 변신해 정부의 백신 보급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미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풋볼 경기장인 ‘M&T 은행 경기장’에서도 하루에 수천 명이 백신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요. 우크라이나 출신의 교사인 타마라 보로비 씨 역시 바로 이곳에 백신을 맞으러 왔습니다.
보로비 씨는 백신 접종에 회의적인 생각이었지만, 친척이 백신을 맞은 뒤, 걱정과 의심을 거두고 백신을 맞으러 왔다고 하네요.
[녹취: 타마라 보로비]
보로비 씨는 원래 백신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너무 심각하고 또 많은 사람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걸 보면서 결국, 백신을 맞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M&T 경기장은 올해 3월 백신 접종 센터로 문을 열었는데요. 이전에는 풋볼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 그리고 경기를 응원하는 팬들로
붐볐는데요. 지금은 주지사 사무실의 지원 아래, 메릴랜드주립대 의대와 주 방위군이 시민들의 백신 접종을 돕고 있습니다.
[녹취: 찰스 윗젤버거]
메릴랜드 주 방위군 소속으로 백신 센터 부책임자인 찰스 윗젤버거 중령은 현재 주 방위군 55명을 포함해, 일부 계약직원들,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파견된 인원 125명 등 총 185명이 경기장에서 백신 접종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M&T 경기장이 백신 센터로 탈바꿈 한 첫 달에 무려 6만5천 명 이상이 최소한 한 차례 백신 접종을 했다고 하네요.
[녹취: 엘리샤 바]
메릴랜드 주 방위군 소속인 엘리샤 바 씨는 군인들의 경우 조직과 병참 그리고 실행에 강하고, 의대에서 온 인력은 의료상의 도움을 줌으로써 시민들을 더 잘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백신 접종 절차는 사람들이 경기장 주차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주차장에서 등록 절차를 밟은 뒤, 2층으로 이동하면 총
74개의 백신 접종 테이블이 마련돼 있고 이동식 약국도 두 군데 구비돼 있죠.
[녹취: 앤 윌리엄스]
메릴랜드 의대 지역 보건개선 국장인 앤 윌리엄스 씨는 백신을 놓는 간호사들이 보통 한 시간에 25명에서 30명은 접종한다며 따라서 간호사 한 명이 하루에 접종하는 백신 건수가 200건이 넘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백신을 맞은 후 대기 장소에서 15분에서 20분가량 기다렸다가 집에 가는데요. 혹시 모르는 백신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대기 장소에서 2차 접종도 예약할 수 있다고 하네요.
[녹취: 앤 윌리엄스]
윌리엄스 씨는 이곳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이 6만5천 명이 넘지만, 다행히 단 한 건의 백신 알레르기 반응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특히 103살인 노인도 백신을 맞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타마라 보로비 씨 역시 접종을 하고 아무 문제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요. 접종 절차를 모두 다 마치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녹취: 타마라 보로비]
보로비 씨는 접종 과정이 매우 체계적이고 원활했다며, 현장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는데요. 코로나 백신을 맞고 접종 센터를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