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된 이후 코로나 감염 위험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마스크와 보호장비로 얼굴을 가린 채, 이름 없이 일하는 이들 영웅을 돕기 위해 무료로 식사를 배달하거나, 개인 보호 장비를 전달하는 등 많은 사람이 발 벗고 나섰는데요. 뉴욕시의 한 화가는 의료진들의 수고와 헌신을 그림에 담고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초상화에 담긴 코로나 의료진들”
[현장음: 팀 오카무라 작업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 미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입니다. 파우치 소장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미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 정책 최전선을 지켜왔는데요. TV에서 늘 보던 얼굴이 커다란 초상화에 담겨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파우치 소장의 얼굴을 그려낸 사람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 팀 오카무라 씨입니다.
[녹취: 팀 오카무라]
파우치 소장이 때로는 낙담한 것처럼 보였다는 오카무라 씨. 백악관 브리핑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말하는 것들 듣고 있는 파우치 소장의 표정이 흥미로웠다는 건데요. 팬데믹 최전선에서 일하는 파우치 소장의 냉정함과 지력, 생각을 초상화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오카무라 씨는 의료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간호사들의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녹취: 팀 오카무라]
오카무라 씨는 코로나 환자들로 늘 넘치는 뉴욕 브루클린의 ‘와이코프 하이츠 병원(Wykoff Heights Medical Center)’ 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데요. 뉴욕의 첫 번째 코로나 환자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이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는데,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오카무라 씨는 병원에 출퇴근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는데요. 그들이 받았을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했습니다.
오카무라 씨는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의료진을 그리면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만 했는데요. 의료진의 마스크와 장갑 등을 그림에 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카무라 씨는 또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름이 담긴 명찰에 집중했다는데요. 왜냐하면 의료진들은 마스크와 개인 보호장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팀 오카무라]
사람들은 서로를 가로막은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고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를 원하지 않느냐며,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수단은 눈밖에 없다고 했는데요. 오카무라 씨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들은 눈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오카무라 씨가 그린 간호사 중엔 보호장비를 쓴 채 앞을 응시하고 있는 제니 비 씨도 있었는데요. 코로나 백신 접종 센터에서 12시간 동안 일하고 퇴근하는 비 간호사는 여전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드러내고 있었지만, 백신으로 인해 희망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녹취: 제니 비]
백신 접종은 팬데믹이 더 늦기 전에 끝날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비 씨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으러 오고, 백신을 맞을 생각에 흥분하고, 의료진들 역시 기쁘게 백신을 놓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고 말했습니다.
뉴욕대(NYU) 랑곤 메디컬센터는 코로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조기를 내걸었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는 비 간호사는 지난 5월, 몰려드는 코로나 환자들로 장시간 근무한 후 힘겹게 퇴근할 당시 오카무라 씨를 만났다고 회상했습니다.
[녹취: 제니 비]
비 씨는 간호사 공부를 할 때 팬데믹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우지 않았다며, 처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을 때, 본인 스스로부터 걱정했다고 하는데요. 의료진도 다들 가족이 있고, 어린 자녀가 있고, 나이 든 부모님이 있다 보니 코로나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겁니다.
간호사 비 씨는 코로나 백신이 터널 끝에 있는 한 줄기 빛이긴 하지만, 그 터널은 아주 길다고 했습니다.
비 씨는 오카무라 씨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으로만 봤을 뿐 실제로 보진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카무라 씨는 상황이 안정되면 비 간호사뿐 아니라 자신이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 모두에게 그림을 선물할 거라고 했는데요.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팬데믹 기간 희생된 많은 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암 환자를 위한 천연 염색 스카프”
암 환자들은 대부분 힘겨운 항암치료 과정을 겪는데요. 항암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 탈모입니다. 그렇다 보니 암 환자들은 탈모를 감추기 위해 모자나 가발을 쓰기도 하는데요. 미 동부 버지니아주에 사는 디자이너 에이미 힌드먼 씨는 본인이 직접 암 투병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경험한 후, 암 환자들이 머리에 쓸 수 있는 스카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에이미 힌드먼]
힌드먼 씨가 집 거실에서 자신이 제작한 스카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힌드먼 씨는 직접 스카프 천에 염색한다는데요. 은은한 노란색의 무늬는 다름 아닌 양파 껍질로 색을 낸 거라고 했습니다.
힌드먼 씨는 양파 껍질을 비롯해 견과류나 나뭇잎, 꽃잎 등 천연 재료에서 색과 무늬를 만들어 내는데요. 워싱턴 D.C. 인근에 자신만의 작은 농장을 만들어 다양한 꽃과 식물을 기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에이미 힌드먼]
염색에 좋은 꽃들이 있고 이런 꽃들은 실제로 지난 수백 년간 천연 염색에 쓰여 왔다는 겁니다. 힌드먼 씨는 자신의 농장에서 마리골드 꽃을 기르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아주 잘 자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노란색과 주황색, 때때로 검은색도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힌드먼 씨는 스카프 한 장을 만드는 데 1주에서 2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직접 말리고, 손보고, 끓이는 과정을 통해 복잡하고 특이한 무늬를 만들어 냅니다.
힌드먼 씨는 암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스카프를 제작하지만, 동시에 힘겨운 길을 걸어온 자기 자신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데요. 지난 2009년 출산 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고, 곧장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녹취: 에이미 힌드먼]
대학병원에서 받은 치료 계획은 처음 의사에게 받았던 치료 계획과 너무 달라 놀랐다고 했는데요.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양측 유방절제 수술에 유방 재건수술까지 받았고 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난소 절제술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긴 치료 과정에서 힌드먼 씨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녹취: 에이미 힌드먼]
머리에 스카프도 써보고 가발도 쓰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대안이 이것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힌드먼 씨. 특히 가발은 너무 불편하고 더웠다는데요. 그러면서 스카프에 대한 열정이 더 커졌다고 했습니다.
미국 임상종양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는 이런 힌드먼 씨가 암환자용 머리 두건 스카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했는데요. 스카프 판매 수익의 5%는 유방암과 난소암 환자들을 돕기 위해 FORCE(Facing Our Risk of Cancer Empowered)라는 비영리 단체로 간다고 합니다.
[녹취: 에이미 힌드먼]
힌드먼 씨는 자신의 두 딸에게 빚진 마음이라며 스카프 제작을 통해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복귀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힌드먼 씨의 스카프를 찾고 있는데요.
[녹취: 재키 그레이엄]
고객인 재키 그레이엄 씨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암은 힌드먼 씨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힌드먼 씨는 전사라고 추켜세웠습니다.
힌드먼 씨는 여성들이 천연 재료 염색법을 배울 수 있는 작은 작업실을 열 계획인데요. 또한, 올해 후반기에는 스카프뿐 아니라 천연 염색을 이용한 옷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