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올해 국제사회 대북제재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최초로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에 힘을 실으면서도 역대 가장 많은 독자 제재를 부과하면서 ‘최대압박’ 기조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북한의 불법 해상활동을 겨냥한 다양한 제재와 현금 유입을 막기 위한 ‘맞춤 압박’ 기법이 도입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VOA가 다섯 차례로 나눠 보내드리는 연말기획,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올 한해 북한에 가해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함지하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총괄해온 유엔 안보리.
지난해 4건의 대북 제재 결의를 통과시켰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이 없었던 올해에는 단 한 건의 제재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제재에 관한 한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마치 유엔 제재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 예년보다 훨씬 자주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지난 1월 북한 은행의 해외 지사 등에 근무하는 북한 국적자 등에게 첫 독자제재를 가한 뒤, 2월에는 56개 기관과 선박 등을 제재하는 사상 최대의 조치를 감행했습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있었던 6월까지 제재를 발표하지 않으면서 숨 고르기를 하는 듯했지만, 8월부터 12월까지 무려 9건의 제재를 쏟아내며 대북 압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한창이던 지난해 총 9건(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8건)의 독자제재를 발표한 미국이 대화가 이어진 2018년에는 오히려 2건 더 많은 11건의 제재를 북한에 부과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1년 동안 부과한 대북 제재 중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내용 면에서는 북한의 유류 거래를 포함한 불법 해상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전체 11건의 제재 중 북한의 유류 거래에 관여한 기업과 개인, 선박 등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6건에 이를 정도로 제재와 관련한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활동이었습니다.
마셜 블링슬리 재무부 테러자금·금융범죄 담당 차관보는 지난 9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제재 관련 청문회에서 북한이 선박간 환적을 통해 유엔이 금지한 유류와 석탄을 거래하고 있다며 북한의 기만적인 해운 활동에 상당히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블링슬리 차관보] “We are very focused on deceptive shipping practices, in particular, and ship-to-ship transfers of oil and coal to get around the UNSC embargoes on those products. And you will have seen since August, nearly every single week we are targeting entities involved in helping North Koreans evade these sanctions.”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돕는 행위자를 상대로 8월 이후 거의 매주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하면서 북한에 반입될 수 있는 정제유를 50만 배럴로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공해상에서 제 3국 선박과 맞대는, 이른바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이미 올해 중순 상한선 50만 배럴을 크게 초과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입니다.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 9월 유엔 안보리 회의를 통해 이런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The United States has assessed and we can say in no uncertain terms that the cap of 500,000 barrels has been breached this year. We continue to see illegal imports of additional refined petroleum using ship to ship transfers, which have clearly prohibited under the UN resolutions.
올해 북한에 허용된 (정제유) 상한선 50만 배럴을 확실히 넘긴 것으로 판단되며, 안보리 결의가 명확하게 금지한 불법 정제유 수입도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사실을 계속 목격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미국 정부가 기존의 제재 방식을 탈피한 점도 올해 두드러진 변화입니다.
통상 미국은 독자제재를 할 때 재무부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특별지정 제재 대상(SDN)으로 지정하는 방식을 이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올해에는 미 법무부가 제재 대상자를 기소하거나, 제재와 관련된 주의보를 내는 방식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북한 정권의 돈세탁 등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중국과 싱가포르 소재 3개 기업에 대한 몰수 소송을 미 연방법원에 제기했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연방 검찰이 대북제재 위반 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조치에 나선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올해에만 사이버 범죄에 연루된 박진혁 등 북한 해커가 기소되고,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한 싱가포르 국적자 탄위벵이 미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게 됐습니다.
또 국무부가 올해 2월과 7월 다른 기관과 합동으로 북한과 관련한 2건의 ‘주의보’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의 확고한 대북제재 이행을 당부했는데, 이 역시 기존과 달라진 범정부 차원의 공조였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제재는 (안보리의 제재에 비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Even the additional US sanctions...”
그러면서 미국의 제재를 계속 가하는 건 북한에게 제재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엔이 더 이상 제재를 가하지 않는 현시점에서도 제재가 계속되는 것과 동일한 압박 효과가 발생한다는 설명입니다.
브라운 교수는 미국의 제재가 기존 유엔 제재를 이행하고, 유지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Sanctions don’t need to be...”
제재라는 건 매번 강화돼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현재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는 이미 수위가 충분히 높고, 대부분의 나라들도 이를 잘 준수하고 있어 북한 입장에선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 브라운 교수는 말했습니다.
아울러 제재를 통한 북한의 핵 포기 목적은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했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에 압박을 가한다는 견지에선 예상 외의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했습니다.
올해는 대북제재의 완화 혹은 해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한의 도발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으며,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무게를 싣고 있는 한국 정부 역시 이런 분위기에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안보리가 제재 완화나 해제와 관련한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북한에 부과된 제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전까지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d love to take the sanctions off. But they have to responsive too. It’s a two way street. But we are not in any rush at all. There’s no rush what so ever.”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재를 해제하기를 원하지만 북한 역시 반응을 보여야 한다며 “이건 양방향 도로와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전혀 서두르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도 급할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폼페오 장관도 같은 달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북 핵 프로그램 제거를 검증할 수 있을 때까진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이런 입장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올해 열린 유엔총회 1위원회 회의에선 프랑스와 영국, 체코, 오스트리아, 터키,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 등 유럽나라들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 전까진 제재가 엄격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제재가 계속될수록 북한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최근 VOA에 제재가 지속되면서 북한 내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Even if they find the way...”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방법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물자 조달 비용을 높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재가 없다면 지금처럼 여러 방법을 동원해 물자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비용도 저렴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브라운 교수 역시 연료 제한을 명시한 안보리 제재 결의로 인해, 원유와 정제유의 비축분이 바닥나기 시작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어떤 제재라고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회피’ 방법이 생기게 된다며, 제재 자체의 효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Of course with any sanctions...”
이런 이유 때문에 내년에는 밀수가 더욱 늘어날 수 있으며, 일부 공식 무역도 어느 정도 재개될 수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내다봤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