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한 달 가까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의 신변에 대해 각종 추측과 소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상황이 이렇게 장기간 공개되지 않는 것은 자유민주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전문가들은 유엔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북한 지도부가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달 3일 이후 한 달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건강악화설에서 신변이상설까지 다양한 추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김 제1위원장에 대해 이렇게 추측이 난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당국이 최고 지도자의 신상에 대해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주 기록영화를 통해 김 제1위원장이 “불편한 몸”이라고 언급했지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불편하신 몸이시건만 인민을 위한 영도의 길을 불같이 이어가시는 우리 원수님!”
그나마 불편한 몸이라고 밝힌 게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신상이나 건강, 사생활은 철저한 비밀에 속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상황은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으로 하는 자유민주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가령 한국에서는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둘러싸고 야당과 언론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커진 바 있습니다.
[녹취: 한국 방송 보도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석연치 않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박대통령이 뭘 했는지 밝혀야 한다와 밝힐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SNS에서 충돌합니다. 박 대통령은 당일 줄곧 청와대 경내에 머물며 오전 10시부터 밤 10시9분까지 21차례 보고를 받았고…”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민의 큰 관심사이자 언론의 감시 대상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9.11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때의 행적이 도마 위에 올라 여러 시간 관련 조사 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모두 국민들에게 언론브리핑 등을 통해 자세히 공개됐습니다.
백악관은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을 받았을 때 실시간 회견을 통해 그의 건강 상태를 국민들에게 알렸습니다.
자유민주 사회에서 대통령의 일정은 매일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 공개되고, 심지어 휴가나 골프 등 사적인 활동 역시 국민에게 전달됩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담당 보좌관을 지낸 수미 테리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일 ‘VOA’에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국민이 지도자의 동선을 아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 “너무나 다 아시다시피 여기서는 한 두 시간이라도 지도자가 없어지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다 알아야 하고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미디어 프레스도 그렇게 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들이 뽑은 지도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죠, 사람들이.”
테리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섬기며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며 그러나 “북한은 국민이 오히려 지도자와 정부를 섬겨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대조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 이런 알 권리는 비단 자유민주 세계 뿐아니라 유엔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엔은 반부패협약 (UN Convention against Corruption)을 통해 정부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고, 유엔의 주요 인권협약들은 표현의 자유 권리 등을 근거로 모든 국민이 정부에 질문하고 관련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한 국민은 정보자유법 등 관련법에 따라 정부에 이를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답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국제 언론감시기구인 국경없는 기자회의 벤자민 이스마엘 아시아 국장은 1일 ‘VOA’에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를 여객기 조종사와 승객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이스마엘 국장] “There is a mandatory requirement for the pilot…”
조종사는 승객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행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승객이 조종사의 건강 상태와 비행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묻고 아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겁니다.
이스마엘 국장은 특히 국가 지도자에게 건강 문제가 있으면 정책 결정을 잘못 내리거나 국민이 모르는 소수가 밀실에서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의 투명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그러나 최고 지도자의 상태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며 정보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열린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 (UPR)에 참석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리경훈 법제부장과 김명철 참사의 발언입니다.
[녹취: 리경훈 법제부장] “우리나라에서 공민들은 법의 보호 속에 자기 의사를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하여 자유롭게 표시하고 있으며 저작 및 문화예술 활동도 마음껏 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민들은 자기 의사가 무시되거나 자유가 유린되는 경우에는 그가 누구이건 그 어떤 기관이건 직접 해당 기관에 직접 신소나 청원을 할 수 있습니다.”
[녹취:김명철 참사] “우리 공화국은 인민이 선택하고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 된 사회주의 제도입니다. (국제사회의 지적처럼) 이러한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과연 그런 제도가 아직까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가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북한은 부정부패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경없는 기자회의 이스마엘 국장은 건강한 국가 지배구조의 핵심은 책임과 투명성에 있다며 북한 정부는 즉각 지도자의 상태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스마엘 국장]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hould reveal information about situation of Kim Jong Un….”
이스마엘 국장은 북한 정부가 국가를 개방해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지도자의 주장처럼 진정한 강성국가로 번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