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정권의 2인자로 알려졌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실각설이 제기되면서 그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장성택이 어떤 인물이며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1946년 1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장성택은 결혼을 통해 북한의 권력층에 편입됐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동급생인 장성택을 좋아해 아버지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장성택이 공부를 잘해서 김일성대 경제학부에 입학해서 김경희를 만났는데, 김일성이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쫒아보냈는데, 1년만에 김일성이 포기하고 둘이 결혼해 로열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겁니다.”
김일성 주석의 사위가 된 장성택은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장성택은 평양 시당 지도원과 당 중앙위원회 지도원, 그리고 3대 혁명소조 부부장을 거치면서 승승장구 합니다. 특히 1989년 ‘평양세계학생축전’ 당시 평양 건설사업을 지휘한 공로로 ‘노력 영웅’ 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성택은 권력의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1978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강선제강소에 내려가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3대혁명 소조할 때도 혁명화를 했고, 김경희의 남편이니까, 권력이 쏠릴만 하면 조직부나 보위부가 제지해 혁명화와 숙청에 직면했는데, 이번에도 또 다시 실각에 직면하게 된 겁니다.”
지난 2004년에도 장성택은 다시 한번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재직 중 ‘파당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집중 검열을 받고 한직으로 좌천된 겁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6년 장성택은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합니다. 당 근로단체.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장성택은 검찰과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를 관장하는 당 행정부장에 임명됐습니다.
2008년 여름, 처남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건은 장성택이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을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했던 데니스 와일더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장성택이 국정을 장악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니스 와일더]JANG SUNG-TACK WAS VERY MUCH INVOLVED POLICY MAKING…
김정일 위원장이 석 달간 자취를 감추자 장성택이 김 위원장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장성택은 김정은 정권의 후견인으로 등장합니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장성택은 그 후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인민군 대장, 당 행정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무려 8개의 직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해 8월에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이클 헤이든 전 미 중앙정보국장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장성택이 김정은 정권의 권력 실세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헤이든] "POWER BEHIND THRONE AS WE SAY…
북한 권력의 실세인 장성택이 어린 김정은에게 정치적, 전략적 조언과 지침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2013년에 들어서면서 장성택은 조금씩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수행하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장성택은 지난 해 106 차례나 현지지도를 수행하면서 김정은의 최측근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김정은을 가장 많이 수행한 사람은 129회를 기록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었으며, 장성택은 52회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장성택의 최측근 2 명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민주당 소속 정청래 의원입니다.
[녹취: 정청래 의원] “북한의 장성택 행정부장이 실각한 것으로 본다고 했고 그 이유로 장성택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이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11월 중순 공개 처형되었고 처형 사실에 대해 군 내부에 다 공지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 사건 이후 장성택은 자취를 감추었고 실각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고 대면보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실각된 배경이 밝혀져야 그의 복권 여부를 전망할 수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인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전현준 원장입니다.
[녹취: 전현준 원장] “영도체계에 도전을 하다가 밀려났다면 복권되기 힘들 것 같고, 정책 실패라든지 최룡해와의 갈등 속에서 밀려났다면 복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1946년 1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장성택은 결혼을 통해 북한의 권력층에 편입됐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동급생인 장성택을 좋아해 아버지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장성택이 공부를 잘해서 김일성대 경제학부에 입학해서 김경희를 만났는데, 김일성이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쫒아보냈는데, 1년만에 김일성이 포기하고 둘이 결혼해 로열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겁니다.”
김일성 주석의 사위가 된 장성택은 이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장성택은 평양 시당 지도원과 당 중앙위원회 지도원, 그리고 3대 혁명소조 부부장을 거치면서 승승장구 합니다. 특히 1989년 ‘평양세계학생축전’ 당시 평양 건설사업을 지휘한 공로로 ‘노력 영웅’ 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성택은 권력의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1978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강선제강소에 내려가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3대혁명 소조할 때도 혁명화를 했고, 김경희의 남편이니까, 권력이 쏠릴만 하면 조직부나 보위부가 제지해 혁명화와 숙청에 직면했는데, 이번에도 또 다시 실각에 직면하게 된 겁니다.”
지난 2004년에도 장성택은 다시 한번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재직 중 ‘파당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집중 검열을 받고 한직으로 좌천된 겁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6년 장성택은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합니다. 당 근로단체.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장성택은 검찰과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를 관장하는 당 행정부장에 임명됐습니다.
2008년 여름, 처남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건은 장성택이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을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했던 데니스 와일더 씨는 `VOA'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장성택이 국정을 장악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데니스 와일더]JANG SUNG-TACK WAS VERY MUCH INVOLVED POLICY MAKING…
김정일 위원장이 석 달간 자취를 감추자 장성택이 김 위원장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장성택은 김정은 정권의 후견인으로 등장합니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장성택은 그 후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인민군 대장, 당 행정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무려 8개의 직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해 8월에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이클 헤이든 전 미 중앙정보국장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장성택이 김정은 정권의 권력 실세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헤이든] "POWER BEHIND THRONE AS WE SAY…
북한 권력의 실세인 장성택이 어린 김정은에게 정치적, 전략적 조언과 지침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2013년에 들어서면서 장성택은 조금씩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에 수행하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장성택은 지난 해 106 차례나 현지지도를 수행하면서 김정은의 최측근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김정은을 가장 많이 수행한 사람은 129회를 기록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었으며, 장성택은 52회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장성택의 최측근 2 명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민주당 소속 정청래 의원입니다.
[녹취: 정청래 의원] “북한의 장성택 행정부장이 실각한 것으로 본다고 했고 그 이유로 장성택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이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11월 중순 공개 처형되었고 처형 사실에 대해 군 내부에 다 공지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 사건 이후 장성택은 자취를 감추었고 실각한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고 대면보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실각된 배경이 밝혀져야 그의 복권 여부를 전망할 수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인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전현준 원장입니다.
[녹취: 전현준 원장] “영도체계에 도전을 하다가 밀려났다면 복권되기 힘들 것 같고, 정책 실패라든지 최룡해와의 갈등 속에서 밀려났다면 복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