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간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고 있는 현 상태를 ‘전략적 인내’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지를 놓고 엇갈린 견해를 보였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와 닮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There's obviously, I think, some discussion that may be going there, might be going on behind the scenes and concerning some possible humanitarian aid to North Korea. But again, at the end of the day, if we're talking about serious engagement, that will eventually lead to some sort of steps toward denuclearization, I'm seeing absolutely nothing on that front.”
고스 국장은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북 사이에 대북 인도주의 지원 등을 놓고 비공식 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비핵화로 이끌 수 있는 진지한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와 같은 일종의 양보안을 미국이 내놓지 않으면서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여기에 더해 아프간 사태까지 터지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마저 없어졌다는 겁니다.
고스 국장은 앞선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정신을 차리기만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었다며, 문제는 북한이 그들의 관점에서는 이미 정신을 차렸고, 미국이 관여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양보할 용의가 없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That's basically what strategic patience is, sitting around waiting for the North Koreans to come to their senses. The problem is the North Koreans have already come to their senses from a North Korean point of view, and they're not willing to to make upfront concessions to get the U.S. into an engagement.”
앞서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사실상 전략적 인내로 회귀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들은 그 근거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선제적 유인책을 제공하지 않는 등 돌파구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점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전문가들은 제재 완화와 같은 양보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전략적 인내’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입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후 줄곧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며 손을 내밀고 있음에도 호응하지 않는 건 북한이라며, 이런 상황을 ‘전략적 인내’로 부르는 건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24일 VOA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언제, 어디서든 아무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 그밖에 미국의 입장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닝 연구원] “I think the administration has made it very, very clear publicly and privately that they are happy to talk with North Korea anytime, anywhere with no conditions, I'm not sure what else…The question presumes that here was some action that could be successfully taken, that's not being taken because we're reluctant to do to be more proactive. I would question that assumption because I don't see any evidence or indications that North Korea is in a negotiating mode.”
매닝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미국이 성공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음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가정이 들어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가정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는 북한이 ‘대화 모드’에 돌입한다는 어떤 증거나 신호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매닝 연구원은 밝혔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북 핵 특사는 북한이 대화 제의에 화답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더 알맞은 질문은 ‘왜 북한은 최소한 만나서 대화가 유지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루치 전 특사] “So the better question to ask is why doesn't the North want to at least meet and see if there aren't circumstances under which talks could be sustained?...I think the Biden team is probably a tad more enthusiastic about engaging the North than the folks worked through eight years of President Obama. But right now, as unless there's something going on I don't know about, you know we've got an envoy, but we don't have talks. Nothing much happening.”
갈루치 전 특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 8년 때보다 북한과의 대화에 조금 더 열심인 것으로 보이지만, 대북 특사가 있는 상황에서도 외부로 드러난 형태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지칭된 ‘전략적 인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미국의 입장에선 부당한 면이 있다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매우 적극적으로는 아니었어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었던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대북 제재와 같은 양보안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 양측의 교착 상태를 끝낼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방안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을 약해 보이도록 만들 것인만큼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루치 전 특사] “I don't see the Biden administration making any substantial concession on sanctions because it looks weak, you know and nobody wants to look weak. Certainly the Dems can't afford to look weak to the Republicans So I don't see anything happening until the North decides it wants to get going.”
따라서 북한이 진전을 원한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전략적 인내’를 촉발시킨 주체는 북한이었다며, 당시 대북정책특별대표였던 성 김 현 대북특별대표와의 대화를 회상했습니다.
[녹취: 클링너 연구원] “Sung Kim said the same thing when he had the position back in the Obama administration I remember talking to him, you know, saying how did he respond to the criticism that the U.S., you know, had conditions before they were willing to talk with North Korea. And he laughed and he said at my level there are no conditions. I'm trying to talk to them and they won't talk to me, you know? And that was back when he had the job before.”
당시 성 김 대표는 ‘ 북한과의 대화에 미국이 전제조건을 달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자신의 직위에선 어떤 전제조건도 없다’며 웃은 뒤,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하지만 그들이 나와 대화를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클링너 연구원은 현재 바이든 행정부 역시 어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의 거부로 인해 미국이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일각에서 미국이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미국이 제안했던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대북정책이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창의’의 의미는 ‘북한으로부터 돌려받는 것 없이 무엇을 또 줄 수 있겠느냐’에 대한 것”이라고, 클링너 연구원은 주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면 미국과 북한 모두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스 국장은 그런 상황에선 “우리 모두가 패자”라면서 “북한은 미국이 원치 않는 핵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게 되고, 북한은 그들은 원치 않는 경제적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We all lose. I mean, the North Koreans are still go over the nuclear program, which is something we don't want, and they're going to be economically suffering, which they don't want. If you're willing to just maintain the status quo, then you probably can survive with a strategic patience, the North Koreans are not going to attack South Korea, but they are going to continue to develop their nuclear program”
미국이 현 상태를 유지하길 원한다면 전략적 인내로 버틸 수 있고,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핵 개발은 막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매닝 연구원도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북 핵 문제를 장기간 끄는 것 자체가 양쪽에 굉장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매닝 연구원] “It doesn't look to me like anybody's winning. I think that we have kind of a stalemate, but that the problem is it's not from a zero base. It's from a long record of transactional failure. Right, with Trump, with the six party talks… So both sides have a lot of baggage from the history of this of these diplomatic efforts on the nuclear question and that I think that weighs on peoples’ views.”
문제는 현재의 미-북 대화가 원점에서 시작한 게 아닌, 오랜 실패의 역사 속에 기인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매닝 연구원은 미국과 북한 모두 핵 문제와 관련한 외교적 노력의 역사에 이미 많은 짐을 지고 있고, 이는 여론적으로 많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