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VOA는 오늘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한국전쟁의 의미와 시사점을 되돌아 보는 기획보도를 전해 드립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실종 미군의 이야기와, 미군의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을 위한 미국 정부의 노력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조은 기자입니다.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펀치볼 국립묘지.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 수 천 명의 이름이 대형 비석에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이 곳에 새겨진 아서 라미레즈 미 육군 상병의 이름 옆에 얼마 전 그의 신원이 확인됐음을 알리는 장미 모양의 리본이 놓여졌습니다.
70년 만의 귀향입니다.
1950년 여름, 19살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라미레즈 상병은 그 해 12월 겨울, 소속 부대가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격전을 벌이던 중 실종됐습니다.
미 남서부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18살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피닉스에 있는 군대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단 몇 개월 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나서 라미레즈 상병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3월 19일 미 육군 의장대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조기로 덮인 라미레즈 상병의 유해가 담긴 은색 관이 그가 18살에 떠난 고향 애리조나주 참전용사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할머니, 삼촌을 찾았어요. 할머니 아들 아서가 집에 돌아왔어요.”
라미레즈 상병의 조카 앤지 로페즈 씨가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소식입니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89살이 됐을 라미레즈 상병.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와 형제, 누이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유가족은 로페즈 씨를 포함한 조카들 뿐입니다.
외할머니는 늘 아들인 라미레즈 상병이 그저 살아있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로페즈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로페즈 씨] “In her mind, he was always alive…”
아들인 라미레즈 상병이 전쟁에서 도망쳐 한국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거나, 한국인 아내가 생겼거나, 아니면 전쟁포로로 잡혔거나, 어쨋든 그렇게라도 살아있기만을 바랐다는 겁니다.
라미레즈 상병은 1950년 9월 17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늘 그랬듯이 "저는 최상의 상태"라며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이 편지에 한국전쟁에 대한 얘기는 없었지만, 전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고, 로페즈 씨는 말합니다.
[녹취: 로페즈 씨] “It says, Dear Mother, just writing this letter....”
“어머니, 별일 없으신지 인사 드리려 편지를 써요. 저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 농장에는 별 일 없나요? 젖소들이 우유는 많이 짜내고 있나요? 아니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겁 먹은 건 아닌지요.”
이 편지가 라미레즈 상병이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약 3개월 후 라미레즈 상병은 전투 중 실종됐고, 그 후 소식이 끊겼습니다.
로페즈 씨는 가족들이 수 십 년을 기다렸던 라미레즈 상병 유해의 신원 확인 소식을 “내 인생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라미레즈 씨] “I was beyond myself because it was something that we have been hoping for…”
미국 정부는 한국전쟁 중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군의 신원 확인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2018년 8월 1일 하와이 펄하버-히컴 합동기지에서 열린 미군 유해 송환 행사에서,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8천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모든 영웅들의 신원이 확인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미국의 임무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리 터커 공보관은 18일 VOA에, 라미레즈 상병의 유해처럼 수 십 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한국전쟁 참전 실종자 미군 유해는 총 581구라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28구는 올해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신원 확인 작업은 흉부 X레이와 치아 검사 등을 통해 정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최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이 적용돼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미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실종 미군 가족 90% 이상의 DNA 샘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난 2019회계연도에는 총 73구의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 보내는 역대 최대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또 몇 년 전 네브라스카에 이어 하와이에 추가로 감식연구소를 설립해 신원 확인 역량을 확대했습니다.
미국이 방대한 신원 확인 작업을 하고 있는 유해는 상당 부분 북한에서 인도 받았거나 북한 내에서 발굴한 유해입니다.
1990년~1994년 사이 북한에서 인도 받은 208개 상자와 북한이 2018년 인도한 55개 상자에 담긴 미군 유해, 그리고 1996년~2005년 사이 방북해 발굴한 229구의 유해가 해당됩니다.
특히 2018년 북한이 미국에 인도한 55개의 상자에서 현재까지 총 67구의 미군 유해 신원이 공식 확인됐다고, 터커 공보관은 밝혔습니다.
당시 북한 정부는 6월 미-북 1차 정상회담 이후인 7월 27일 미국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가 담긴 상자들을 넘겼습니다.
DNA 감식 결과, 당시 북한이 인도한 상자에는 한국군 유해 77구를 포함해 대략 250구의 유해가 담겼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터커 공보관은 설명했습니다.
라미레즈 상병의 유해도 여기에 담겼던 유해 중 한 구입니다.
DPAA에 따르면 이 상자에 담긴 유해 중 일부는 라미레즈 상병이 소속됐던 7보병사단 57야전포병대대가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장진호 인근에서 발굴됐습니다.
유엔사는 실종된 대부분의 미군 유해는 한국전쟁 주요 격전지로 꼽히는 장진호와 운산, 청천 전투 지역, 비무장지대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터커 공보관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유해는 5천836구로 추정됩니다.
4천881구는 북한 지역에서 실종된 미군의 유해고, 955구는 한국 혹은 비무장지대에서 포로로 잡혀 북한 내 전쟁포로 수용소로 보내진 미군의 유해로 기록됐다는 겁니다.
미국은 국가 주도로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매년 발굴 팀을 한국에 파견하고 있는데, 북한과의 협력은 여전히 도전과제입니다.
2005년 이후 중단된 북한 내 미군 유해 공동 발굴작업 재개를 위한 합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DPAA는 그동안 북한 측에 2005년 이후 중단된 미군 유해 공동 발굴작업의 재개를 수 차례 제안해 왔습니다.
또 북한 측에 2020회계연도 공동 현장 활동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해 제안한 상황이라고, 터커 공보관은 밝혔습니다.
DPAA는 북한 내 미군 유해 공동 발굴작업 재개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며, 내년 봄 관련 팀이 방북할 수 있도록 북한과의 회담에 계속 문을 열어 둘 것이라는 겁니다.
여전히 미확인 상태로 남아 있는 한국전쟁 참전 미군은 7천580명입니다.
로페즈 씨는 아직도 실종된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미군 가족들에게 "늘 희망이 있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녹취:로페즈 씨] "Don't give up. There is always a hope, Don't give up..."
로페즈 씨는 삼촌인 라미레즈 상병이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평생 기억될 라미레즈 가족의 이야기이자 미국의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조은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보내 드리는 기획보도,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전쟁의 두 초상화,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작전’을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