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폐쇄 속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영국 외교관의 아내로 북한에 2년간 거주했던 린지 밀러 씨가 말했습니다. 또 평양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은 직업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현대 여성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과 북한 생활 관련 수필을 담은 책 ‘북한: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을 다음 달 출간하는 밀러 씨를 안소영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영국 외교관의 아내로 지난 2017년부터 2년 동안 북한에 거주하셨습니다. 그 경험을 담은 책이 다음 달 미국에서 출간되는데요, 책은 어떻게 구성됐나요?
밀러)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외국인으로서 지낸 일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제가 오가며 짧게 또는 비교적 길게 만난 북한 사람들의 하루를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책은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북한 내 사진 200장과 16편의 제 수필 등으로 구성됐어요. 북한 정권이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이 아니라 실제로 제가 보고 느낀 북한이 책 안에 담겼습니다.
기자) 연출되지 않은 사진 200점을 책에 담았다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뭔가요?
밀러) 제가 찍은 사진 대부분이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주로 학생들과 바삐 걷는 평양 시민들인데요, 인물 표정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었어요. 그 가운데 북한 군인들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는데요. 군복을 입고 잔뜩 긴장한 채로 이동하는 군인들이에요. 아주 앳된 모습이죠. 사진을 보면 이동하면서도 고개까지 돌리며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외국인 여성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 찬 눈빛을 하면서요. 저는 그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이 북한 군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 세계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다른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기자)외교관 남편을 따라 다닌 여러 나라와 북한,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도착 첫날 기억이 어때는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는지 궁금합니다.
밀러) 북한은 정말 이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책 제목을 ‘북한: 어느 곳과 같지 않은 곳’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북한에 살면서 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영국이나 다른 곳에서 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했어요. 공원에 가더라도 늘 누군가가 나무 뒤에라도 서 있었어요.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는 거죠. 또 다른 나라에서는 늘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그 나라를 더욱 이해하고 문화를 배울 수 있었지만, 북한에서는 어려운 부분이었어요. 물론 거리에서 쉽게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지만 이 또한 감시를 당할 수 있죠.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다 보니 그 사람들도 저를 불편해 할 때가 있고, 저도 그 사람들이 위험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죠.
기자)거주하신 문수동은 어땠나요?
밀러) 각국의 대사관들, 국제기관, 구호단체들이 모여 있는 문수동에서 외국인들 간 교류는 활발해요. 규모가 크지 않아서 매일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까 친하게 지내요. 외교단지 안에는 외국인 학교도 있지만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외교관 자녀들 대부분은 재택교육인 ‘홈스쿨링’을 했어요. 또 인터넷이 있기는 하지만 속도가 많이 느렸어요. 그 단지로 북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해요. 평양 주민들이 사는 거주 단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등하교나 출퇴근 길로 사용하는 거죠. 저도 늘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했어요. 밤에는 가끔씩 창 밖으로 북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를 쳐다 보기도 했어요.
기자)북한 주민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비교적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혹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북한 주민이 있나요?
밀러) 평양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과 접촉하는 일이 많았어요. 저는 그들과 친구가 됐었죠. 사실 외국인으로 북한인과 친구가 된다는 건 드문 일이었어요. 놀라웠던 건 북한 여성들이 남존여비 사상에 답답해 했고 외부 세계의 현대 여성들을 동경하고 있었다는 점이예요.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는 것보다 직업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했어요. 그러면서도 부모님들이 반대하실 것이라고도 했어요. 또, 영국의 여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 하더라고요. 특히 자녀 없이 직업을 갖고 결혼 생활을 하는 제 인생에 대해서도 흥미로워 했어요.
기자) 북한에 계실 때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어요.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밀러) 북한에 살았던 기억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놀라웠던 때가 바로 그 때에요. 북한이라는 곳을 그저 밖에서 지켜본 게 아니라 직접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죠. 국제적인 속보였어요. 평양에 있던 저희들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북한 방송은 며칠 후에 발표를 하더라고요. 그런 와중에도 제가 알고 지내던 북한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저희들에게 설명해 달라고 했어요. 또 제가 도착했던 2017년에는 미북 간 긴장이 상당했던 때였어요. 2018년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평양 시내에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과 김정은과 트럼프의 악수 장면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걸리더라고요. 어떤 의미의 긍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사람들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었어요.
기자)가장 폐쇄적이고 고립된 나라 북한에서의 생활이 밀러 씨의 삶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밀러) 북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하루 하루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믿음과 신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됐습니다. 또 깊은 인류애가 생긴 것 같아요. 제가 인식하지 못하고 매일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에다 인내와 참을성이 생겼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지하철을 놓치거나 앞에 운전자가 운전을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하면 쉽게 화를 내곤 했어요. 마치 그게 인생에 아주 큰 문제이고 모든 것인 양 말이죠. 하지만, 북한의 인도적 어려움 등을 생각해 보면 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거죠. 또 이전에는 뉴스를 보면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 도발 관련에만 집중했어요. 이제는 대화를 나눴던 북한 주민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의 안녕과 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져요.
기자) 신종 코로나 사태로 북한은 더욱 고립되고 있어요. 인도적 상황을 말씀 하셨는데, 국제사회의 지원 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에서 만난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밀러) 신종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된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재앙과 같을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국경이 굳게 닫혔다고 외부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들이 잊혀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메시지조차 그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슬픈 감정이 앞서는 것 같아요.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도 북한 주민들을 기억하고 싶어서입니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겸손과 인류애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우리 인간은 인생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고, 언제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존재라는 걸요. 또한 모든 정치적 드라마에도 휴먼 스토리가 있고 그 주인공들과 소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의 저자 린지 밀러 씨로부터 책에 대한 내용과 2년간의 북한 생활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