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발명자는 국제사회처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허에 대한 국제출원은 남북한 사이에 무려 1천 700배 격차를 보였는데, 북한이 특허법을 국제기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특허청 산하 한국지식재산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28일 발간한 북한의 산업재산권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의 발명자들이 사실상 재산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발명공보 수록 내용에 따르면, 발명자 개인에게 재산적 권리가 부여되지 않은 발명 출원이 93.7%를 차지했고, 나머지 특허 출원은 대체로 외국인들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남한의 특허법은 특허권자에게 독점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데 반하여, 북한 발명법은 독점배타적 권리인 특허권과 실시권이 국가에 귀속되는 발명권으로 이원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면서 특허권만을 부여하고 있지만, 북한은 발명권 권리를 중심에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특허 변호사인 이상호 한국 한동대 교수는 28일 VOA에, 북한의 이런 제도는 특허의 본질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호 교수] “특허는 기본적으로 독점권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독점권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란 대기업과 개인이 싸워도 삼성이 나의 특허를 침해하면, 비록 큰 기업이지만 내가 독점권이 있기 때문에 내 특허를 침해하지 말라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니까 굉장히 큰 인센티브가 되는 겁니다.”
국제사회는 이런 개인의 특허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타인의 특허권 또는 영업 비밀을 고의로 침해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몇 배를 보상하는 엄격한 징벌적 배상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 침해 손해배상액 중간값이 2017년 기준으로 610만 달러, 한국은 과거 6만 달러 정도였지만,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손해배상액을 최대 세 배로 올렸습니다.
아울러 누군가 특허권을 사용하려면 계약을 통해 사용 대가를 특허권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게 국제 관례지만, 북한은 국가가 발명자에게 일부 보상이나 상장을 주고, 이익은 정부가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제도가 북한의 국가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상호 교수] 자신의 발명을 계속 공개함으로써 사회가 계속 발전할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어떤 발명을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독점권 제한 기한인) 20년만 지나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까 사회 발전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죠. 그런데 북한은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목숨 걸고 특허를 내려고 안 하겠죠. 그러니까 사회의 발전 동력이 많이 떨어지겠죠.”
지난 1974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가입한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국제 특허와 상표를 출원하고 ‘지적소유권국’을 새로 설치하는 등 지식재산권 사업에 적극성을 보여왔습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총 발명은 1만 7천 21건, 특허는 1천 146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운영하는 특허협력조약(PCT)과 마드리드, 헤이그 시스템 등 주요 체계를 통한 북한의 특허와 상표, 디자인 국제출원 건수는 매년 10건 미만으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이는 2018년 특허협력조약(PCT) 기준으로 전 세계 25만 3천 건에 달하는 국제 특허출원 건수, 5만 6천 건으로 세계 1위인 미국, 1만 7천 건으로 5위를 차지한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치입니다.
북한의 통계자료가 불투명하지만, 국제출원 수치만 놓고 보면 남북한 사이에 무려 1천 700배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이상호 교수는 북한이 국내 특허법을 국제 수준으로 강화하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호 교수] 해외에서 직접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특허권이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3 세계는 외국의 직접 투자가 있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잖아요. 중국이나 캄보디아처럼 외부에서 직접 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세워야 매수도 돌아가는데,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을 세운 뒤 내가 제공하는 모든 지식이 다 새어 나가 버리면 공장을 짓고 싶은 동기가 떨어지겠죠. 따라서 제3세계가 외부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아주 탄탄한 특허권을 갖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 변호사는 중국에서 주요 특허 법인을 주도하는 변호사들은 옛 특허국(현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 출신으로, 당시 활발한 국제 교류를 통해 쌓은 지식이 개혁·개방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도 젊은 관료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두뇌가 명석한 젊은이들이 자력갱생보다 해외 교류를 통해 기술 개발과 특허로 해외 출원을 한다면 외화벌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