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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국 제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미국 제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미국 제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 역대 대통령을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입니다. 지난번에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이 매튜 페리 제독을 일본에 보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페리 제독의 항해가 실제 결실을 맺은 것이 피어스 대통령 임기 때입니다. 그런데 피어스는 취임식 날 성경에 손을 얹기를 거부한, 미국 역사에서 매우 드문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성경에 손을 얹지 않았다고요?

기자: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는 보통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맹세한다(swear)'고 말합니다. 그런데 피어스는 성경을 쓰지 않았고, '맹세한다' 대신 '확언한다(affirm)'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피어스가 이렇게 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진행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기자: 취임을 두 달 앞둔 1853년 1월 6일이었습니다. 피어스 부부와 열한 살 아들 벤저민, 애칭으로 '베니'라고 불린 아이가 매사추세츠주에서 장례식에 참석하고 뉴햄프셔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차 바퀴 축이 부러졌고, 객차가 선로를 벗어나 6미터가량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그 사고로 숨진 사람은 단 한 명, 베니뿐이었습니다. 부모는 눈앞에서 그 일을 겪었습니다.

진행자: 부모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겠군요.

기자: 네, 게다가 베니는 부부가 잃은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첫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둘째는 네 살에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 남은 아이마저 그렇게 떠난 겁니다. 피어스는 신이 자신의 과오를 벌하려고 아들을 데려갔다고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지 못했다는 것이죠. 부인 제인 여사는 취임식에 아예 오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부인은 정치를 싫어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인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한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두고도 남편의 정치적 야심이 치른 대가라고 여겼습니다. 백악관에 온 뒤에도 오랫동안 위층에 머물며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시절 백악관을 몹시 침울한 곳으로 기억했습니다.

진행자: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기자: 프랭클린 피어스는 1804년 뉴햄프셔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벤저민 피어스는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보든대학과 노스햄튼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고, 만 스물여덟에 연방 하원의원, 서른둘에 상원의원이 됐습니다. 상당히 이른 출세였습니다. 멕시코 전쟁에도 참전했고요. 인물이 좋았고 말도 잘해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185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후보들이 서로 표를 나눠 갖자 마흔아홉 번째 투표에서 대선 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앞서 포크 대통령 편에서 전해드린 '다크호스'의 또 다른 사례입니다. 취임 당시 마흔여덟 살로,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피어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죠?

기자: 네,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 늘 최하위권에 놓입니다. 결정적인 것이 1854년 5월에 서명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입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준주에서 노예제를 허용할지 주민들이 직접 정하도록 한 법인데요. 문제는 이것이 30여 년간 유지돼 온 미주리 타협을 무효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북위 36도 30분 위쪽에는 노예제를 두지 않기로 한 오랜 합의가 깨진 겁니다.

진행자: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기자: 캔자스로 노예제 찬성파와 반대파가 몰려들어 서로 총을 겨눴습니다. 유혈 사태가 이어져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남북전쟁의 예고편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새 정당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공화당입니다. 북부 출신 대통령이 남부 편에 섰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피어스는 대선 후보 재지명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 소속 정당으로부터 재지명을 받지 못한 첫 사례였습니다. 앞서 존 타일러나 밀러드 필모어,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대통령 중 소속당의 지명을 받지 못해 재선에 나가지 못한 경우가 있긴 했지만요.

진행자: 외교 쪽은 어땠습니까?

기자: 여기서 동아시아와 접점이 생깁니다. 1854년 3월 31일, 페리 제독이 일본과 가나가와 조약을 맺었습니다. 250년 가까이 이어진 일본의 쇄국이 끝난 순간인데요. 전임 필모어 대통령이 함대를 보냈고, 피어스 대통령 임기 때 조약이 체결된 겁니다. 미국 선박이 일본 항구에 들어갈 수 있게 됐고, 미국 영사관도 두게 됐습니다. 이 조약은 이후 동아시아 전체의 문호 개방 흐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28년 뒤인 1882년입니다.

진행자: 다른 외교 사안도 있었습니까?

기자: 1853년 멕시코로부터 지금의 애리조나 남부와 뉴멕시코 일대를 사들인 개즈던 매입이 있었습니다. 대륙횡단철도 노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반면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사들이려 한 이른바 오스텐드 선언인데, 사실상 노예주를 하나 더 만들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져 실패로 돌아갔고요. 정권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진행자: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기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고향 뉴햄프셔주로 돌아갔지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남북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링컨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더 큰 반감을 샀습니다. 1863년 부인 제인 여사가 세상을 떠났고, 피어스는 술에 의지하며 지내다 1869년 예순넷으로 숨졌습니다. 흥미로운 인연도 하나 있는데요. 대학 동창인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이 피어스의 선거용 전기를 써 줬고, 호손이 세상을 떠날 때 옆에 있던 사람도 피어스였습니다.

진행자: 유적지도 남아 있습니까?

기자: 뉴햄프셔주 힐스버러에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가 보존돼 있습니다. 뉴햄프셔주 콩코드에는 그가 살던 피어스 저택이 있고요. 묘소는 콩코드의 올드 노스 묘지에 있는데요. 부인, 두 아들과 함께 묻혀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대통령이지만, 고향 뉴햄프셔주에서는 1914년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주 의사당 앞에 세워졌습니다.

진행자: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 취임해 나라의 분열을 앞당긴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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