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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국의 지도를 바꾼 발명, 에어컨

willis c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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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요즘 워싱턴은 한여름입니다. 의회도 곧 8월 휴회에 들어가는데요. 이 무더위를 견디게 해주는 물건, 바로 에어컨입니다. 현대식 에어컨은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만, 처음에는 사람을 시원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는데요. 오늘은 미국 연방의회가 일하는 방식까지 바꿔놓은 발명품, 에어컨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진행자: 한국에서는 에어컨이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영어 약자를 따서 흔히 AC라고 하는데요. 시원하게 지내려고 에어컨을 만든 게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기자: 인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02년 뉴욕 브루클린의 인쇄회사 '새킷-윌헬름스(Sackett & Wilhelms)'는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여름철 습기 때문에 종이가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여러 색을 겹쳐 찍는 컬러 인쇄의 색이 어긋난 겁니다. 회사는 당시 난방기와 송풍기를 만들던 '버펄로 포지(Buffalo Forge)'에 해결을 의뢰했고, 그 일이 입사 1년 차 신입 엔지니어에게 맡겨졌습니다. 코넬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다섯 살 윌리스 해빌런드 캐리어(Willis Haviland Carrier)였습니다.

진행자: 신입 엔지니어에게 맡겨진 일이었군요. 어떻게 풀었습니까?

기자: 캐리어는 문제의 핵심이 온도가 아니라 공기 중의 물기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요. 피츠버그의 기차역 승강장에서 안개 속을 걷다가 실마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안개, 그러니까 물기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반대로 공기에서 물기를 뽑아낼 수도 있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차가운 물이 흐르는 관에 공기를 통과시켜 수분을 응결시키는 방식이었는데요. 그 설계도에 적힌 날짜가 1902년 7월 17일이고, 오늘날 현대식 에어컨의 생일로 여겨집니다.

진행자: 목표가 '시원한 공기'가 아니라 '마른 공기'였던 셈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발명이 특별한 겁니다. 캐리어의 장치는 네 가지를 한꺼번에 했습니다. 온도를 조절하고, 습도를 조절하고, 공기를 순환시키고, 공기를 걸러내는 것이었는데요. 단순히 찬바람을 부는 기계가 아니라 '실내 공기를 통째로 관리한다'는 개념이 이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캐리어는 이후 이 기술을 계속 발전시켰고, 1915년에는 동료 엔지니어들과 함께 독립해 ‘캐리어 엔지니어링 코퍼레이션’을 세웠습니다.

진행자: 공장에서 시작된 기술이 언제부터 일반인에게도 알려졌나요?

기자: 결정적인 장면은 1925년 메모리얼데이, 미국의 현충일 주말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리볼리(Rivoli) 극장이 캐리어의 대형 냉방 설비를 들였는데요. 당시 여름 극장은 사람들이 피하는 곳이었습니다. 어둡게 해야 하니 창문도 열 수 없었고, 관객들은 손부채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기계 조정이 늦어져 관객이 다 자리에 앉은 뒤에야 냉방이 시작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극장 안 부채질이 하나둘 멈췄다고 합니다. 극장 간판에는 '실내는 시원합니다(It's Cool Inside)'라는 문구가 내걸렸습니다.

진행자: 그 여름 극장 관객이 늘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여름이 극장의 비수기에서 성수기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할리우드의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여기서 출발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후 5년 동안 미국 전역의 극장 300여 곳에 냉방 설비가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간 게 아니라 시원한 공기를 경험하러 간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워싱턴 의사당에도 이 무렵에 에어컨이 들어왔다고요?

기자: 네, 이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창문 하나 없는 하원 본회의장은 여름이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속기사가 더위에 쓰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원들은 8월 무더위가 오기 전에 회기를 끝내고 워싱턴을 떠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습니다. 결국 1928년 하원 본회의장에, 이듬해인 1929년에는 상원 본회의장에 캐리어사의 냉방 설비가 설치됐습니다. 당시에는 이 기술을 '만들어낸 날씨(manufactured weather)'라고 불렀습니다. 하원은 설치 뒤 석 달 동안 걸러낸 먼지가 500파운드, 약 227킬로그램에 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에어컨 덕분에 의회가 일하는 방식까지 바뀌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여름에도 의사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서 회기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1935년에는 의회가 예산을 배정해 의사당 전체와 의원회관에도 냉방을 확대했습니다. 워싱턴은 원래 여름이면 외교관들이 '고온 수당'을 받던 도시였는데, 그런 도시가 일 년 내내 일하는 수도가 된 겁니다.

진행자: 일반 가정에는 언제부터 퍼졌습니까?

기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입니다. 값싼 창문형 에어컨이 대량 생산되면서 1950년대부터 빠르게 퍼졌는데요. 이때부터 미국의 인구 지도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름이 너무 덥고 습해 대도시가 들어서기 어려웠던 남부와 서남부, 이른바 '선벨트(Sun Belt)' 지역이 그렇습니다. 텍사스 휴스턴, 애리조나 피닉스, 조지아 애틀랜타, 네바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시들이 이 시기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진행자: 인구가 옮겨가면 정치 지형도 달라지지 않습니까?

기자: 바로 그 점 때문에 학자들이 에어컨을 단순한 가전제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조사를 해서 하원 의석과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다시 배분하는데요. 남부와 서남부 인구가 늘면서 이 지역의 의석과 선거인단이 계속 늘어났고, 반대로 북동부와 중서부는 줄었습니다. 에어컨이 고속도로나 교외 주택단지 못지않게 현대 미국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진행자: 집을 짓는 방식도 달라졌다고요?

기자: 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주 큰 변화입니다. 에어컨 이전 미국 남부의 집은 더위와 싸우도록 설계됐습니다. 천장을 높여 더운 공기가 위로 빠지게 하고, 처마와 현관을 깊게 빼 햇빛을 막고, 방마다 창을 마주 보게 내 바람이 통하게 했습니다. 여름밤에는 아예 밖에서 잘 수 있게 만든 '슬리핑 포치(sleeping porch)'라는 공간을 둔 집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냉방이 보편화되면서 이런 설계가 하나둘 사라졌고, 창문을 꼭 닫는 밀폐형 주택이 표준이 됐습니다.

진행자: 여름 저녁에 현관에 나와 앉아 있던 풍경도 그래서 사라진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실내가 바깥보다 시원해지면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녁마다 현관에 나와 이웃과 인사하던 이른바 '앞마당 문화'가 옅어졌다는 지적이 남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나왔습니다. 도시의 모습도 바뀌었는데요. 초기 고층 건물은 바람이 통하도록 창문을 열 수 있게 짓고 건물 형태까지 그에 맞췄지만, 냉방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문이 열리지 않는 유리 외벽 빌딩이 가능해졌습니다. 오늘날 미국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상당 부분 에어컨이 만들어낸 풍경인 셈입니다.

진행자: 지금은 어떤 과제가 남아 있습니까?

기자: 폭염이 잦아지면서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냉방을 켜지 못하는 가구 문제도 공중보건 사안으로 다뤄집니다. 서늘한 기후라 냉방 설비가 드물었던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는 폭염 때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건축계에서는 높은 천장이나 맞바람 같은, 에어컨 이전의 설계를 다시 들여다보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인쇄공장의 습기를 잡으려던 설계도 한 장이 미국인이 어디서 어떤 집에 사는지까지 바꿔놓았군요. 미국의 지도를 바꾼 발명, 에어컨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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