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체 대중국 수출에서 ‘주문자 생산방식’ 무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의 수출품 상당수가 중국의 하청을 받아 제조하는 물품이라는 의미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지난 한 해 중국에 수출한 물품의 총액은 3억4천735만 달러입니다.
총 153개 품목을 중국의 16개 성에 수출하며 벌어들인 금액인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절반 이상이 ‘역외가공’ 무역
중국 해관총서는 자국으로 유입된 품목의 거래 유형을 명시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대중 수출액 상당 부분이 ‘역외가공(Outward Processing)’으로 기입된 점이 눈에 띕니다.
금액으로는 1억9천539만 달러, 전체 수출액 기준으론 56%입니다.
북중 간 역외가공은 북한이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완제품 형태로 재수출하는 방식의 무역으로, 통상 주문자생산방식(OEM) 거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역외가공’ 방식을 이용한 북한의 대중 수출은 전년도인 2023년까지만 해도 49%, 즉 절반에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작년엔 이 비중이 7%p 증가한 것입니다.
최근 VOA는 해관총서 자료를 분석해 북한이 손목시계에 대한 대중 수출을 크게 늘렸다고 분석하면서, 이 거래가 ‘역외가공’ 방식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또 북한은 중국에서 머리카락을 대거 들여와 이를 가발 완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손목시계는 지난해 1억3천688만 개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다만 손목시계 1개의 수출액은 단돈 11센트로, 전통적인 시계 제조 강국인 일본(1달러 47센트)이나 스위스(3달러 42센트)의 판매액에는 크게 못 미쳤습니다.
또 북한이 제조한 가발 역시, 전체 대중 수출품 중 가장 많은 수출액 1억8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동시에 북한은 중국에서 머리카락 약 1억6천889만 달러어치를 수입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가발 재료인 머리카락을 사들여, 사실상 헐값에 가발 완제품을 넘기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이처럼 가발과 손목시계와 같은 OEM 품목의 수출이 최근 늘어나면서 북한의 대중 수출 유형에서 ‘역외가공’이 차지하는 부분도 덩달아 증가한 것입니다.
제재 강화 속 ‘역외가공’ 급증
사실상 한 국가의 수출품 절반 이상이 ‘OEM’ 제품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북한이 중국의 하청 국가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한 해석은 아닙니다.
북한의 역외가공 비중은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높아진 것으로 분석됩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6년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역외가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3%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수출 금지’ 품목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2017년엔 5.7%로 늘어나더니, 제재가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2018년엔 25%가 됐습니다.
그렇게 점점 높아지던 북한의 역외가공 수출은 지난해 전체 무역의 절반 이상을 넘긴 것입니다.
현재로선 제재 품목에 대한 대중 수출을 줄이는 대신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는 품목에 대한 OEM 생산을 늘린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NAEIA닷컴’ 대표는 손목시계와 가발 등 북한의 ‘역외가공’ 품목 제조가 중국 기업이 국제사회 제재를 매우 ‘영리하게’ 피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또한 손목시계에 대한 북한의 대중 수출이 지난해 급증한 것과 관련해 “북한은 매우 큰 규모의 산업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인보다 인건비가 훨씬 저렴하다”며 중국 기업이 북한에서 손목시계를 제조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대표] “So North Korea has a very large, I think well scaled workforce industrial workforce and they can do a lot of things as we can see. And they're probably very cheap, you know, compared to a Chinese worker. And so, the Chinese entrepreneur figures he's going to make a lot of money, and he probably does make a lot of money.”
다만 손목시계의 개당 수출액이 11센트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며, 북한 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거나 ‘노예 노동’ 환경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재 위반 가능성도 제기
북한의 ‘역외가공’이 미국 제재에 대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북한이 생산한 품목이 중국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즉 중국산으로 둔갑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에만 북한으로부터 2천620t에 달하는 양의 가발을 수입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가발 내수 시장은 이를 감당할 만큼 크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대한 최대 가발 수출국입니다.
북한이 제조된 가발이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은 북한 노동력을 이용한 물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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