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미국이 있기까지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인물 아메리카 시간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헐리우드는 세계 영화의 수도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 시간에는 헐리우드를 영화의 본고장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3인의 영화 제작자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헐리우드 하면 누구나 화려한 거리, 영화배우들, 카메라 등을 떠 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연예 사업에서는 배우만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감독도 제작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당연히 헐리우드에는 많은 감독과 제작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헐리우드 초기의 제작자인 세실 B. 드밀이나 새무엘 골드윈, 루이스 메이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실 B. 드밀은 1881년 미국 동부 매사츄세츠 주 애쉬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두분 다 극작가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쎄실이 12살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극단을 조직해 가족들이 같이 모여 살아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실은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세실은 1913년까지 어머니의 극단에서 배우로, 또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제시 래스키와 새무엘 골드피쉬를 만나 세 사람이 새로운 극단을 창립했습니다. 극단의 이름은 Jesse L. Lasky Feature Play Company였습니다. 골드피쉬는 나중에 이름을 새무엘 골드윈으로 바꾸었습니다.
세 사람은 즉각 영화제작에 손을 댔습니다. 이들은 영화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창의적인 것이 좋았고, 돈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 좋았습니다. 드밀, 래스키, 골드피쉬 3인은 인기 있는 서부극 스콰 맨(Squaw Man)을 영화로 만드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드밀은 이 연극을 진짜 서부의 이야기로 만들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는 촬영 장소를 아리조나 주 플랙스태프 (Flagstaff )로 정했습니다. 드밀 일행은 기차를 타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도착해보니 그곳은 너무나 현대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다시 기차를 타고 철길의 종점까지 갔습니다. 그곳은 캘리포니아 주 남쪽에 있는 조용하고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곳의 이름이 바로 헐리우드였습니다. 드밀은 “여기야말로 영화를 찍기에 완벽한 곳”이라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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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콰맨은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최초의 장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1913년 개봉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로써 드밀은 헐리우드를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터를 다진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영화산업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뒤를 이어 나온 백마장자 브루스터( Brewster's Millions), 외로운 소나무 길 (Trail of the Lonesome Pine)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세실 드밀은 영화의 제목 위에 자기 이름을 먼저 올려놓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만큼 당시 영화 관객에게는 배우보다 그의 이름이 더 중요했습니다. 드밀의 작품은 대작이라는 인식도 굳어졌습니다.
그는 많은 액션,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 수 백명에 달하는 배우의 동원 등으로 헐리우드 최고의 영화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서부활극, 코미디, 로맨스, 그리고 한때는 도덕적인 문제까지 다루는 다양한 분야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드밀은 거작이라는 의미의 에픽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에픽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이야기로 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미국 서부의 이야기에서부터 성경에 나오는 로마의 역사적 사건들을 주제로 한 것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십계”(The Ten Commandments)였습니다. 이 영화는 1923년 무성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대단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다 1956년 유성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얼마나 유명한지 지금까지도 부활절이면 미국의 텔레비젼 방송사들이 재방을 해주고 있습니다. 세실 드밀은 70편의 영화를 제작도 하고 감독도 했습니다. 1949년 그는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36년간의 빛나는 공연예술인 상이었습니다.
그토록 유명세를 누리던 세실 드밀도 195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생애 후반기에 나온 영화 중에는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52년에 최우수 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서커스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세실을 헐리우드의 최고 쇼맨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바로 이 영화는 그에 딱 맞는 주제라고 말들을 합니다.
189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온 13세 소년이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새무엘 골드피쉬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가족도 없고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장갑 파는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고, 다음에는 거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장갑 생산분야에서 일했습니다. 1913년, 새무엘과 그의 처남인 제시 L. 래스키, 그리고 세실 B. 드밀은 Jesse L. Lasky Feature Play Company라는 제작사를 차렸습니다. 이 제작사는 첫 작품 영화 스콰 맨(Squaw Man)을 만들었습니다.
1916년 골드피쉬는 에드가 셀윈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회사 명칭을, 골드피쉬, 셀윈 두 이름을 섞어 골드윈이라 정했습니다. 새무엘 골드피쉬는 그 이름이 너무 좋아 1918년 자기 이름을 아예 골드윈으로 바꾸었습니다. 골드윈 사는 좋은 영화를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1922년, 새무엘 골드윈은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골드윈 사는 메트로 픽쳐스 (Metro Pictures), 루이스 B. 메이어 프로덕션 (Louis B. Mayer Productions) 두 회사와 합병하고 명칭을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 Metro-Goldwyn-Maye), 약칭 MGM으로 바꾸었습니다. 새무엘 골드윈은 그러한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대 다른 사람과 합작은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자신만의 사무엘 골드윈 프로던셕을 설립했습니다.
새무엘 골드윈은 헐리우드의 황금기 위대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낸 독자적 제작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고, 비평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준 높고 질 좋은 작품 제작을 고집했습니다. 그 때문에 좋은 작품이 있으면 사람들은 골드윈 터치라는 말을 썼습니다. 골드윈은 자기 영화를 자기가 샀습니다. 그는 좋은 이야기나 연극이 있으면 그걸 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작가, 감독, 배우를 기용했습니다. 그는 루실 볼, 개리 쿠퍼, 수전 헤이우드, 윌 로저스 등 새로운 배우들도 발굴했습니다.
골드윈은 무척 독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영화 제작과 흥행의 모든 과정에 자신이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는 감독, 배우, 작가 등을 고를때 모든 결정을 자신이 내렸습니다. 그의 최고 작품으로는 작은 여우들 (The Little Foxes), 우리 생애 최고의 해 (The Best Years of Our Lives) 포기와 베쓰(Porgy and Bess)등이 있습니다.
새무엘 골드윈은 유머가 많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스운 표현들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레서 헐리우드에서는 우스운 표현을 골드위니즘 (Goldwynisms) 이라고 불렀습니다.
1946년 골드윈은 뛰어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 공로로 어빙 탈버그 메모리얼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1974년 타계했습니다.
새무엘 골드윈은 거의 60년 동안 영화계에서 활동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이스 메이어는 1905년 매사추세츠 주 하버밀에서 극장 관리인으로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업수완이 좋은 그는 몇 년 후에는 여러 개의 극장을 소유한 재산가가 됐습니다. 나중에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극장을 가장 많이 소유한 인물이 됐습니다. 1917년 그는 영화사를 창립했습니다. 1920년대 초, 영화사 Louis B. Mayer Pictures는 다른 두 영화사와 합병해 Metro-Goldwyn-Mayer가 됐습니다.
메이어는 MGM 부회장이자 Metro-Goldwyn-Mayer의 총지배인이 됐습니다.
그는 회사와 배우들을 다루는데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주디 가랜드, 크락 게이블, 캐서린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영화계 최고의 인물들을 발굴해 냈습니다. 당시 세간에는 “MGM은 천당보다 더 많은 배우들을 갖고 있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습니다. MGM은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 필라델피아 이야기 (The Philadelphia Story) 등 영화사상 가장 인기 높은 영화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1930년대와 40년대, 루이스 B. 메이어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막강한 사업가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당시 연간 백20만 달러 이상을 벌었습니다. 그는 그 시절 미국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1950년 메이어는 영화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 아카데미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1957년 헐리우드에서 72세로 타계했습니다.
세실 B. 드밀, 새무엘 골드윈, 그리고 루이스 B. 메이어는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영화 산업에 끼친 영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물 아메리카 이 시간에는 미국 서부의 황량했던 곳을 세계 영화의 중심지로 만든 세명의 제작자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