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례적인 고농축 우라늄(HEU) 농축시설과 원심분리기 공개는 핵 역량 진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평가했습니다. 북한에 원심분리기가 최대 1만 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기하급수적인 핵 물질 증산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13일 북한이 공개한 원심분리기는 파키스탄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자체 개량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North Korea may have received this design for a more advanced centrifuge in line with a longer version of P2 from Pakistan. I would think their more advanced centrifuge is basically an improvement of the P2 centrifuge which has a steel, steel rotor assembly. It's called Maraging steel and, and probably North Korea can make a lower quality Maraging steel. And so they made the advancement.”
올브라이트 소장은 공개된 사진 속 외형 분석과 과거 파키스탄과의 관련 협력을 고려할 때 “북한은 길이가 더 길고 발전된 파키스탄제 P2 원심분리기의 설계를 이전받았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이어 북한이 이를 바탕으로 ‘마레이징강’으로 불리는 고강도 합금강철로 된 원심분리기 회전자(로터)를 갖춘 자체 P2 개량형 원심분리기를 확보한 것이라며 “북한은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습니다.
P1과 P2 원심분리기는 파키스탄의 핵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설계한 모델로, 약 1.8~2미터 높이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P2 모델은 기존 알루미늄이 아닌 마레이징강 로터를 사용함으로써 내구성과 회전 속도를 크게 향상시켜 더 높은 효율의 우라늄 농축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은 압둘 칸 박사로부터 지난 1990년대 말부터 P1과 P2 원심분리기의 설계도를 이전 받아 우라늄 농축 기술 역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었습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최근 원심분리기 제조 선진국에서는 마레이징강보다 더 내구성이 좋은 ‘탄소 섬유’를 사용한다면서, 북한은 탄소 섬유 소재를 만들거나 대규모로 수입하기 어려운 만큼 마레이징강을 사용하는 파키스탄 제품을 바탕으로 개량을 하려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한 북한이 조만간 우라늄 농축 용량을 더 늘리기 위해 이번에 공개된 것보다 더 큰 원심분리기 개량형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I would expect them to be able to make would be to double the length. I mean the enrichment capacity goes as the length. So if you double the length, you double the enrichment output of a centrifuge.”
“원심분리기의 농축 용량은 길이에 따라서 달라지며, 길이를 두 배로 늘리면 원심분리기 농축 출력도 두 배로 늘어난다”는 설명입니다.
“과거보다 ‘분명한 진전’…‘탄소 섬유’ 사용 주시해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도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진 속 원심분리기는 약 1미터를 상회하는 크기로 보인다”면서 농축 용량 재고를 위한 개량의 여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하이노넨 특별연구원] “I would say that the way I see perhaps the actual centrifuge inside that housing which we see here is perhaps a bit around one meter or a little bit more. But on the other hand, when we look at the developments in other countries which developed centrifuges, this is really progress because it's a different setup, the way it's been designed to diameter height, and the materials we see there's a different centrifuges rotor inside, and it can only be better than the old ones.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원심분리기는 지난 2010년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가 직접 북한을 방문해 관찰했던 P2 모델에 비해 더욱 진전된 설계임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원심분리기 내부에 다른 원심분리기 회전자가 있고, 기존과 다른 설정과 재료, 직경, 높이로 설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거보다 더 나을 수밖에 없다”면서, 원심분리기를 개발한 다른 나라들의 발전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이것은 분명한 진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한이 만일 원심분리기 회전자에 탄소 섬유나 다른 복합 재료를 사용한다면 크기 개량이 없이도 원심분리기의 속도를 높이고 농축 역량을 지금보다 30% 이상 더 향상 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 물질 생산시설을 현지 지도하고 무기급 핵 물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중요 과업을 제시했다고 13일 보도했습니다.
북한 매체에 실린 사진을 보면 최신식 시설 안에 무기급 HEU를 얻는데 사용되는 원심분리기와 연속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 다수를 연결한 캐스케이드가 빈틈없이 꽉 찬 모습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원심분리기 대수를 더 많이 늘이는 것과 함께 원심분리기의 개별분리능을 더욱 높이라"며 “이미 완성단계에 이른 신형 원심분리기 도입 사업도 계획대로 내밀어 무기급 핵물질 생산 토대를 한층 강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북한은 2010년 핵 물리학자인 미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바 있지만, 이를 대외에 직접 공개한 건 처음입니다.
“우라늄 농축시설, 영변…다른 장소 가능성도 배제 못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고농축 우라늄 농축시설의 위치에 대해서는 영변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면서도 강선 단지 또는 제3의 장소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은 복도와 원심분리기의 배치 모습, 폭과 높이 등을 볼 때 파키스탄 디자인을 본 딴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You have this hall which appears to have, it appears to have the centrifuge arrangements that we expect to be at Yongbyun and its width and height looks like Yongbyun because remember, Kang Sung has a lot of windows and this one doesn't. Yong Byun is very much a Pakistani design. It's really how close it matches. I mean it doesn't necessarily mean the dimensions are the same but in terms of the cascade structure, you know, how they lay out of the pipe work.”
또 위성 사진 등의 분석에 따르면 강선 단지 건물에는 창문이 많이 발견됐는데,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장소에서는 창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북한이 공개한 사진 중 일부는 영변 핵시설에 있는 원심분리기로 추정되지만 다른 사진은 영변 핵시설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의 우라늄 농축 시설 시찰 소식을 전하면서 “핵무기 현행 생산을 위해 능력 확장을 진행하고 있는 공사 현장을 돌아봤다”고 밝힌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며, 영변이 아닌 강선 또는 제3의 핵단지에 위치한 추가 시설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영변 외 추가 1~2개 농축 시설 운영 확실”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공개된 사진을 바탕으로 추정할 경우 약 2천여 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북한이 영변 외에 추가로 1~2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더 운영 중일 가능성이 매우 큰 만큼 “최대 농축량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고, 현재 시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하이노넨 특별연구원] “I think that this is one of the open questions which we have and this is directly related to the capacity because if there's one more location which we don't know, it can have any number in terms of centrifuges and one should keep that one in mind.”
일반적으로 2천개 정도의 원심분리기에서는 연간 약 40kg 안팎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핵무기 1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무기급 우라늄 약 25kg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도 정확한 북한의 원심분리기 개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영변 핵시설에서만 1년에 50~75kg의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I mean if you look at the Young Byun plant as we understand it, I mean it could easily make 50 to 75 kilograms of weapon grade uranium a year. But if you add Kangson, it's going to be more. Based on the best information I have North Korea is operating about 7,000 to 10,000 centrifuges. And we know that 3 to 4,000 are at Youngbyun and then the rest four to 6000 would be at secret sites whether it's one or two I can't know, but I do believe that that's a reasonable estimate of the number of centrifuges operating outside of Youngbyun.”
그러면서 강선 핵단지의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합칠 경우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라며, 북한이 "7천개에서 최대 1만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중"이며, 영변에 약 3~4천개, 나머지 비밀 장소에 4천~6천개가 운영 중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핵물질 생산 증가하겠지만 ‘기하급수적 생산’은 어려워”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 시설이 분명한 역량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김 위원장이 공언한대로 핵물질의 ‘기하급수적 증산’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I mean the North Koreans love to say they're going to have an exponential increase but it's going to be a linear increase. It's a significant increase but it's, it's hardly exponential. So you get a graph that you know, just keeps rapidly growing and they like to scare people with that but it's just propagan.”
북한이 원심분리기 수와 개별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운다면 증산 속도는 더 빨라지겠지만, 재고가 일정 기간 동안 두 배가 되고 다음 같은 기간 동안 다시 두 배가 증가하는 ‘기하급수적’인 증산을 하는 것은 북한이 현재 보유한 역량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일정하게 선형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사람들을 겁주려고 하는 선전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했습니다.
“미국 대선 앞둔 ‘대외 위협’…‘7차 핵실험’ 대신 시설 공개”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북한이 그동안 숨겨왔던 우라늄 농축시설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과 동맹인 한국에 핵 역량을 과시하고 위협하려는 의도라고 진단했습니다.
“더 정교한 원심분리기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무기급 우라늄이 핵무기에 사용되고 있으며, 핵 관련 프로그램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한 대외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역내 긴장 고조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7차 핵실험을 굳이 실시하지 않고도 비슷한 경고와 위협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방편으로 전격적인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를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 무의미해질 것…다른 접근법 고려해야”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북한이 이처럼 고농축 우라늄 시설까지 공개하며 노골적인 핵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향후 비핵화 협상이나 핵군축 또는 동결 관련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의 알려지지 않은 원심분리기 시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절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핵 협상이 의미를 갖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하이노넨 특별연구원] “If there is misconduct with the adversary, that's what is needed. It's not school boy university guy approach building nice environmental with smiling and hope that the other party will change its happiness. History has shown it didn't work in Pakistan. It didn't work in Iraq for a while. It has not worked in Iran it has not worked in Syria.”
하이노넨 특별연구원은 “모든 측면에서 적의 동기와 함께 위협도 포함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지속가능한 장기적 합의를 구축할 수 있다”면서 “적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경우 필요한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차원의 접근법을 고려해볼 시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조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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