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가운데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는 등 북중 관계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최근 북러 밀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중국의 대북 정책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안준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시드니 사일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반도 국장은 30일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 대사의 북한 전승절 기념식 불참을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불만 표출로 해석했습니다.
사일러 전 국장은 “기념식은 중국 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참석했어야 하는 행사”라며 이는 중국이 최근 북러 관계 밀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현재 북러 관계를 외교의 중심으로 삼으려 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잠재적으로 러시아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재래식 무기 개발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사일러 전 국장] “China would appear to be unhappy with that. And the fact that they've lost so much leverage. When Kim can turn to Moscow, he doesn't need to turn to Beijing. And this obviously has irritated China. And that's all on the surface.”
사일러 전 국장은 “중국은 이에 대해 불만인 것으로 보이며, 대북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불만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로 눈을 돌릴 수 있는데 굳이 중국으로 향할 필요가 없다”며 “이것이 분명히 중국을 불쾌하게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1주년인 지난 27일, 평양체육관에서 북한의 이른바 ‘전승절’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엔 알렉산드르 마체코라 러시아대사와 레바빙 베트남대사 등 북한 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왕야쥔 중국대사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 다시 말해 미국에 대항해 북조선을 도와준 전쟁이라고 강조해온 중국이 전승절 행사에 불참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지난해 기념식에서는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좌우에 자리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 18형’ 등 북한의 전략 무기 행렬을 지켜봤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이날 VOA의 관련 질의에 “중국 대사가 평양의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특히 새로운 북러 전략적 동반자 협정이 체결된 이후 북중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최근의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북한과 중국 관계는 침체돼 있으며, 이런 상황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For the PRC ambassador not to be at the ‘Victory Day’ event in Pyongyang is very abnormal. It is the latest sign that all is not well in DPRK-PRC relations, especially since the conclusion of the new Russia-North Korea strategic partnership agreement. (중략) There has been a downturn in Pyongyang-Beijing relationship, and this development bears careful watching.”
최근 북중 사이에는 곳곳에서 예전과는 다른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북중 교역이 감소하고 중국 다롄의 2018년 북중 정상회담 기념 동판인 ‘시진핑-김정은 발자국 동판’이 제거됐습니다.
또 일본 지진 때는 김정은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각하’란 표현을 쓰며 위로 서한을 보냈지만 중국의 대규모 지진과 산사태에 대해서는 위로 서한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자 이를 비난하는 담화를 내놨고,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당시엔 서울에서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열렸습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대리는 VOA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북중 관계 저변엔 항상 어느 정도의 허약한 면이 존재해 왔고, 이는 북한과 중국의 전략적∙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십 년간 기복이 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최근 북러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면서 “이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우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며, 중국의 주요 동북 지역 국경과 한반도 전체에 원치 않는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대북) 조치들은 북한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랩슨 전 대사대리] “There’s always been an underlying degree of tenuousness in China-NK relations, which have ebbed and flowed over the decades largely as a function of Pyongyang’s alignment with Beijing’s strategic and regional interests. Putin’s recent summitry gambit with Kim, driven by mutual need, was viewed in Beijing as an unwelcome development.”
그러나 이 같은 북중 관계가 이상 현상은 아니란 지적도 있습니다. 중국이 북러 밀착으로 다소 불편하더라도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꼭 필요하단 지적입니다.
이성윤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북한 지도자가 중국에서 멀어져 러시아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때 불쾌해했다”면서 “중국은 북한 지도자가 러시아에 많은 투자를 하는 등 올인하는 것 같아서 미국∙한국∙일본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다소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 연구원] “China historically has been displeased when the North Korean leader seems to inch away from Beijing moving closer to Moscow. (중략) The Chinese are somewhat irate that the North Korean leader seems to be going all in that is investing a lot in Russia therefore irking causing concerns in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and Japan.”
이 연구원은 그러나 북한이 중국에 여전히 큰 전략적 가치가 있다면서 왕야쥔 중국 대사가 지난 27일 ‘전승절’ 기념 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25일 폭우 속에서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중국군이 묻혀 있는 평남 운산 중국인민지원군 묘지를 참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오늘날 북중 관계는 1960년대만큼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으며 이것은 이상 기류가 아니다”라면서 “중국과 북한은 관계가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주기적으로 겪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에 가장 큰 장기적∙전략적 경쟁자인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북한 카드를 갖는 것은 필수적인 전략적 가치가 있다”면서 “아마도 중국이 올해 안에 김정은을 중국에 초청해 투자와 원조를 약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이 연구원] “To China having the North Korea card to play against its greatest long term strategic competitor the United States is of essential strategic value.
So the Chinese will probably generously invite Kim Jong UN and promise investment and aid eventually I don't know when but probably more likely than not sometime this year.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이날 VOA의 관련 질의에 중국의 대북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관계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와일더 전 선임 보좌관] “I do not find the ‘evidence’ that China may change policies compelling. (중략) Sure Xi may be unhappy with the Putin-Kim relationship but he has no alternatives.”
전문가들은 또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서 자동 군사 개입에 해당하는 조항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란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새로운 북러 관계가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중국의 지원이 북한 생존에 매우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 “It's very hard to believe that the new Pyongyang-Moscow relationship is aimed at China. This is especially true since China's support is so essential to North Korea's survival.”
랩슨 전 대사대리도 그런 주장은 ‘어불성설(ridiculous)’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성윤 연구원도 “1969년 중국과 소련은 국경 부근에서 군사적 충돌까지 벌였지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는 데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최근 북러 조약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안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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