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동강의 주요 항구에서 10여 척의 대형 선박이 석탄을 싣는 모습이 고화질 위성사진에 포착됐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북한에서 석탄을 선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나포한 가운데, 부쩍 분주해진 석탄 항구의 움직임이 주목됩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동강 변의 석탄 항구인 송림항을 촬영한 고화질 위성사진에 대형 선박이 보입니다.
지난 2월 29일 에어버스가 촬영해 최근 구글어스에 공개된 위성사진에 나타난 이 선박은 길이 174m로, 적재함 5개에 석탄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물체를 가득 싣고 있습니다.
선박 바로 앞 부두에는 4개의 대형 크레인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에는 석탄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물체와 이를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이 놓였습니다.
석탄 추정 물체에서 20~30m 동쪽으로 떨어진 지점에는 더 많은 양의 검은색 물체, 즉 석탄이 쌓여 있습니다. 이곳의 석탄이 선박 근처로 옮겨진 뒤, 다시 크레인으로 선박에 실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결의 2371호를 통해 석탄을 포함한 북한의 광물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주요 석탄 항구 중 한 곳에서 이처럼 대형 선박의 석탄 선적 장면이 포착된 것입니다.
석탄 선적 장면은 인근의 다른 항구에서도 위성에 찍혔습니다.
송림항에서 약 14km 떨어진 대안항에선 90m와 94m 길이의 선박 2척이 적재함에 검은색 물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또 바로 앞 바다에는 30여 척의 선박이 동력 없이 떠 있는데, 이 중 4척에 석탄이 실려 있습니다. 적재함이 닫혀 있어 선적물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를 고려할 때 ‘석탄 선박’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VOA가 대동강 변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날 하루에만 석탄 추정 물체를 선적 중이거나 선적을 완료한 선박은 모두 13척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만으로 제재 위반을 단정할 순 없습니다. 석탄이 실제로 제3국으로 운송되는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의 대표적인 금수품인 북한산 석탄이 10척이 넘는 대형 선박에 선적되는 장면은 쉽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 정부는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한 때 토고 깃발을 달았던 선박 ‘더 이(De Yi)’호를 억류했는데, 한국 언론은 한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 선박이 북한에서 무연탄을 실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더 이’호가 북한에서 석탄을 선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번 위성사진을 통해 그런 선박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석탄 선적 의혹을 받는 선박이 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채 북한 항구에 기항한다는 점도 이번에 또다시 확인됐습니다.
선박의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자료에는 위성사진 촬영 시점인 2월 29일 대동강변에 선박이 단 한 척도 없는 것으로 표시됩니다.
또 ‘플래닛 랩스(Planet Labs)’의 4일 자 위성사진에는 북한의 최대 석탄 항구인 남포항에 정박한 140m 길이의 대형 선박이 보이지만, 같은 날 마린트래픽 지도의 해당 지점은 비어있습니다.
위성사진에 포착된 선박이 자신의 위치 정보를 외부로 발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앞서 VOA는 ‘더 이’호가 지난 1년 동안 단 2곳의 항구에 입항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더 이’호도 AIS를 끈 상태로 운항하면서 북한 항구에도 들렀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이 AIS를 상시 켜두고 운항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따라서 ‘더 이’호를 비롯해 AIS를 끈 채 북한 해역을 운항한 선박은 모두 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해운업계 전문가인 한국 우창해운의 이동근 대표는 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더 이’호가 북한에 기항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AIS를 껐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이동근 대표] “일단은 북한에 들어간 항적, 항구에 기항했던 흔적이 나오면 불이익을 많이 받죠. 그렇기 때문에 이 배가 북한 선적이든, 중국 선적이든 한국이나 일본 등 유엔 산하의 (일부) 나라에 가면 6개월이나 1년 정도 기항할 수 없는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AIS를 꺼서) 속일 수 있고…”
이 대표는 북한산 석탄을 실은 ‘더 이’호의 최초 목적지가 러시아인 점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석탄 수입국이 아닌 수출국인 러시아가 굳이 북한산 석탄을 사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 횡행했던 북한산 석탄에 대한 ‘원산지 세탁’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녹취: 이동근 대표] “러시아에서는 엄청난 양의 석탄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 인도에까지 러시아산이 수출이 되고 있는데, 이 배가 북한에서 나와서 러시아로 석탄을 운송하게 됐다는 것은 아마도 제3국으로 가는 환적을 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과거 한국 등에 유입된 북한산 석탄은 ‘러시아’산으로 원산지가 위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2017년 큰 논란을 일으켰던 북한 석탄의 한국 유입 사건은 러시아 홈스크에서 북한산 석탄이 환적된 사례였습니다.
또 지난 2019년 러시아 나홋카 항에 실려 한국으로 향한 석탄 3천217t도 이후 북한산으로 드러나는 등 당시 ‘석탄 원산지 세탁’은 전형적인 제재 위반 수법이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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