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이 사흘 연속 한국의 서북도서 인근에서 포 사격을 실시하자 한국 군 당국은 9.19 남북 군사합의로 정했던 적대행위 금지구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해당 구역에서의 군사훈련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한반도 긴장이 한층 높아지는 양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군이 사흘 연속으로 서해 최북단 서북도서 인근에서 포 사격을 실시하면서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지상과 해상의 적대행위 금지구역 즉 완충구역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습니다.
이성준 한국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8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3천600여회 위반했고 서해상에서 사흘 동안 포병 사격을 실시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이성준 공보실장] “적대행위 중지구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군은 서북도서 일대에서 적의 행위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우리 군 자체 계획에 따라서 사격훈련을 실시할 것입니다.”
남북한은 지난 2018년 체결한 9.19 군사합의에 따라 해상에서의 무력충돌 방지를 위해 동해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해상완충구역을 설정해 포 사격과 함정 기동훈련을 금지했습니다.
또 군사분계선 기준으로 남북 각각 5㎞까지 구역을 완충지대로 설정해 포병 사격과 연대급 이상 부대의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군이 지난 5일부터 사흘 연속으로 서해 NLL 인근 해상완충구역으로 포 사격을 실시함에 따라 한국 군도 9.19 군사합의에 연연하지 않고 지상과 해상 완충구역에서 정례훈련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군은 지난 5일 백령도 북방 장산곶 일대와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해안포 위주로 200여발 이상의 사격을 실시했고 서북도서에 있는 한국 측 해병부대는 K9 자주포와 전차포 등을 동원해 대응사격을 했습니다.
6일엔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와 야포 위주로 사격을 실시했고, 7일에도 연평도 북방에서 90여발의 포병사격을 했지만 이들 사격이 대체로 측방으로 실시돼 한국 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북한 군의 6일 포 사격에 대해 담화를 통해 자신들은 서북도서 지역에서 포탄을 쏜 적이 없고, 포성을 모방한 폭약을 터뜨리는 기만작전에 한국군이 속아 넘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한국 군의 “실제 탐지 능력을 떠보고 억지 주장을 펼 놈들에게 개망신을 주기 위해 기만작전을 진행했다”며 “폭약 터지는 소리를 포성으로 오판하고 포 사격 도발로 억측하며 뻔뻔스럽게 탄착점까지 서해 NLL 북쪽 완충구역에 떨어졌다는 거짓을 꾸며댔다”고 조롱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용한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실시간 원점을 확인하지 못하는, 즉각 대응이 어려운 이른바 ‘회색지대 도발’을 이어가면서 대남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용한 선임연구원] “해상은 지상과 달리 경계선이 모호합니다. 배라는 게 가 있어도 조류를 타고 계속 움직이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보니까 사실 그 중간에서 이뤄지는 도발이 굉장히 모호성을 띄게 되는데 다분히 북한이 그걸 노렸다고 볼 수 있고요. 실제로 포를 쐈는지 쏘지 않았는지 이런 부분을 갖고 폭약을 터트렸다 이런 것도 결국 그런 배경에 기인해서 북한이 심리전을 하는 거죠.”
한국 합참은 김 부부장의 주장에 대해 한국 군의 탐지 능력에 대한 수준 낮은 대남 심리전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합참은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문은 코미디 같은 저급한 선동으로 군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남남갈등을 일으키려는 북한의 상투적인 수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군은 북한이 6일 사격에서 방사포와 야포 등 포탄 60여발을 사격했고 사격 전후에 폭약을 10여 차례 터트린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대변하는 김 부부장의 위상으로 볼 때 담화 내용은 경박하면서도 한국과의 경쟁을 의식한 조급함이 묻어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 석좌연구위원은 북한 지도부의 경솔한 경쟁의식이 지금은 심리전 수준이지만 자칫 섣부른 도발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석좌연구위원] “북한이 한국에 대해서 조급함과 일종의 싸구려 경쟁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북한 측에서 앞으로 행동을 어떻게 할 건지 북한 측 지도부의 심리상태가 그런 식으로 돼 있다면 이게 혹시나 가볍게 판단해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거거든요.”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잇단 무력시위는 9.19 합의 파기와 그로 인한 한반도 안보 불안의 책임을 윤석열 한국 정부의 과도한 대북 강경책의 탓으로 돌리면서 한국 내 여론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오는 4월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계산이라는 게 홍 선임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앞서 북한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따른 대응조치로 지난해 11월 22일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자, 이튿날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이후 파기 책임을 한국 측에 떠넘기는 행태를 지속해왔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 당국이 포 사격 훈련 관련 보도를 주민들에게 내보내고 있다며, 경제난에 신음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외부 적의 위협을 부각시켜 미한에 맞선 국방력 강화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총력으로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할 때 아무래도 국제적인 안보에 대한 위협 상황이라고 하면 그걸 좀 더 강요할 수 있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거죠.”
북한 대내 관영 ‘조선중앙TV’는 7일, 폭약으로 한국 군을 기만했다고 주장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내용을 전하면서 북한 군인들이 폭약을 땅 속에 심은 뒤 차례로 터뜨리는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은 일본 이시카와 현에서 발생한 지진과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위문 전문을 보냈습니다
김 위원장은 6일 북한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5일자 위문 전문에서 기시다 총리를 ‘각하’로 호칭하며 지진 유가족과 피해자들에 대한 심심한 위로를 표했습니다.
인도주의적 사안이긴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일본 총리에게 전문을 보낸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위문 전문 발송은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인도주의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북일관계 개선 신호를 보내 강화된 미한일 안보 협력에 틈을 벌리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한국에 초강경 자세를 보이면서 일본엔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저조한 지지율로 국내정치적으로 어려워진 기시다 내각의 상황을 활용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선임연구위원] “의도적으로 북한이 이렇게 전례가 없는 지도자급에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일본 정부가 사정이 급하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 접촉에 관심을 갖게 되고 혹여나 그것이 북일 간에 아주 실무적인 접촉으로 이어지는 국면으로 가게 되면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이 실질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일 접촉을 하는 일본 입장에선 대북 발언, 대북 접근에서 신중성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거든요.”
북한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명의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 그리고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는 당시 강성산 총리가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에게 위로전문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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