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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영부인, 로잘린 카터


[인물 아메리카]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영부인, 로잘린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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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지난 11월 19일 향년 96세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의 장례와 추모 행사가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이나 계속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11월 19일 향년 96세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의 장례와 추모 행사가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이나 계속됐습니다.

카터 내외의 고향 조지아 주 플레인스에서 거행된 추모식, 조문, 운구행진, 장례식 등 여러 행사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가족, 친지, 일반 추모객 들이 모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고향의 교회 주일학교 교사에서부터 대통령 영부인에 이르기까지 일생동안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았던 로잘린 카터 여사의 생애를 되돌아 보겠습니다.

엘리노어 로잘린 스미스 카터 여사는 1927년 8월 18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 플레인즈에서 태어났습니다 . 땅콩 농장이 많은 조그마한 도시 플레인즈에도 경제 대공황이 몰아치던 때였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자신이 13살때 아버지가 타계하기 전까지는 행복한 아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정원에서는 농산물이 나왔고, 집 뒤에는 젓소가 있었으며, 어머니는 딸의 옷을 손수 지어주셨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잘린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집안이 풍족하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로잘린은 자라면서 친구의 오빠인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James Earl Carter Jr.), 즉 지미 카터를 알게 됐습니다. 지미는 땅콩 농장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때 로잘린은 13살, 지미는 고등학교 졸업반인 16살이었습니다. 로잘린으로서는 지미가 장차 남편이 될 사람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지미 카터가 메릴랜드 주 애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다1946년 방학 때 고향에 들렀습니다. 그리고는 로잘린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때 로잘린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그러나 결혼 신청을 거부한지 약 3개월 후 로잘린은 마음을 바꾸어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1946년 7월 7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로잘린은 지미 카터의 해군 장교 시절 늘 그와 함께 했습니다. 지미 카터의 전역 후 이들 부부는 1953년 고향 플레인즈로 돌아와 땅콩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매일 아침 작업복을 입고 농장으로 가는 것이 일상인 어느날, 지미는 신사복을 입고 집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로잘린이 어디 가느냐고 묻자, 그는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미 카터의 정치생애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지만 로잘린은 남편의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카터가 1962년 정치에 발을 들여 놓자 농장 경영은 로잘린이 맡게 됐습니다. 지미 카터는 첫 시험대인 지방의회 선거에서 이겨 조지아 주 상원의원이 됐습니다. 미국에서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지미 카터는 이어 8년후인 1970년에 조지아 주 지사로 선출됐습니다. 미국 남부 지방의 젊은 지사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한 그는 환경을 개선하고, 주 정부의 능률을 높이며, 인종 차별을 제거하는 등 참신한 정책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승장구하던 지미 카터는 드디어 1977년 1월 20일, 제 39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백악관 재임시 카터 대통령은 늘 그녀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에게 매주 각료회의에도 참석하도록 권했습니다. 카터 행정부에서 부인의 역할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부인은 중요한 국가 사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며, 대통령 해외순방에서도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남미 7개국을 대통령 없이 단독으로 순방하며 각국 정상을 만나 정부 정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 I'm going to convey all of this information that I have to jimmy. In fact, I look forward to consulting closely with him on a regular basis.”

여기서 얻은 모든 내용은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하겠다, 나는 대통령과 늘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공동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영부인의 정치 활동 기준을 새로 세웠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남편과 함께 남북한을 모두 방문하는 등 한반도와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1979년에는 서울을 방문해, 당시 영부인 역할을 맡았던 박근혜 전 한국 대통령을 만나며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문제로 생긴 양국 정상의 갈등 해소에도 기여했습니다. 같은 해인 1979년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도 만났습니다. 카터 여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2018년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낚시 이야기를 나눴으며, 김일성 주석과 카터 전 대통령간 중요한 논의가 시작되면 공식적인 메모 작성자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 부부는 1994년 6월에도 북핵문제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자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방북 목적은 평양과 서방 간의 새로운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전망이었지만 김일성 주석이 숨지면서 무산됐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종전을 이끌어 낸 캠프데이비드 별장 중재회담에도 로잘린 여사의 조언을 참고로 했습니다.

평화회담 성공의 기쁨은 이란의 미국인 인질 문제로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카터 대통령의 재선에도 악영향을 미쳐 1980년 공화당의 로날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2차 임기 도전에 실패하자 카터 부부는 1981년 조지아 주 플레인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퇴임한 지미 카터는 어느날 로잘린 여사에게 남은 여생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과 같은 장소를 따로 마련하고 평화를 추진하는 곳으로 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카터 센터입니다.

Rosalynn Carter “ I think the main thing the carter center does is bring hope to people. It doesn't matter where we go.”

카터 여사는 생전에 카터센터가 하는 중요한 일은 어디에서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1982년 출범한 카터 센터는 오늘날 평화를 추구하고, 질병과 싸우며, 희망을 건설하는 세계적인 비영리 기구의 하나가 됐습니다. 카터 부부의 지휘하에 카터 센터는 세계 각자에서 실시되는 100가지 이상의 선거를 감시하고 있으며, 각종 열대 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수백만명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기니웜(Guinea worm)으로 불리우는 무서운 선충류를 지구상에서 거의 완전 근절시키는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카터 센터는 로잘린 여사의 세계적인 정신건강 개선 노력을 지원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 부부는 Habitat for Humanity 라는 기구를 만들어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기구가 하는 일은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집 없는 사람들에게 거주지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카터 부부는 직접 망치를 들고 봉사자들과 함께 건축공사를 했습니다. 2011년11월에는 노구를 이끌고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에도 찾아가 난민들에게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카터 전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집을 지어주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미국에서 온 500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800채의 주택을 건설 중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지난 5월에 치매 진단을 받았고, 11월 17일부터는 죽음을 앞둔 중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갔습니다. 그로부터 단 이틀 뒤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6년 부부의 연을 맺은 카터 부부는 77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이들은 미국 역사상 결혼 생활을 가장 오래 유지한 대통령 부부가 됐습니다.카터 부부는 잭, 칩, 제프, 에이미 3남 1녀와 11명의 손자, 14명의 증손자를 남겼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오랫동안 결혼을 지킨 비결이 거리와 존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로잘린 여사는 생전에 VOA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부부로 살면서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존중하는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무엇을 할수 있는지 그 능력을 존중했고, 남편도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지에 대해 존중해주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살수 있게한 요소였다고 말했습니다.

2023년으로 99세가 된 최장수 전직 대통령은 이제 홀로 남게 됐습니다. 그도 지난 2월부터는 조지아주에 있는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로잘린 카터 여사는 평생을 같이 한 남편 지미 카터를 작별하고29일 조지아주 플레인즈의 가족 묘지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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