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북부 사우스 다코다 주 러쉬모어 산에는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네 대통령의 거대한 석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리브라함 링컨, 시어도어 루즈벨트 네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해발 1,745미터 고도의 바위산을 깎아 조각한 석상은 한 사람의 길이가 140여 미터, 코의 길이만도 6미터에 달합니다. 이 시간에는 미국의 상징적인 명소 중 하나가 된 이들 석상을 조각한 존 거츤 보글럼에 대해 알아봅니다.
러쉬모어 산의 대통령 상 뿐 아니라 수 많은 걸작을 제작한 조각가이자 화가인 존 거츤 보글럼 (John) Gutzon Borglum,은 1867년 미국 중부 지방인 아이다호 주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존 거츤 보글럼의 아버지 제임스 거츤은 덴마크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존이 어렸을 적 가족은 유타주, 네브라스카 주 등지로 이사를 다니며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거츤은 캔사스 주에 있는 사립학교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거츤이 16살 되던 1884년, 가족은 캘리포니아 주 로스 엔젤레스로 이사했습니다. 거츤은 그곳에서 화가인 엘리자베스 제인스 푸트남을 만나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푸트남은 거츤의 미술교사일 뿐 아니라, 삶의 조언자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푸트남은 거츤보다 나이가 20세나 많았지만 두 사람은 1889년 결혼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동안 거츤은 존 C. 프리먼트 장군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유복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들과도 교류가 늘어났습니다. 몇년 후 프리먼트 장군이 사망한 뒤 장군 부인은 거츤에게 기업가이며 정치가인 리랜드 스탠포드라든가 장차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을 만날 수 있게 주선해주었습니다.
거츤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일을 하며 쥴리안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거츤은 그곳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도 알게 됐습니다. 거츤은 로댕의 영향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댕 처럼 인상적인 음영을 가진 조각 스타일을 굳히게 됐습니다.
거츤의 재능은 금방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품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거츤의 결혼 생활에 파탄이 왔습니다. 결국 푸트남과 헤어진 그는 1901년 파리를 떠났습니다.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거츤은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는 미국 여성 매리 몽고메리를 만났습니다. 거츤은 푸트남과 정식 이혼을 하자 곧 매리와 결혼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동부 코네티커트의 농장에 새 집을 마련하고 그곳을 ‘보그랜드’ 라 불렀습니다. 보글럼은 뉴욕 성 요한 대성당의 100명의 성자와 사도의 조각을 제작했습니다. 보글럼이 미국에 돌아와 시작한 작품 중에는 에이브래엄 링컨 대통령의 석상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재임 중인 백악관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와 조각으로 보글럼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그러자 연합국, 즉 Confederacy의 딸들이라는 단체의 수장인 헬렌 플레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Confederacy는 남북전쟁 당시 연방을 탈퇴한 남부 여러 주의 연합입니다.
헬렌 플레인은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흉상을 조지아 주에 있는 스톤 마운틴의 바위에 새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톤 마운틴 조각은 보글럼이 거대한 바위산에 석상을 새기는 첫번째 작품이었습니다. 보글럼은 후에 러쉬모어 산 조각 때 활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을 후원하는 단체가 인종차별 단체인 KKK단과 관련이 있는데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 등으로 갈등이 심해 결국 이 사업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 무렵, 사우스 다코타 주의 역사가인 도에인 로빈슨이 스톤 마운틴의 석상건립에 관한 글을 읽고 보글럼을 사우스 다코타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주내 블랙힐스 산에 석상 건설안을 제시했습니다. 앞서 스톤 마운틴의 프로젝트가 지방 사업인데 비해 블랙 힐스 조각 건설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렘스 링컨 대통령 등의 상을 새기는 것인만큼 국가적인 사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알고 지내며 그의 선거운동도 도왔던 보그럼은 대통령 재임 중인 그를 만나 블랙힐스 석상 건립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낸 지도자이며, 토마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 지역의 매입으로 영토를 거의 배로 늘렸고, 에이브라함 링컨은 쪼개질뻔한 나라를 통합한 대통령이고, 현임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파나마 운하를 미국 소유로 하는 등, 미국의 영토와 세력을 확대한 인물들이라는 점을 들며 그 의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러쉬모어 산 기념석상은 Manifest Destiny 즉 ‘명백한 운명의 시대’ 이론의 중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명백한 운명의 시대’ 이론이란 19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한 이론으로, 미합중국은 북 아메리카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개발하고 사람들을 도우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보글럼은 러쉬모어 산 곳곳을 수 없이 오르내리며 각 인물이 어느 각도에 위치해야 가장 잘 보일수 있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이어서 실제 돌을 깎기 전의 모델 제작, 석상이 위치할 자리, 그리고 인물의 이미지를 산에 대비해 보는 방법, 그리고 바위를 깨고 새기는 긴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보글럼은 석공들에게 산 아래,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라도, 그 석상의 뉴앙스를 느낄 수 있게 조각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보글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 링컨이나 조수들에게 감독을 맡기고 출타를 했습니다. 그는 워싱턴 디시로 가서 자금을 모았습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다음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파리의 토마스 페인 상, 폴란드에 위드로우 윌슨 상 등도 세웠습니다.헬렌켈러와 같은 사회 저명 인사와 유명 정치인들도 만났습니다. 한 동안 바깥 바람을 쏘이고 돌아왔을 때 네 대통령의 석상이 위치하게 될 자리에는 계란 비슷한 형태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보글럼은 각 석상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작업을 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보글럼은 엄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각을 할 것을 관계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이 때문에 보글럼은 이 사업을 진행하는 마운트 러쉬모어 위원회와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는 완벽주의와 급한 성격으로 최고의 조각가를 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대는 블랙 힐스 (Black Hills)로 불리우는 산맥으로, 수만년 동안 살아온 원주민, 즉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백인 정부가 이곳에 대통령 상을 조각하려 하자 이곳에 살던 라코타 족은 당연히 반발했으나 그것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27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바위를 폭파하면서 조각이 시작됐습니다.
야망과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진 보글럼은 원주민의 성지인 이 일대를 백인 중심의 이미지를 띈 장소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또 새겨지는 네 대통령의 모습이 강경하고, 끈질기며, 열정적이고, 원대한 꿈을 가진 인상이 풍겨지도록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신생국 미국의 충실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러나 보글럼은 조각이 거의 완성돼 가던 1941년 3월 6일, 시카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74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마운트 러쉬모어 조각의 마지막 과정은 아들 제임스 링컨 보글럼(James Lincoln Borglum)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1927년에 첫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린지 14년 만인 1941년 10월 31일 이 거대한 사업은 완공됐습니다. 이곳은 그후 미국의 국가 기념지, 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로 지정돼 있고 연간 2백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됐습니다. 거츤 보글럼은 러쉬모어산 대통령 상으로 유명한 조각가이지만 그 외에도 수 많은 걸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미국의 유명 유적지, 정부 시설, 학교, 공원 등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조각품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한편 대통령 상이 있는 곳에서 약 27 km 떨어진 블랙힐스 산에는 백인 정복자들에게 항거하다 숨진 인디언 추장 Crazy Horse, 즉 성난 말 석상 조각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948년 6월 3일 출범한 이 사업은 말에 올라탄 Crazy Horse가 먼곳을 가리키며 서 있는 모습입니다. 높이 172m, 길이 201m의 거대 조각상으로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들어야 하는 대 작업입니다. 50년만에 겨우 얼굴 조각상이 완성된 이 석상은 완성까지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험난한 사업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상보다 더 크게 추진되는 이 석상은 "백인들에게 영웅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 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